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무렵부터 걸레질과 설거지의 세계에 들어섰음에도 나는 정리와 청소, 설거지를 극단적으로 싫어했다. 특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내 공간’은 말 그대로 난장판. 2인 1실 하숙집에서도 내 구역과 룸메이트의 구역은 확연히 나뉠 정도였으니. 설거지는 한 달에 한 번, 청소는 1년에 한 번 할까 말까, 바닥에는 온갖 책과 무언가의 잔해들이 어지러이 널려 있었고, 발 디딜 틈이 오솔길처럼 나 있었다. 침대엔 누울 자리 빼고는 팔 닿는 곳에 항상 책들이 놓여 있었다. 침대가 없었을 때는 요는 1년에 두어 번 개는 것이었다. 전기와 가스가 분리된 다가구 주택(보일러 하나로 한 층을 모두 데우던 이전 원룸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일명 분리형 원룸에서 살 때 청소에 소질 있던 당시 친구는 고기를 대가로 하루 종일 우리집을 청소해 주고 가기도 했다. 단칸방 청소에 거의 하루가 걸릴 정도였다니, 지금 생각하면 헤아릴 수 없는 수준이다.
엉망진창인 상태 그대로 우리집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그때도 지금도 애인 한 명뿐이다. 나머지(엄마 아부지 포함)는 결코 내가 ‘무장해제’된 공간에 들어설 수 없었다. 착한 애인은 한동안 내가 치우지도 않으면서 집이 너무 어지럽고 더러워졌다고 징징댈 때 한 번씩 청소를 해주었다. 비록 작지만 방이 세 칸이나 되는 집이었는데, 그는 집에서 청소기를 가져와 (우리집엔 그런 거 없었다) 내가 있을 때는 물론, 내가 없는 시간에도 종종 청소를 해주고 갔다. 그 다음 집에서도. 그 다음 다음 집에서도. 당시는 우렁총각이라고 불렀는데 이제 할매 할배가 되어가니 우렁서방으로 기억이 된다.
애인은 늘, 내가 문제가 아니라 집이 문제라고 했다. 집이 안 좋아서 내가 정리를 안 하는 거라고, 그냥 내 집도 아닌데 어지르고 살다 싹 다 버리고 이사해버리라고 부추기곤 했다. (잊을 때마다 한 번씩 등장하는 엔트로피의 법칙;)
정리라는 걸 하는 버릇을 들인 건 그로부터 몇 년 뒤, 사장이랑 대판 싸우고 회사를 때려치운 후 앞날이 불투명한 백수로 온종일 집에만 있을 때였다. 정리와 청소가 너무 싫으니 처음부터 어지르지 말자는 아주 단순하지만 외면하고 싶었던 결론에 드디어 도달한 것이다. 서랍장의 옷을 몽땅 꺼내 차곡차곡 개서 착착착 넣었고, 설거짓거리는 나올 때마다 해치웠다. 다만 바닥과 부엌 타일 청소 같은 건 그때도 거의 안 했는데 정리가 되어 있으니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다. 그 집에서 이사 나올 때 전문 임대사업자였던 집주인은 이렇게 집을 깨끗하게 쓴 세입자는 처음이라고 했다.
또 또 시간이 흘러 여러 집을 전전하다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왔다. 한 달 27만 원짜리 하숙방에서 시작한 서울살이가 방 세 칸에 화장실이 두 개나 있는, 무려 아파트로까지 넘어온 것이다. 심지어 새거였다! 여전히 나는 바닥 청소는 하지 않지만 하루 한 번 로보킹이 바닥을 쓸어주고 일주일에 한두 번은 에브리봇이 걸레질을 해준다. 그러한즉, 평소 우리집 바닥에 돌아다니는 물건은 이제 없다는 얘기다. 설거지 그릇이 많은 날엔 식기세척기가 나보다 더 깨끗하게 닦아준다. 애인은 우리집 개수대에 설거짓감이 없는 건 처음 본다고 했다. (이건 사실이 아니다, 그 전전전전 집부터 그랬다) 그러면서 그는 말했다. 거 보라고. 내가 집이 문제라고 하지 않았냐고. 그렇다. 우리집엔 이제 타조털 먼지떨이도 있고 (타조에서 쥐어뜯은 게 아니라 걔네가 흘린 털을 주워 만든 거라고 한다. 실제 어떻게 모으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타조 뒤를 좇으면서 털을 하나씩 줍는 모습을 상상할 때마다 웃겨 죽겠다) 구석 청소용으로 마련한 예쁜 BLDC 모터 청소기도 있고, 화장실 거울과 수전엔 얼룩 하나 없다. (세면대가 좀 더러워도 수전이 깨끗하면 다 깨끗해 보인다고 믿음) 일주일에 한 번쯤은 화장실 청소라는 것도 하고, 서랍 안이 너저분한 게 싫어서 서랍 정리용품도 하나씩 사서 정리하고는 혼자 즐거워한다. 엊그제는 리모컨이 여러 개 굴러다니는 게 보기 싫어서 연필꽂이를 사다 꽂아 넣었다. 이제 우리집은 누가 아무리 갑자기 와도 문을 열어줄 정도는 된다. 며칠 전 소독하러 오셨던 분은 심지어 “예쁘게 해 놓고 사시네요”라고 하고 갔다! 지금은 인연이 끊긴, 옛날에 우리집을 청소해 주러 왔던 이가 와본다면 아마 기절할 정도로 놀랄 것이다.
어제 인덕션 상판을 스크래퍼로 열심히 긁어대면서 애인의 말이 떠올랐다. 정말 집이 문제였던 걸까? 아니다. 이 모든 일은 우렁서방이 이제 나이 들고 힘이 없어 청소를 안 해주기 때문이다...라는 건 농담이고, 새로 읽기 시작한 책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는 법”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불안장애 환자를 많이 만난다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쓴 책인데, ‘자존감’이란 건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것이다. 자존감이 낮아서 불안해지고, 병원에 오는 게 아니다. 취직이 안 돼서 자존감이 낮아진 사람의 자존감이 높아지는 방법은 취직이 되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취직을 위해 “뭐라도 하라”는 게 그의 조언이다. 나는 지금 “뭐라도 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