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도 춤을 추세요』 , 이서수 소설집, 문학동네
이서수의 단편집 『그래도 춤을 추세요』에는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온다. 그들은 억지 웃음을 쓰거나, 해괴한 막춤을 추거나, 막춤 굿으로 기도하거나, 낯선 땅에서 개척자로 살아간다. 삶의 무게에 지치면서도, 결국 다시 몸을 움직이고 이어 달리는 인물들이다. 「이어달리기」, 「춤은 영원하다」, 「AKA 신숙자」, 「운동장 바라보기」등에 이르기까지 작품집은 서로 다른 삶의 현장을 배경으로 하지만, 그 안에서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문제의식이 있다. 바로 노동과 생존, 가족의 의무와 책임, 죄책감, 다문화와 무지,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몸의 언어로서의 ‘춤’이다.
「이어달리기」의 화자는 직장에 들어가면서 억지 웃음을 배워야 했다. 면접 자리에서 “죽상”이라는 말을 들은 뒤로는 생존의 기술처럼 가면을 쓰고 웃었지만, 그 웃음은 곧 자신을 갉아먹는 기술이 되어 미래는 “텅 빈 점포”(p.34)처럼 공허하게만 다가왔다. 반대로 엄마는 억지를 거부한 세대였다. 청소일을 했던 엄마는 “잘못했을 때만 사과했고, 웃고 싶을 때만 웃었다”(p.19)고 단호히 말하며, 타인의 요구에 맞춰 감정을 꾸미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삶이 덜 무거웠던 것은 아니다. 딸이 타협으로 버텼다면, 엄마는 자기 방식(부모이기 때문에)으로 버텼을 뿐, 결국 두 세대 모두 같은 무게를 짊어진 것이다. 화자가 “일하다 도망치고 싶었던 적 없었어?”라고 묻자, 엄마는 잠시 침묵하다가 “있었지… 네 생각 하면서 참았어”(p.37)라고 고백한다. 화자의 생각과는 대비된다.
이 작품은 억지 웃음을 지으며 가면을 쓰고 달려온 딸과, 자기 방식으로 달려온 엄마가 서로 바통을 이어받는 세대의 생존 계보라고 봐도 될까. 이들이 모두 백수가 되고 추위를 피해 도서관을 가며 서로에게 편지를 쓰는 행위가 그렇다고 생각되었다. 이런 방식의 릴레이가 인상깊었다.
「춤은 영원하다」는 억눌린 삶을 한순간 흔드는 춤의 힘을 보여준다. 엄마는 평생 바람을 피우고 돌아온 아버지를 간병하며 참아왔던 분노를 춤 속에서 터뜨린다. 쪽파를 쥔 채 몸을 흔들다 끝내 “상놈의 새끼, 끝까지…끝까지 참았어, 내가”(p.48)라며 죽은 아버지를 향해 외칠 때, 춤은 말로 다 하지 못한 삶의 무게를 드러내는 것 같았다. 화자는 엄마의 ‘우주’가 열렸다 닫히는 순간을 보게 된다. 할머니에게서 시작된 막춤은 엄마와 이모, 그리고 화자로 이어지며, 이모가 “테크닉보다 진심이 중요해”(p.59)라 말한 것처럼 진심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화자는 “우리의 유전자에 흐르는 막춤은 영원하다. 누구도 막을 수 없다”(p.69)고 고백한다. 서툴고 해괴한 막춤이지만 그 모습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면서도, 동시에 마음이 저릿해진다. 우스꽝스럽고 유쾌한, 그래서 그 웃음 뒤에는 그들의 아픔과 어떤 찰나의 해방감이 함께 내포된 것 같다.
「AKA 신숙자」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엄마가 딸에게 묻는 순간이다. “미리야, 너는 내가 아프면 얼마나 쓸 거니?”(p.142). 반련동물 퐁이에게 500만 원이 넘는 치료비를 쓰며 “내 새끼”라 부르는 딸을 보면서 던진 말이었다. 그 질문은 돌봄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 사랑은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를 묻는 것 같다. 딸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어떤 사랑은 너무 커서 무섭고, 어떤 사랑은 작아서 무겁지.'라고 생각한다. 사랑이 늘 한결같이 따뜻하고 숭고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무겁고 버거운 것이기도 하다는 고백. 그 말 속에 모녀가 함께 짊어진 삶의 무게가 겹겹이 드러나는 듯하다. 이 작품에서도 춤이 등장한다. 이 장면은 분석을 해봐야할 것 같다.
소설집에서 엄마와 딸의 관계는 매우 흥미롭고 솔직하게 그려진다. 딸은 ‘엄마’ 대신 이름으로 부르기도 하고, 불만을 대놓고 말하기도 하면서, 둘은 거리감 없는 친구처럼 지낸다. 하지만 그 안에는 각자의 무게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들은 부양과 노동의 압박 속에서도 자신의 입장을 숨기지 않고, 억눌린 채 받아들이기보다 스스로의 생각을 밝힌다. 그래서 이서수의 모녀들은 흔히 그려지는 희생적이거나 침묵하는 이미지와 달리, 친근하면서도 자기 목소리를 가진 인물들로 보였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서 쓴 솔직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