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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탈님의 서재
  • 다정한 날들에 안겨
  • 염서정
  • 13,500원 (10%750)
  • 2023-06-26
  • : 166
#시선들2기

자기 전에 책 읽다 자야지- 하고 단숨에 다 읽어버린 책이다.
그런데 조금 나누어 읽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글이다.
에세이만 읽던 시기를 지나 힐링에세이는 이제 나에게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타인의 우울이나 부정적인 감정은 더욱이 피하려고 하는 편인데 그늘이 있는 저자의 일기는 신기하게 계속 궁금했다.

< “멀수록 쉽게 돌아올 수 없을 테니까.”
지금 곁에 있는 것들을, 아주 멀리에서, 다른 시간에서, 그리워하고 사랑하려고, 떠나기로 결심한다. > -p.23
<그것은 순전한 그리움이기도 했고 희망 사항이기도 했다.> -p.83
한 때 여행에세이를 꼭 쓰고싶었다. 처음 외국에서 살아보고, 혼자서 몇개국을 여행한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그 다양한 상황에서의 반응을 내가 보면서 그러면서 내가 나를 알아갔던 순간들이 나에게는 아름다운 이국적인 풍경만큼이나 소중했다. 그 때는 이 반짝임을 놓치지 말아야겠다는 감각만 있었다면, 조금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 반짝임들이 나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에, 그 기억들이 나를 이루고 지금의 나를 만든다는 것을 안다.
타인의 외국살이는 그래서 부럽고, 읽어보면 즐거운 양가감정이 든다.
그래도 어쨌거나 2019년 냄새를 맡을 수 있어서 좋다.

아이들
<Phoebe의 작고 말랑한 손
꼭 녹지 않는 솜사탕을 쥐고 걷는 기분이었다.>
<씻기고 난 뒤에 Chloe를 안아 올리자 금세 칭얼거림을 멈추고 내게 온전하게 몸을 의지해온다.>
<미래에 도달해 보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중략- 나는 이 바닥을 종종 그리워할 것이다. Phoebe와 Chloe를 떠올리며 한 번쯤 어떤 이유에서건 울게 될 거란 것도.> -p.43
어느 순간부터 나는 어린이들을 만날 일이 없었다. 그래서 나의 어린 시절을 잘 떠올리지 않았다. 그러다 작년부터 어린이를 가르치는 일을 우연히 하게 되었고, 아이들로부터 어린 나를 만나는 귀중한 경험을 해왔다. 혼자서는 살아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얼마나 연약하면서도, 생각보다 못 알아듣는 말이 없고 본인에게 얼마나 마음을 주고 있는지 잘 알고있다. 무의식적으로 어린이를 무시하고 있다면 그건 어떤 면에선 내면의 어린아이를 부정하고 있다는 것도. 그래서 저자가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이야기에선 나도 모르게 쓰여진 글보다도 더 많은 것들이 ’본능적으로‘ 느껴져 눈물이 날 뻔했다.

사랑
<“Love suffereth long•••" 기꺼이 감수하는 오랜 고통.
같이 있는 시간이 즐거워서가 아니라 고통을 감내할 수 있다면 사랑인지도 모른다.>
시간이 갈수록 사랑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손가락으로 그려보는 하트모양보다 훨씬 복잡한 사랑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힘, 그 원천은 이 사람과 함께할 것임은 무겁고 단단하게 정해두고 그 마음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다. 어떤 상황이 와도 그 전제를 잊지않고 해결해 나간다.

<찌질한 것은 얼마나 위안을 주는가.> -p.99
나는 꽤 어린 나이에 찌질한 것이 당연하고 괜찮다고 (어느 정도는) 받아들였던 것 같다. 이 정도로 계속 떠오르는 걸 보면 지드래곤이 남자로서 좋은 게 아닐까, 씨엘의 스모키 메이크업을 해보고 싶은 마음을 참지 않는 것(!) 같은.. 근데 그 고민들도 다 사랑인 것 같다. 나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고.
십대 시절에 내 아이돌의 성장을 파고들면서 배운 것은, 모두는 아마추어였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모두 계산된 것처럼 간지가 나지?싶은 프로의 모습 뒤에는 아마추어의 모습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수도 없이 반복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리움은 저기 멀리 보이는 가로수 뒤에 숨어있다가 내가 지나가는 시점을 정확하게 알아채고서 갑자기 나타나 나를 흔든다.> -p.112
이번 적재의 신곡 앨범의 컨셉이 그리움이었다. 그리움, 찬 공기, 어두운 색을 보면 나는 부정적인 느낌이 먼저 들어서 사실은 조금 두려웠다. 좋은 기억도 너무나 그리우면 그리움에 점령당하는 느낌이 드니까.
그리움은 상념, 보이지 않는 개념이라기보단 저자의 말처럼 부피와 질량이 있는 존재같다. 엇비슷한 향을 맡으면, 같은 장소를 가면, 특정 단어만 들어도 그래 나 여기 있었어 하고 찾아오는 느낌.

<어둠뿐인 화면 그 속에 그가 들이쉬고 내뱉는 숨결이 담긴다.> -p. 195
책이 몇 장 안남은 이 시점까지 잘 견뎠는데(?) 이 문장을 읽고서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나의 기쁨, 나의 환희가 곤히 자고있는 순간이 아름답고 애틋한 그 감정을 너무 알 것만 같아서.


그럼에도, 삶
< 바깥은 영하, 아니면 죽어가는 새벽별의 유언이었다.> - p.145
저자가 비행기 안에서 쓴 이 표현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해서 인덱스해두었는데, 옮겨적다보니 지극히 물리적인 말이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 그러나 잠에 드는 일도, 걷는 일도 멈출 수가 없다.> -p.151
< 새삼스레, ‘견딜 만하다.’ 는 말에서 어떤 투지와 긍지, 단호하지만 우아함 같은 것을 느낀다.> -p.153
< 사진도 글도 나를 떠나지 않고 있다.> -p.174
내게도 삶은 멈출 수 없는 것에 가까운 느낌이다. 날씨가 좋으면 아무리 곤해도 짧은 산책이라도 해야 만족스럽고, 여전히 나를 만족시키려면 어떻게 해주어야 좋을지 헷갈려 어렵다.

#문장과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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