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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물
jihye7988  2022/06/28 06:48
  • 눈, 물
  • 안녕달
  • 19,800원 (10%1,100)
  • 2022-06-10
  • : 2,416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민소매 원피스 차림으로 차가운 눈 밭에 엎드린 여자가 시선에 들어온다.

여자는 어쩌다 자신과 다른 물성인 눈 아기를 낳았을까...???

여자는 왜 엄마가 아닌 여자로 묘사됐을까...???

 

나는 ‘눈, 물’의 비정한 현실 세계에 맞선 엄마의 처절한 모성에 대한 시선은 잠시 접고 다른 얘기를 하려한다. 



품에서 내려놨을 때 비로소 울음을 그치는 아기.

품에 있으면 녹아내려 버리는 아기.

 

자신의 온기가 무서워 눈으로 담을 쌓은 여자.

아기가 파괴된다는 생각에 얼마나 자신이 무섭고 싫었을까?

이런 마음에서 비롯된 자기 비난, 자기 멸시가 아기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더 몰아붙였을지 모른다.


초록이 밀려온다. 올 것이 왔다.

초록에 삼켜지는 건 어쩌면 아기가 아닐지도 모른다.

 

초록이.... 온기가 두려운.... 어쩌면 변화가 두려운 여자는

‘내 속에 내가 너무 많아’ 쉴 곳 없다는 어떤 노래를 떠올리게 한다.


경계....

고태적 자기를 보존하기 위해 여자는 차원과 차원 사이의 벽을 넘는다.

 


그녀에게만 녹지 않는 겨울, 그녀를 위한 프리미엄 ‘언제나 겨울’을 갖기 위해.

‘언제나 겨울’은 초록이 밀려와도 끄떡없을 것이라는 그녀가 창조한 세계 ‘phantasy’다.

따라서 실체가 아니며 표상으로 존재한다.

 

‘언제나’

이 세상에 ‘언제나’라는 것은 존재할까....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바뀌지 않는 수동적인 세상에서 ‘지키기’ 위해 능동적으로 행동해야만 하는 사람들.

이들은 누구를 지켜야하는지 알지만 어떤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지 모른다.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바뀌지 않는 수동적인 세상에서 ‘지키기’ 위해 능동적으로 행동해야만 하는 사람들.

이들은 누구를 지켜야하는지 알지만 어떤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지 모른다.


자신이 찾는 것이 무엇인지도 잊고 막연한 희망으로 애벌레 기둥을 기어오르는 ‘꽃들에게 희망을’에 등장한 애벌레 군상을 이들에게서 본다.


‘기적’이 필요한 순간 돌아오는 ‘사절’은 절망이 되어....

자신이 기적이 되려는 아둔함을 부르기도 하고,

비극을 낳기도 한다.


아기는 아기일까? 여자일까?

눈은 눈일까? 물일까?

‘눈, 물’

‘눈, 물’ 이면서 ‘눈=물’이 되는

눈은 아기이면서 여자이고 물은 퇴행한 여자의 원시적인 모습이다.

 

 

“얼어붙은 작은 물웅덩이는 ‘언제나’..... 여자의 온기를 잠시 붙잡아 두었다."


흔히 빛의 존재는 어둠이 존재함으로 알 수 있다고 한다.

얼음이 된 작은 물웅덩이(눈아기)와 여자의 온기는 그렇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서로에게 행복이면서 동시에 고통이 되는 눈아기와 여자.

고통을 주고 받으며 고태적 실존을 확인하고 유지하기 위해

‘언제나 겨울’이라는 phantasy 가 필요하다.

프로이트 선생의 해석을 빌리면 ‘언제나 겨울’은 쾌락 너머의 쾌락을 찾기 위해 필요한 대상이다.

 

생사여탈을 쥔 신이 '자본'이라 표현해도 부족하지 않은 시대를 나는 어떻게 살아내고 있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지켜야 할 것을 지켜냈을 때, 정말로 행복해질 수 있을까?

 

그녀가 그렇게 처절하게 갈망했던 ‘언제나 겨울’.

나 역시 ‘언제나 겨울’이기를 바란 건 아닐까?

나에게 ‘언제나 겨울’은 무엇일까?

무수한 질문이 꼬리잡기를 한다.

 

 

‘눈, 물 vs 눈=물’


‘우리는 모두 눈 아기를 낳는다.’




"얼어붙은 작은 물웅덩이는 ‘언제나’..... 여자의 온기를 잠시 붙잡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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