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통해 줄거리는 알지만 엄청난 고전명작이라 읽기 어렵지 않을까 했는데
의외로 대중소설처럼 쉽게 읽혔고 재미도 있었다.
이미 아메리칸드림이 끝나버린 시대에 어찌어찌 우연과 부정직함으로 부를 쌓아서
상류층으로 들어올 수는 있었지만 개츠비는 그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들은 개츠비를 이용하고 버릴 뿐, 화려하고 거대한 그의 저택과 대비되는 그의 장례식은
찾아오는 이가 아무도 없고 아무도 그의 죽음에 대해 알려하지 않으며 쓸쓸하고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가 늘 동경해마지 않았던 그 세계는 사실은 야비하고 추악함으로 가득차 있었지만,
그의 삶에서 단 하나의 희망, 오직 데이지에 대한 사랑과 믿음은 너무나 순수하고 고결하다.
데이지를 끝까지 믿고 사랑한 이유로 개츠비는 죽게 되는데,
그녀는 그가 죽은 후에도 여전히 아무런 자성없이 제멋대로 잘 먹고 잘 살아갈 것이다.
가끔 생각한다.
낭만은 이성적이지 못하다며 비웃음을 사고,
열정은 이용당할 값싼 재료에 불과하며,
순수한 꿈은 그 망상을 떠올려보기도 전에 현실자각이 없다며 손가락질 받는데
누가 자신을 위한 순수한 열망과 그에 대한 노력을 끊임없이 지속할 수 있을까.
실체는 더럽고 야비하고 추악하기 그지 없는데,
어떤 인간은 조금도 의심없이, 흔들림 없이
그 대상을 사랑하고 가까이 가고자 열망한다면,
우리는 과연 그의 인생을 헛되다고 어리석다고 쉽게 판단해도 되는 것일까.
소설 속에서 주인공인 개츠비는 죽었지만,
그의 정신적 열망은 세상이 경박하고 비겁해질수록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져야 할 것 같다.
<위대한 개츠비>가 왜 여러차례 회자되고 리메이크 되는 고전반열에 있는 작품인지 알 것 같다.
내 마음 속에서도 늘 동경하고 여전히 아름답게 반짝이는 것이 있다.
보잘 것 없는 내가 그 언저리에 발을 딛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다.
죽을 때까지 그 언저리만 기웃거리다가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하찮고 하찮은 먼지와 같은 인간에게 얼마나 삶을 의미있게 해주는가.
<위대한 개츠비>는 찰나의 불꽃처럼 아름다운 환영을 보여줌으로써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마음 속에 품고 추구하는 그 무엇에 대해,
그런 인생을 사는 이들에게 보내는 격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