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을 다한 생명
퐁팸 2017/05/2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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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빼떼기
- 권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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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 - 2017-05-04
: 2,134
‘이 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이 있을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최악이라 느껴지는 주인공의 상황. 아픔과 슬픔을 재차 확인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극단적인 슬픔을 보여주는 권정생 선생의 동화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몽실 언니’를 겨우 읽었으니 말입니다.
반면 그림책과 만난 권정생 작가의 글은 작은 것들을 보듬어 살펴주고 섬세한 감각으로 하찮다 여겨지는 생명에도 응원을 해 주어 읽고 나면 위로와 치유를 받은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권정생 선생의 글은 그림책으로 더 익숙해진 채, 지난 해 ‘강냉이’를 만났습니다. 붓이 지나간 자리에 힘이 실려 있지만 투명한 듯 고요하고, 단단한 붓의 터치들이 권정생 선생의 글에서 읽히는 슬픔과 아픔을 극대화 시켜주었습니다. 반복하며 읽을 때 마다 감동이 깊어졌습니다. 모든 그림책들이 그러하지만 펼침면 한 면, 한 면이 고요한 갤러리에서 홀로 마주하고 서 있는 작품처럼 느껴졌습니다.
김환영 작가의 다음 그림책도 기다려지던 참에 권정생 10주기 추모 그림책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무슨 뜻인지 추측조차 가능하지 않은 된소리 발음. 무의미한 단어처럼 느껴지는 바로 ‘빼떼기’.
책을 받아들고 커다란 판형에 놀랐습니다. 물리적인 무게와 크기만큼 책을 읽기가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잠시 스치기도 했습니다.
‘빼떼기’는 순진이네 집에서 일 년 남짓 살다가 죽은 검은 병아리의 이야기입니다.
아궁이 속으로 뛰어 들어가 온 몸의 솜털이 모두 타 버리고 성냥개비 같은 두 발도 불에 데어버립니다. 다 타서 몸이 성한 곳 없이 오그라들은 검은 병아리. 흉측하게 변한 모습에 자기 새끼도 알아보지 못하는 엄마 닭에게 쫓겨난 그 가엾은 생명을 순진이네 가족은 살뜰히 보살핍니다. ‘빼떼기’라는 특별한 이름까지 지어주면서요.
이웃들은 털이 모두 타버려 벌거숭이가 된 빼떼기에게 옷까지 만들어 입혀 주고 품에 안아주는 순진이 어머니를 비웃습니다. 하지만 고통을 이겨내며 아픈 몸으로도 꿋꿋하게 자라나는 빼떼기를 보며 결국에는 ‘빼떼기는 언제까지라도 제명대로 살다가 죽을 수 있도록 길러야 한다’며 그 생명력에 응원을 보태어줍니다.
닭장 바닥에서 잘 수밖에 없는 빼떼기는 아침에 읽어나면 온 몸에 닭똥이 여기저기 지저분하게 뭍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빼떼기의 모든 행동은 순진이네 가족들에게 큰 기쁨입니다. 보잘 것 없는 작은 생명의 강인함. 상처투성이를 가진 몸뚱이로 아프고 힘들어도 고통을 꿋꿋하게 이겨내는 작은 생명은 순진이 가족의 자랑스러움이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 피할 수 없었던 슬픈 생의 마감,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빼떼기의 푸드덕 거리는 날갯짓에 담긴 삶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일까요.
‘빼떼기가 세상에 다시 와서 좋은 친구들 많이 만났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김환영 작가. 천천히 책을 다 읽고 난 뒤 앞표지의 작가 이름에 그림 작가 김환영의 이름이 먼저 오른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동화작가 박기범이 말하듯 ‘숨이 멎도록 안타까운 마지막 장면’은 그림만 바라보고 있어도 아픔과 슬픔이 몸으로 여과 없이 전해져 옵니다.
어떠한 생명이든 누군가에게 버림받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살뜰한 보살핌을 받기도 합니다. 그 속에서 능동적으로 자신의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요. 슬픔의 한 복판에서도 자신의 의지로 삶의 주인이 되었던 빼떼기를 마음속에서 지우기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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