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나와 가장 잘 맞았던, 그러니까 나를 정말 잘 조련했던 상사는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땡땡 선생에게는 일을 시킬 필요가 없어. 그냥 그 앞에서 ‘이게 필요한데...’ 한 마디만 하면 돼. 앞에서는 이러쿵 저러쿵 그게 왜 필요하냐고 하기 싫다고 하지만 다음 날이면 다 해서 가지고 와.
그리고 또 다른 언젠가 그는 말했다.
땡땡 선생은 정말 쓸모 있는 사람이야. 하지만 그걸 쓰려면 매뉴얼이 좀 필요하지.
그는 정말 어디서 그런 매뉴얼을 구한 것인지, 내게 일 시키는 법을 귀신 같이 알고 있었다. 그는 나의 성급하고 까칠한 성격을 문제 삼기보다 그걸 이용해 자발적으로 일을 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와 일했던 3년 동안 단 한 번도 입 닥치고 무조건 하라는 식의 지시를 받아본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이 말한 일에 대해 내가 거부감을 드러낼 경우 혼자 충분히 생각할 시간(그래봤자 몇 분에서 몇 시간이면 되었다)을 주었고, 그가 생각한 필요를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려 주었으며, 그 일을 잘 해내리라고 믿고 맡겨 주었다. 그 과정에서 방향성을 고민할 때는 가이드를 주었고, 이건 제 선에서 하기 어려우니 좀 해 주세요, 하면 기꺼이 골치 아픈 일을 맡아 주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가 필요하다고 한 것들 중 쓸모없는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냥 땡땡 선생, 이게 좀 필요할 것 같은데, 라고 말만 하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적당히 먹여주고 알을 낳고 싶은 생각만 들게 하면 매일 하나씩 황금알을 낳아주는 거위였던 셈이다. 파닥파닥.
여러 번 회사를 옮기면서 나는 그 모든 조직에 황금알을 몇 개씩 남겼지만, 그와 일할 때만큼 내 역량이 극대화된 적은 없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의 정년퇴직일에 온 마음을 다해 당신은 내 인생 최고의 상사였노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는 그 조직에서 가장 격의 없었던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권위 있는 사람이었고, 그의 밑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지극한 행운이었다.
그런데 지금 회사에서 나는 이전에 일하던 조직과 달리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기준에 따른 것이지, 그 정도라도 여느 사람들에게는 만족스러운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요인은 역시 예의 그 ‘완벽한 사람’이었다. 내가 입사하기 몇 년 전부터 나를 알고 눈독 들였던 그는 내가 일을 잘한다는 것만 알았지 그 일을 잘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도통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가 했던 일은 내 목을 쥐고 흔들며 “낳아! 낳으란 말야! 너 내 말 지금 무시해?” 이런 것들이었으니까.
지금쯤 그는 본인이 사람을 잘못 봤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 일 잘한다고 소문나 있길래 그런 줄로만 알았는데 그거 다 헛소문이더라고. 기껏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데려와 배를 갈라버렸다는 생각은 못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