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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gjin.kim님의 서재
  • 모든 존재는 연착(延着)한다
  • 윤용진
  • 27,550원 (5%1,450)
  • 2025-09-18
  • : 173

자꾸만 조급해지는 날, 이 책 제목이 먼저 걸렸다


가끔은 그런 날이 있죠.

나는 분명히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내 시간만 뒤처지는 것 같을까.

남들은 벌써 도착한 것 같은데 나만 아직 한참 가는 중인 것 같은 날.

그럴 때 이상하게도 눈에 들어오는 문장이 있습니다. 바로 모든 존재는 연착한다라는 제목이었어요.


이 책은 윤용진 저자가 쓴 인문 교양서로, 2025년 9월 솔과학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책은 ‘연착’이라는 개념을 단순한 지연이나 실패가 아니라, 존재와 시간의 본질을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감각으로 풀어냅니다. 저자는 선불교 영화감독이자 철학자, 작가로 소개되며, 선과 철학, 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를 오랫동안 작업해온 인물입니다. 


표지부터 심상치 않았어요.

모래시계 안에 들어 있는 노인의 얼굴, 그리고 “도착하지 않은 시간 속에 머무는 법”이라는 부제.

이건 단순히 위로를 건네는 에세이가 아니라, 시간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다시 묻는 책이겠구나 싶었습니다. 실제로 이 책은 ‘즉각적인 성취’에 익숙해진 시대에, 지연 속에서도 의미를 발견하는 사유를 제안합니다. 


모든 존재는 연착한다, 이 말이 오래 남는 이유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연착”이라는 단어가 조금 낯설었어요.

우리는 보통 늦는 것을 좋아하지 않잖아요.

지하철이 연착되면 짜증이 나고, 답장이 늦으면 불안해지고, 성과가 늦게 나오면 내가 잘못 살고 있는 건가 싶어집니다.


그런데 모든 존재는 연착한다는 그 익숙한 불안을 아주 다른 방향에서 보게 합니다.

늦는 것이 꼭 틀린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 이미 무언가는 자라고 있고, 변화는 늘 눈에 띄기 전에 먼저 내부에서 시작된다는 것.

이 책은 바로 그 지점을 끈질기게 붙들어요.


읽으면서 가장 크게 와닿았던 건, 이 책이 “조급함을 버리세요” 같은 뻔한 문장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대신 과학, 자연, 사회, 철학 같은 여러 층위를 오가며 지금 우리가 ‘즉시성’에 얼마나 길들여져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지금이라고 믿는 순간조차 이미 약간 늦게 인식된 것이라는 설명은, 시간에 대한 감각 자체를 흔들어 놓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든 존재는 연착한다는 말은 위로라기보다 통찰에 가까웠습니다.

괜찮다고 다독이는 책이 아니라, 애초에 내가 붙들고 있던 시간관이 너무 조급했다고 말해주는 책.

이 차이가 꽤 컸어요.


빨리 결과를 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더 아프게 읽혔다


요즘은 뭐든 너무 빨라야 하잖아요.

읽은 책도 바로 정리해야 할 것 같고, 시작한 일도 금방 성과를 보여줘야 할 것 같고, 사람 사이의 관계도 짧은 시간 안에 분명해져야 할 것만 같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뒤처질까 봐 계속 무언가를 하고, 그렇게 바쁘게 살면서도 늘 불안하죠.


저도 비슷했어요.

조금 늦어지는 일 하나만 있어도 ‘이건 틀어진 걸까’부터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불안했고,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으면 괜히 스스로를 의심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쩌면 나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게 아니라, 연착 중인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 것뿐일지도 모른다고요.


이게 참 별거 아닌 말처럼 보여도, 마음에는 꽤 다르게 남았습니다.

실패라는 말은 마음을 닫게 만들지만, 연착이라는 말은 이상하게도 시간을 다시 견디게 하거든요.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 오는 중이라는 뜻이니까요.


그래서 모든 존재는 연착한다는 문장이 더 좋았습니다.

멈춤도 아니고, 탈락도 아니고, 포기도 아닌 상태.

도착은 늦어질 수 있어도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뉘앙스.

이 책이 주는 힘은 바로 그 미묘한 언어 감각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인문서인데도 어렵기보다 묘하게 붙들리는 책


이 책은 분명 인문서인데, 딱딱한 이론서처럼만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철학적이고 사유적이지만 무조건 어렵게 밀어붙이지 않아요.

문장에는 무게가 있는데, 그 무게가 독자를 밀어내기보다 조금 더 천천히 걷게 만드는 쪽에 가깝습니다.


