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학』 2025년 하반기호는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다룬 좌담을 통해 사회 갈등, 취향 공동체, 생활 태도와 소비 방식의 변화를 점검하며 2010년대와 2020년대 문학 세대의 차이를 비교했다. '비평의 눈'에서는 임정연이 성해나의 『혼모노』와 강보라의 『뱀과 양배추가 있는 풍경』을 서평했다. 신작시 특집은 이제니 시인의 「되기—거울을 바라보는 거울」외 4편을 평론가의 글과 함께 실었다. 그 외에도 여러 시인과 소설가들의 신작을 선보인다.
▪️신작시 특집 | 이제니 ㆍ 시세계
"그러므로, 되어보기
―이제니, 「되기―거울을 바라보는 거울」 외 4편"
| 송연정
그러니까 그것은 되어가고 있는 중인 표면이다
물감은 아직 완전히 굳지 않았다
마르기 직전의 흔들림을 간직하고 있다
그것은 시간의 호흡으로 살아갈 수도 있다
그것은 화창한 날의 기분을 비출 수도 있다
그것은 굳이 두고 가는 마음을 헤어릴 수 있다
그것은 손끝으로 부드러운 곡선을 그려낼 수도 있다
그것은 기억나지 않는 빛을 기어이 반사할 수도 있다
그것은 물풀과 향기와 창문과 이름을 반추할 수도 있다
색은 고체가 되어가고 있다
덧칠의 덧칠의 덧칠의 덧칠이 향하는 이야기에 기꺼이 귀 기울이고 있다
말라가는 것이 색의 색을 지워내고 있다
말라가는 피부처럼 갈라지는 흩어짐으로 색의 변모를 돕고 있다
시간의 표면은 굳어가는 것으로 흘러가고 있다
굳지 않기 위한 몸짓을 너는 오래도록 지켜본 적이 있다
늙어가는 나무처럼 비어가는 마음을 오래도록 들여다볼 때마다
너는
―「되기―말라가는 물감의 표면」 부분
문학 장르 가운데 시는 늘 가장 어렵게 다가왔지만, 이번 『한국문학』에 실린 이제니의 시와 비평 글은 내 마음에 와닿았다. ‘되어감’ 속에는 수많은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함께 얽혀 있지만, 그럼에도 “스스로의 가능성을 의심하지 않은 채 그저 ‘되어보는’ 일이 전부일지도 모른다”는 송연정 평론가의 말은 오래 남는다. 그 문장은 내가 걸어가는 삶의 길에서 마주치는 불확실성과도 겹쳐지며, 그럼에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용기를 주는 것만 같다.
이제니의 시는 존재를 완성된 상태가 아니라 끝없이 변해가는 과정으로 보여준다. 물감이 굳어가면서도 흐르는 모습은 정지와 운동, 고체와 액체 같은 대립을 무의미하게 만든다. 그 사유는 곧 나 자신에게도 닿는다. 내 안에는 서로 다른 목소리가 공존하며, 나는 늘 ‘되어가는 중인 나’를 견뎌야 하는 것이다. 거울은 이 흔들림을 비추고, 글쓰기는 그 흩어진 입자들을 모아 변화의 과정을 드러낸다. 이 미완성의 과정에서 비롯되는 새로운 가능성을 믿어야하는거겠지.
'being'과 'becoming' 사이에서 우리는 여전히 흔들리지만, 그 흔들림이 곧 살아가는 방식임을 배운다. 그래서 시가 어렵게만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나를 터칭하는 울림으로 다가왔다.
다시 읽고, 다시 읽고 싶은 시였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서 쓴 솔직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