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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자의 이름

지금 집으로 이사 올 때 가장 공들였던 공간은 침실이다. 퇴근하고 침실 문을 열면(사실 우리집의 모든 문은 늘 다 열려 있지만) 여행 가서 하루 이틀 묵을 호텔방, 더 정확히 말하자면 2박째인 숙소에 들어선 기분이 되었으면 했다. 그래서 호텔처럼 더블 침대 두 개는 아니지만 (공간이 안 나와 ㅠ) 협탁을 사이에 둔 싱글 침대 두 개라도 넣을까 매우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러나 결국 그 공간과 내 마음, 예산과 논의한 결과 모 브랜드의 엑스트라 킹 사이즈로 합의를 보았다. 그 매트리스가 백화점에서만 판매하는 모델이어서 난생처음 한동안 백화점 뭐시기 고객이 돼 보기도 했다. 프레임은 헤드 없는 걸 열심히 찾다가 (이것도 순전히 이전 침대의 헤드에 먼지 앉는 게 꼴보기 싫었으나 청소하기도 싫었던 데에 기인하는 것이다) 아현동 가구거리에서 원목으로 구입했다. 가격은 매트리스의 1/10도 안 하지만 매트리스 고를 때보다 열 배는 되는 시간이 걸렸는데, 마침내 본인이 기획, 판매하는 가구에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는 듯한 가구점 사장님이 블로그에 올려놓은 맞춤한 프레임을 발견했다. 일단 저렴한 원목 가구에 흔히 쓰는 고무나무가 아니라는 게 마음에 들었다. 그 자신감이 좀 거북했지만 그 프레임은 아직까지 ‘가성비 쩌는’ 중인 걸 보니 부심을 가질 만도 했겠다 싶었다.


내친김에 ‘호텔 침구’를 검색해 봤다. 헉, 침대도 살 수 있을 것 같은 가격이다. 대폭 면혼방 천을 떼다 오랜만에 재봉틀을 돌려 베드 스프레드를 여러 장 만들었다. (만든 것까진 좋았으나 재단에 실패하는 바람에 침대보다 너무 커서 장착이 어려웠다. 결국 매트리스 커버는 따로 사고 그 위에 까는 용도로, 그러니까 이불 커버처럼 쓴다. 한정 없이 커도 괜찮을 줄 알았지 뭐야;) 이불은 뭐, 이케아에서는 국내 브랜드에서 찾기 어려운 220x240짜리 이불 커버 디자인도 비교적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호텔 침대요~ 하는 건 다종다양한 베개가 아니던가. 거위털 베개, 솜 빵빵한 보통 베개, 침대를 사면서 받은 기능성 베개를 각 한 쌍씩 배치했다.


당연히 텔레비전도 있어야지. 벽걸이여야 한다. 그러나 아트월도 아니고 벽지인 벽에 구멍을 뚫고 이후 원상복구할 자신이 없어서 이케아 수납장을 하나 사서 텔레비전을 올렸다.


참고. 이케아 가구를 사와서 조립하려는데 파손된 부품을 발견한 경우 고객센터에 전화 후 해당 사진을 전송하면 매우 친절히 바꿔주겠다고 한다. 직접 가지 않아도 택배로 배송해 주기도 한단다. 그러나 (여기가 중요) 사용에는 이상 없는 파손의 경우, 그 제품을 그냥 쓰겠다고 하면 정가의 40%를 할인해 준다. 아쉬운 건 전체 가구 값이 아니라 해당 ‘부품’의 가격이지만 그게 어딘가. 파손 부위가 문 닫으면 안 보이는 데다 딱히 반짝반짝하는 새 물건에 집착하지 않고 교환도 내심 귀찮았던 나는 냉큼 40% 할인을 택했다. 또 참고로 이 옵션은 다 바꿔줄 듯하다가 맨 마지막에 슬쩍 꺼내든다. 그러니 혹시 40% 할인에 관심 있는 사람은 상담원의 말을 끝까지 잘 들어보자.


그러나 이 ‘호텔 같은 침실’의 문제는 어디까지나 ‘같은’에 그친다는 거다. 호텔이야 짐도 몇 없고 정리해 주는 분도 따로 있지만 우리집이 호텔 같으려면 ‘내’가 움직여야 한다. 하니 애초에 호텔 같은 침실은 어불성설. 그리고 집 구조 때문에 로봇청소기 충전대를 놓을 만한 공간이 침실 입구뿐이라는 사실을, 이사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다. 호텔방에 청소기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만날 충전대 탐색을 못 해서 온 집안을 헤매고 다니는 녀석을 더는 두고 볼 수가 없어 결국 침실에 집을 마련해 주었다. 이 얘길 지인에게 했더니 호텔에 애완청소기를 동반했다고 생각하라고...;


그냥저냥한 침실이 될 뻔했던 그 방을 호텔처럼 만들어 준 것이 바로 탁자 스탠드다. 보자마자 반해서 거실과 침실에 같은 디자인으로 들여놓은 이케아 스탠드(우리집은 거의 이케아 쇼룸이다). 딱 호텔방만큼의 조도로 방을 밝혀준다. 침실에 들어서자마자 스탠드를 켜면 하루 종일 여행지를 힘들게 걷다가 숙소로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놓인다. 그래서 들어가서 바로 자야 할 때조차 잠깐이라도 스탠드를 켠다. 불이 짠 하고 켜지면서 묘한 안도감이 드는 그때가 하루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아 그러네, 의사가 뭐 할 때 제일 좋냐고 물어볼 때마다 대답하기 난감했는데 이 순간을 얘기하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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