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책의 서문에는 내 이름이 나온다. 땡땡 선생이 아니었더라면 이 책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라고. 여러 편의 국내외 학자들의 발표문을 엮어 낸 그 책을 만들기 위해 나는 저자들에게 일일이 메일을 보내 출판 허락과 수정 의사가 있는지 문의하고, 국내 저자들의 수정 일정을 점검하고 취합했다. 몇몇 학자의 글을 번역했고, 다른 이들의 번역을 검토했으며, 원고가 드디어 완성된 후에는 출판사와 왔다 갔다 하면서 여러 번의 편집과 교정을 거쳤고 (지금 생각해 봐도 ‘쓰나미’를 ‘츠나미’로 모두 바꾸라고 표시해 왔던 처음 편집본은...;;; 업계에서 나름 인지도 있는 출판사였는데...;;;) 나는 한갓지기로 소문 난 그 자리에 있으면서 주말 출근(물론 무급)을 한 유일한 사람이 되었다. (왜 내가 가면 일 없다고 소문 난 자리도 갑자기 일이 많아지는지는 평생의 미스터리;) 어느 글도 지적했듯 번역투의 문장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지만, 독자들은 누가 어느 글을 번역했는지 전혀 알 수 없지만 (나는 지금도 이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내 이름은 그 서문에서밖에 찾을 수 없지만 이 책은 나의 숨은 자랑이다.
그 책에는 또 다른 뒷이야기가 있는데, 어떤 글 하나는 영한 번역인데도 도저히 한글 문장을 읽을 수가 없었다. 나는 당시 내가 그 글을 읽지 못하는 이유가 그 학문의 심오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들만의 세계가 있을 거라고, 비록 비문투성이에 난해한 용어가 가득했지만 같은 학문을 하는 그들 서로는 알아볼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러나 번역자와 같은 학문 전공자였던 기획자는 그 글을 읽어보더니 딱 잘라 말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아 그래, 누구였더라. 책이 안 읽히면 자신이 모자라다 자책하지 말라고. 그건 순전히 저자/역자가 잘못 쓴 탓이라고 했었는데.
원래 그 글은 책의 맨 앞에 실릴 예정이었으나 기획자는 일단 그 글을 책의 맨 뒤로 옮기고 네가 다시 손을 보라고 했다. 으악, 드릅게 어려운 글인데. 그러나 기획자는 내 상사였으니 별수 없는 노릇. 원본과 대조해 가며 문장을 하나하나 뜯어보기 시작했다. 정작 맘 먹고 대조해 보니 살릴 수 있는 문장이 거의 없어서 여러 날을 재번역에 매달렸다. 그리고 마침내 완성된 글을 기획자에게 보냈더니 이내 짧은 답장이 왔다. “@@(그 글의 원저자)을 다시 맨 앞으로!”
그러저러한 과정을 거쳐 책이 나오자 당시 나와 같이 일하던 사람은 “우와, 기획자님이 땡땡 씨 아니었으면 책이 안 나왔을 거라고 쓰셨던데?!”라고 말을 걸었다. 약간의 부러움과 질투가 묻어 있는 걸 모르지 않았으나 “사실이니까요”라고 말해주었다. 그는 나의 대답에 벙찐 표정이 되었지만 저간의 사정을 알았다면 그럴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서문’에서 시작된 이 에피소드를 떠올리게 된 건 최근 읽기 시작한 어떤 책의 서문 때문이다. 둘의 공통점은 ‘서문’이라는 것밖에 없지만; 아무튼 인트로와 감사를 겸하는 그 글의 마지막 문장은 이러했다. “And also, as always, we thank our spouses, our own life-long strategic alliances, @@ and ##. (그리고 늘 그렇듯 우리는 각자의 배우자, 평생의 전략적 동맹인 @@와 ##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보았던 배우자에 대한 수식 중 가장 정확하고 바람직한(?) 문구가 아닌가 싶다. 배우자, 함께 전략을 짜고 헤쳐나가는, 평생 내 편. 어떤 사람은 결혼해서 좋은 점이 ‘평생 내 편’이 생겼다는 거라던데, 내게도 평생 내 편이 있다. 그들과 다른 점은 우리는 혼인으로 묶이지 않았다는 것뿐. 사람들은 가끔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결혼도 하지 않고’ 관계를 이어올 수 있냐고.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결혼을 하지 않아서’ 그럴 수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