특히 이 책의 매력은, 연착이라는 하나의 개념을 너무 단순한 자기계발식 메시지로 축소하지 않는 데 있어요.

“기다리면 잘될 거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왜 우리는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는지, 왜 즉시 도착하지 않는 시간을 실패로 오해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기 삶도 돌아보게 되죠.


저는 이런 책을 읽을 때 밑줄을 많이 긋는 편은 아닌데, 이번에는 여러 번 페이지를 멈추게 됐어요.

문장을 외우고 싶어서가 아니라, 생각을 조금 늦추고 싶어서요.

빨리 읽는 게 아까운 책이라고 해야 할까요.

내용을 다 이해했다기보다, 이해하려고 너무 서두르지 않게 되는 책이었습니다.


이 점 때문에 모든 존재는 연착한다는 제목이 책의 내용과 정말 잘 맞는다고 느꼈어요.

책이 전달하는 메시지만 연착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읽는 방식 자체도 조금 천천히 바꾸게 만들거든요.


이 책이 잘 맞는 독자는 분명하다


사실 모든 사람에게 쉽고 편한 책이라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빠르게 핵심만 정리해 주는 책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조금 느리다고 느낄 수도 있어요.

문답식으로 명확한 해답을 주는 책을 기대했다면 의외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이런 분들에게는 아주 깊게 남을 것 같아요.


하나는, 열심히 사는데 자꾸만 늦는 기분이 드는 사람.

둘째는, 성과보다 과정이 더 길게 느껴져 지쳐 있는 사람.

셋째는, 삶을 너무 기능적으로만 바라보다가 어느 순간 마음이 말라버린 사람.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간을 다르게 사유해 보고 싶은 사람.


저는 이 책이 특히 “내가 왜 이렇게 조급하지?”라는 질문을 자주 하는 분들에게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질문에 바로 정답을 주기보다는, 질문의 방향 자체를 틀어 주거든요.

늦은 게 아니라 다른 시간으로 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보면 모든 존재는 연착한다는 단지 한 권의 책 제목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시선 하나를 건네는 문장 같기도 합니다.


읽고 나서 남은 것은 위로보다 ‘허락’에 가까웠다


이 책을 덮고 난 뒤 가장 크게 남은 감정은 위안보다 허락이었어요.

조금 늦어도 된다는 허락.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고 해서 잘못된 길은 아니라는 허락.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삶은 충분히 진행 중이라는 허락.


우리는 자꾸만 자기 삶을 결과로만 증명하려고 하잖아요.

몇 살에 무엇을 이뤘는지, 얼마만에 성과를 냈는지, 얼마나 빨리 자리를 잡았는지.

그런 기준에 익숙해지면, 속도가 느린 시간은 금세 열등감이 됩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열등감 위에 아주 조용히 다른 문장을 올려둡니다.

“모든 존재는 연착한다.”


이 문장을 읽고 있으면, 조금 늦게 피는 꽃이나 오래 걸리는 계절 같은 것들이 떠오르기도 해요.

세상엔 원래 한 번에 오지 않는 것들이 많잖아요.

마음의 회복도 그렇고, 관계의 신뢰도 그렇고, 삶의 이해도 그렇습니다.

빨리 오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게 아닌데, 우리는 너무 자주 그걸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단순한 철학 에세이가 아니라, 속도 중심의 삶에 금을 내는 책이라고 느꼈어요.

당장 정답을 주지 않아도 오래 남는 책.

읽는 동안보다 읽고 난 뒤에 더 자주 생각나는 책.

그게 바로 모든 존재는 연착한다의 힘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무리하며


모든 존재는 연착한다는 조급함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시간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빨리 도착하는 것이 늘 좋은 일이라고 믿어온 사람이라면, 이 책은 꽤 낯설고도 묵직하게 다가올 거예요.

하지만 그래서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즘처럼 뭐든 즉시 확인되고 즉시 평가되는 시대에, 늦게 오는 것들의 가치를 말하는 책은 오히려 드물잖아요.

이 책은 바로 그 드문 이야기를 합니다.

도착하지 않은 시간 속에서도 삶은 멈춘 것이 아니라고.

우리가 불안해하는 그 지연의 시간 안에도 분명한 의미가 있다고.


책을 읽고 나니, 예전보다 조금은 덜 조급해졌습니다.

아직도 빨리 결과를 보고 싶고, 여전히 마음이 급해지는 순간은 많아요.

그래도 예전처럼 무조건 불안해하지는 않게 됐어요.

늦었다고 생각되는 순간마다 한 번쯤 떠올릴 문장이 생겼으니까요.


모든 존재는 연착한다.

어쩌면 지금의 나도, 아직 늦은 게 아니라 오는 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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