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성격이 조급하고 과격한 데 비해 내 운전 습관은 매우 느긋하고 점잖은 편이다. 실생활에서의 내 성격을 아는 이들이 내 운전 습관을 보고 같은 사람인지 의심할 정도이니 말 다했지. 엄마는 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더니 아버지랑 똑닮았다고 했다. (그러니까 아버지도 과격하고 짜증 잘 내는 사람이지만, 사실은 겁 많고 예민한 사람이란 뜻이다;) 운전 경력 30년이 넘었는데도 가끔 남의 집 기둥을 들이받고 다니는 어머니로서는;;; 답답할 만도 하다.
아 아무튼, 차로 변경 타이밍을 놓치면 까짓 좀 돌아가지 뭐 싶고(덕분에 어느 날은 아현동에 가야 할 걸 애먼 여의도를 한 바퀴 돌고 왔다. 다녀본 사람은 알겠지만 공덕에서 여의도까지는 유턴할 수 있는 데가 없다;), 경적도 몇 년에 한 번 울릴까 말까, 여간해선 울리지 않는다. 사실 거리에서 들리는 대부분의 경적 소리는 위험에 대한 경고보다는 화풀이가 더 많은데, 이왕 벌어진 일 화풀이해서 뭘 어쩌랴 싶은 것이다. 가장 최근에 빵빵거렸던 일은 골목으로 들어섰는데 그 앞에서 알짱거리고 있던 비둘기 두어 마리가 당최 움직일 생각을 안 해서 피하라고 콩콩콩 했던 것이다. (그런데 결국 안 비켜줘서 어렵게 피해 갔다 ㅠㅠ)
그런데 사실 내 차는 여유로움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열 살이 다 되어가는 경차다. 20년이 다 되어가는 중고 소형차에서 새차로 바꾸고 나는 한동안 왜 사람들은 모두 이 귀염둥이를 타지 않는 걸까 신기했다. 주차 쉬워, 골목길 다니기 쉬워, 공영주차장과 톨게이트비 할인에, 집에 차가 경차 한 대만 있을 경우 유류세도 지원해 주는데 왜왜왜 다들 경차를 타지 않는 것이지? 그러던 어느 날, 앞에 걸리적거리는 차가 있어 추월해 버릴 생각에 차로를 바꿔 액셀을 부앙 밟다가 알았다. 응? 차가 왜 안 나가? 아...
요즘 같은 때는 오르막을 오를 때 에어컨을 잠시 꺼줘야 하고 (...) 그도 모자라 핸들을 토닥이며 겸둥이 힘 내~! 할 수 있숴어~! 격려해야 하지만, 뒤쪽에 다른 차가 속도를 높이면서 붙으면 눈치껏 냉큼 냉큼 비켜줘야 하지만, 간혹 초보도 아닌데 빵빵대는 소릴 들어야 하지만 희한하게 경차라서, 혹은 여자 운전자라서 무시 당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 잘못이 아닌데도 나한테 화내는 차들이 없지 않고, 내 앞을 막무가내로 끼어드는 차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나는 그 차들을 보면서 내가 경차라, 여자라 무시 당한 게 아니라 그 차 운전자들의 인성이 막돼먹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운전을 어떻게 배웠길래 그따위야, 야~ 그렇게 운전할 거면 길거리에 나오지 말라 말이다, 오늘은 운전하며 마음 수양을 하라는 날인가, 날이 더우니 이상하게 운전하는 자들이 떼로 몰려 나왔나 보군, 어이구 그래 가라 가라 비켜 비켜. 게라웃 오브 마이 라이프, 꿍얼꿍얼.
물론 내가 실수했을 때는 당연히 미안해 하는데, 간혹 내 잘못해 비해 과하다 싶게 화내는 차들을 만날 때도 있다. 그럴 때도 내가 크고 비싼 차를 몰았더라면 저렇게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보다는 아 웬만히 해라~ 고정해 고정해~ 하기 일쑤다. 그들은 내가 경차라, 혹은 여자라 얕봤을 수 있지만 그건 그런 왜곡된 가치관을 가진 그들 자신의 문제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자존감이 높다고 하지만, 나는 간혹 이게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때가 있다. 그러고 보면 타인에 의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과 내 잘못은 없어, 다 니 탓이야는 한끗 차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걸 가르는 기준은 뭘까.
혹은 이게 지나친 자기합리화의 소산인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내가 경차라 무시 당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닐까 하는. 그러니까 음, 전 직원이 채 열 명이 안 됐던 첫 직장에서 나는 사장의 손님이 오면 커피를 타가야 했다. 한데 나는 그게 내가 ‘여직원’이어서가 아니라 ‘회사의 막내’이기 때문이라고 혼자 주문을 걸었다. 몇 달 뒤 남직원들이 새로 들어왔어도 그들은 커피 따위 타지 않았는데, 그 때 나는 ‘내가 커피를 잘 타니까’로 주문을 바꿨던 것 같다. 실제 커피믹스가 지금처럼 대중화되기 전, 나는 소위 다방 커피를 기가 막히게 타는 사람이었다.
운전 하나 가지고 이렇게 오만 가지 생각을 펼치는 나도 참.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