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름의 끝자락을 붙잡고 부산 곳곳을 누비며 꼬옥 쥐고 다녔던 싱그러운 책,
#길을걷다가넘어지면사랑 을 소개합니다. 💚
실은 홍보 안해도 이미 다수의 도서전에서 인기 폭발한 화제의 신작이라 이미 인증된 맛집(?) 가듯 가벼운 걸음으로 신나게 읽어보았다. ‘은수‘가 ’차가운 물을 마실 수 있어서 여름이 좋다‘고 한 것처럼, 물 마시듯 쉽고 가볍게 꼴깍꼴깍 마실 수 있는 글로만, 그렇지만 또 밍밍한 물은 아니라서 머리 띵 하지 않으려면 조금 쉬어가며 읽으면 좋은 기분좋은 시원함이 느껴진달까.
실은 여름을 너무 사랑했던 이십대의 절반을 지나보내는 나는 이제 슬슬 알록달록하고 포근한 니트 가디건과 도톰한 양말에 눈이 더 가게 되어서 썸머 작가의 책이 그저 여름으로만 읽히진 않았던 것 같다. ’외롭다는 생각이 들수록 허기가 지면 안되니‘ 담요를 감고서 흐릿한 눈 앞을 훔치며 담요의 고양이 무늬를 기억하겠다는 정아의 말이 딱 선선해진 어느 날의 찬바람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하루는 땀이 빼질 나는 낮과 두툼한 아우터도 모자라 담요까지 둘둘 감고 있어야 했던 밤이 공존하는 늦늦늦여름 - 초가을에 읽어서인지도 모르겠지만.
데굴데굴, 이라는 글자만으로도 너무 귀여워서 웃음짓게 했던 나리의 볼링 동아리 이야기는 대학교 신입생 때쯤 누구나 기대할만한 첫사랑 썰을 듣는 것 같아 책이 끝나가는 줄도 모르고 단숨에 읽어버렸다 !
“너가 제일 좋아하는 만화라며, 엔딩도 다 안 읽었으면서 제일 좋아한다고 할 수 있어?”
“...안 읽어도 상상해 볼 순 있어.“
”그래, 상상. 그건 상상이잖아. 끝까지 가보지 않으면 결국 모르는 거야.“
그 끝에 떠오른 얼굴이 있다면,.. 그건 첫사랑이 아닐 수 없다! 🤭
다정한 나리의 짝사랑과 둘 사이에 불청객이 된 경쟁자 선배와의 묘한 신경전, 매쉬 구멍이 송송 뚫려있는 양말까지 선명하게 그려낸 이 이야기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 ❤️🔥 (손에 진땀이)
그리고,,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든 마지막 에피소드에서는
“괜찮은 거 말고 좋은 거 하라”는 초대장을 받았다.
“한 발만 더 내디디면 좋은 게 있어요. 새로운 세계가 펼쳐질 거예요.”
수영장 데스크에 일하면서도 내부 구역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투명 창을 넘어서지 않던 미영은 같이 일하는 이모들의 표정만을 살폈다. 어쩐지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다는 말은 사실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목구비가 오똑하든, 조금 굴곡이 덜한 얼굴이든 간에 살아있다는 건 그림자가 지기 마련이니까.
“에이 모르겠다 하고 힘을 쭉 빼면 몸이 떠. 그럼 그때부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어.” 라며 같이 (수영) 하자는 화정의 말에 미영은 ‘제일 예쁘고 가장 좋아 보이는 걸로’ 과일을 고른다.
..같은 이유로 나도 한 박스에 7천원하는 무른 무화과 대신, 가을을 가장 기다리는 이유인 무화과를 꿀이 뚝뚝 흐른다는 유명한 농장에서 보석같이 담겨온 박스로 골랐다.
그리고 결과는 대성공 ! 🍯
나머지 무화과도 잘 후숙될 때를 기다려 한 박스를 다 먹을 때까지, 나를 생각하며 산 마음의 달콤함을 느끼며 꼭 그런 선택을 또 이어가고 싶다. 그런 선택이 습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