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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yday_mk의 서재
  • 오직 그녀의 것
  • 김혜진
  • 15,120원 (10%840)
  • 2025-09-30
  • : 15,810



김혜진의 『오직 그녀의 것』은 한 편집자의 일과 삶, 그리고 읽기에 관한 이야기다. 주인공 석주는 젊은 시절부터 삶을 개척하거나 쟁취하기보다 “주어진 몫을 수용하며 감당하는 방식으로 삶에 순종했던”(p.29) 인물이다. 그녀에게 일은 투쟁의 현장이 아니라 인내의 자리였고, 열정은 불타는 감정이 아니라 “가만히 길들이는 방식으로”(p.87) 자기 자신을 닦아가는 과정이었다.


그녀가 말하는 ‘일’의 세계는 반복과 수정, 타인의 판단과 마감이 얽힌, 감정의 여지가 점점 희미해지는 곳이다. 나는 그 세계가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일과 감정, 열정과 체념, 인간과 체계 사이의 균형을 잡으려 애써왔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감정을 덜어내는 법을 배우는 일이며, 그 과정에서 자신이 점점 무뎌져가는 것을 감당해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석주는 그렇게 책을 만들면서 세상을 이해했고, 결국 그 일 덕분에 “남몰래 갈망하던 성취와 성공을 어렴풋하게 경험하고, 타인과 자신을 사랑할 힘을 얻었다.”(p.271) 그녀는 깨닫는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은 언제나 상처받는 일이며, 일은 결코 쉬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는 수년째 책을 읽어왔다. 읽기를 통해 나를 옭아매던 오래된 감정들로부터 벗어나는 경험을 했다. 책은 내 안의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고, 나는 그 문장들을 따라 조금씩 단단해지는 듯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책으로 사람을 만들고, 일로 관계를 맺는 과정에서 오히려 사람에게 지치기 시작했다. 책을 매개로 한 사람들, 읽는다는 행위로 연결된 관계들 역시 그 나름의 위계와 권력을 품고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읽는다는 일에도 회의가 찾아왔다.


『오직 그녀의 것』은 ‘읽는다’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편집자로서의 읽기는 아니지만, 그 태도는 독자로서의 읽기와도 연결되었다.) 읽기란 결국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기 이전에, 자신에게로 향하는 여정이라는 사실을. 석주는 그것을 쉰이 넘어서야 깨닫는다.


 “이야기가 향하는 곳이 자신의 내면이라는 것. 허구의 서사가 불러일으키는 것은 내밀한 기억의 감정이며,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이 실은 읽는 행위의 전부”(p.267)라는 것을.


"책을 좋아하나요?"(p.272)라는 질문은 소설의 마지막 문장이지만, 어쩌면 삶 전체를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여전히 책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 좋아함이 나를 무너뜨리지 않기를, 다치지 않으면서도 계속 좋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좋아한다는 것은 끝내 그만두지 못하는 일, “꾸역꾸역 해나가는”(p.253) 일이라는 걸 알기에.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서 읽고 쓴 솔직한 리뷰입니다. 

그녀에게 삶은 노력과 분투를 통해 획득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미래는 모험이라기보다 수용에 가까웠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삶이 어떤 식으로든 예정되어 있다고 믿었다. 각자에게 주어진 몫이 있다고 여겼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이 없었다.- P10
작품을 냉정하게 보라는 건 단점에 집중하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그 작품이 지닌 고유한 지점, 빛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라는 의미이기도 하죠. 좋은 점을 찾는 건 부족한 점을 찾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부족한 부분에서 잠재성을 발견하는 건 더 어려운 일이고요.- P25
그러게요. 참 이상하죠? 일이 쉬워지는 법이 없으니. 오래하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이 일은 그렇지도 않아요. 좋아하는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밉고 싫고 그만두고 싶어도 꾸역꾸역 해나가게 되거든요. 예전에 제 사수가 그러더군요. 뭘 좋아한다는 게 원래 그런 거라고. 더 좋아하고 많이 좋아할수록 마음 다칠 일이 많다고. 그땐 무슨 이런 감상적인 소릴 하나 싶었는데 지나고 나니 틀린 맒도 아니더라고요.- P253
석주는 알고 있었다. 이야기가 향하는 곳이 자신의 내면이라는 것을. 허구의 서사가 불러일으키는 것은 내밀한 기억의 감정이며, 자신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신에게도 돌아오는 것이 실은 읽는 행위의 전부라는 것 또한.
아쉬운 지점이 없진 않았다. 지나치게 망설이는 듯한 도입부와 어수선하게 정리된 결말은 손을 볼 필요가 없었다. 알량한 지위와 권위를 내세운다면 신인 작가에게 수정을 요구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았다. 뭐랄까, 의기소침해진 작가가 마지못해 고쳐온 원고를 받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P267
책을 좋아하나요?
목소리에 감출 수 없는 다정함이 묻어났다. 맞다. 그건 오래전 사랑이 시작된 줄도 모르고, 그것이 삶을 얼마나 바꿔놓을지도 모른 채, 그저 속수무책 그 속으로 뛰어들 준비를 하던 석주에게 누군가 건넸던 바로 그 질문이었다.-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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