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할 때 마다 따라붙던 더위가 가실 즈음 백수린 작가님 신작 에세이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과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간만에 신청한 창비 온라인 클럽 ‘스위치’ 서평단에 당첨된 덕이다. ‘친애하고 친애하는’ 이란 소설로 처음 작가님을 알게 된 후 줄곧 멋진 단편 소설로 만나뵙던 분이었는데 이번엔 운이 좋아 작가님 신작을 빠르게 만나게 됐다. 지난 단편집 ‘여름의 빌라’를 재밌게 읽어 (특히 애정어린 시선으로 노년의 삶을 그린 수록작 ‘흑설탕 캔디’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작가님의 산문은 또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 지 궁금했다.
작가님은 소설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들에 섬세하고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신다. 그 애정은 눅진해 책을 타고 내게도 전해졌다. 그래서 아름다운 묘사로 가득한 작가님 특유의 만연체에 나는 곧잘 녹아내렸다. 책을 읽다 당도 높은 활자들에 사로 잡히면 옆에 있던 베개를 주먹으로 퍽퍽 내리치고 이불을 감싸쥐고 이리저리 구르는 식으로 찐하게 끓어오르는 감탄을 식혔다. 이 책에도 그런 문장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사랑하는 문체가 책의 첫 인상을 심심하게 하게 만들기도 했다. 개인적인 욕심으로 모든 문장을 닮고 싶었기 때문에 작가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말씀에는 정작 집중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또 주어진 소통 창구로 관심있는 온갖 분야를 기웃거리다 마케팅의 표적에 쉽게 걸려드는 나로써는 고요한 에세이 속 작가님 일상이 처음엔 적막으로 다가왔다. 많이 보진 못 해 다소 섣부른 감상이겠지만 다른 소설가 분들 에세이를 볼 때도 종종 했던 생각이다. 소설가 분들은 제 삶에서 마주할 울퉁불퉁하고 못난 감정들이나 해프닝들은 죄다 작품 속 인물에게 내어주시는 건가 하고.
반려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지만 제목이 된 문장이 실린 곳이자 봉봉의 이야기가 등장하고서부터 조금씩 작가님 말에 가까워졌다. 그 부분을 펼쳤던 순간이 기억난다. 친구들과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위해 토요일 오전 일찍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약속 장소로 가던 차였다. 지하철을 타고 절반즈음 왔을까, 모종의 사유로 갑작스레 모임이 취소 되었다. 곧장 발을 돌려 반대편 지하철을 탔다. 다음 일정을 정하려 친구들과 이야기를 했지만 이미 각자의 스케줄이 있었다. 약속을 잡으려는 시도가 번번이 어긋나 마음이 조금 꾸깃해졌다. 그냥 집으로 가려다 시간도 남고 아침 일찍 움직인 것도 아쉬워 내친 김에 근처 공원이나 한 바퀴 돌고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공원 초입부터 늘어선 키 큰 은행나무들엔 노란 물이 들어 있었고, 어느 샌가 파란 하늘은 더욱 높아져 있었다. 이 날만큼은 평소와 다른 길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에 갈림길에서 방향을 틀었다. 몇 걸음 가지 않아 눈 앞에 색색의 코스모스들이 나타났다.
외출할 때 마다 따라붙던 더위가 가실 즈음 백수린 작가님 신작 에세이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과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간만에 신청한 창비 온라인 클럽 ‘스위치’ 서평단에 당첨된 덕이다. ‘친애하고 친애하는’ 이란 소설로 처음 작가님을 알게 된 후 줄곧 멋진 단편 소설로 만나뵙던 분이었는데 이번엔 운이 좋아 작가님 신작을 빠르게 만나게 됐다. 지난 단편집 ‘여름의 빌라’를 재밌게 읽어 (특히 애정어린 시선으로 노년의 삶을 그린 수록작 ‘흑설탕 캔디’가 제일 기억에 남는다.) 작가님의 산문은 또 어떤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 지 궁금했다.
작가님은 소설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들에 섬세하고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신다. 그 애정은 눅진해 책을 타고 내게도 전해졌다. 그래서 아름다운 묘사로 가득한 작가님 특유의 만연체에 나는 곧잘 녹아내렸다. 책을 읽다 당도 높은 활자들에 사로 잡히면 옆에 있던 베개를 주먹으로 퍽퍽 내리치고 이불을 감싸쥐고 이리저리 구르는 식으로 찐하게 끓어오르는 감탄을 식혔다. 이 책에도 그런 문장들이 가득했다. 하지만 이번엔 내가 사랑하는 문체가 책의 첫 인상을 심심하게 하게 만들기도 했다. 개인적인 욕심으로 모든 문장을 닮고 싶었기 때문에 작가님께서 전하고자 하셨던 말씀에는 정작 집중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또 주어진 소통 창구로 관심있는 온갖 분야를 기웃거리다 마케팅의 표적에 쉽게 걸려드는 나로써는 고요한 에세이 속 작가님 일상이 처음엔 적막으로 다가왔다. 많이 보진 못 해 다소 섣부른 감상이겠지만 다른 소설가 분들 에세이를 볼 때도 종종 했던 생각이다. 소설가 분들은 제 삶에서 마주할 울퉁불퉁하고 못난 감정들이나 해프닝들은 죄다 작품 속 인물에게 내어주시는 건가 하고.
반려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지만 제목이 된 문장이 실린 곳이자 봉봉의 이야기가 등장하고서부터 조금씩 작가님 말에 가까워졌다. 그 부분을 펼쳤던 순간이 기억난다. 친구들과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위해 토요일 오전 일찍 집에서 한 시간 거리의 약속 장소로 가던 차였다. 지하철을 타고 절반즈음 왔을까, 모종의 사유로 갑작스레 모임이 취소 되었다. 곧장 발을 돌려 반대편 지하철을 탔다. 다음 일정을 정하려 친구들과 이야기를 했지만 이미 각자의 스케줄이 있었다. 약속을 잡으려는 시도가 번번이 어긋나 마음이 조금 꾸깃해졌다. 그냥 집으로 가려다 시간도 남고 아침 일찍 움직인 것도 아쉬워 내친 김에 근처 공원이나 한 바퀴 돌고가기로 마음을 바꿨다.
공원 초입부터 늘어선 키 큰 은행나무들엔 노란 물이 들어 있었고, 어느 샌가 파란 하늘은 더욱 높아져 있었다. 이 날만큼은 평소와 다른 길을 걸어보고 싶은 마음에 갈림길에서 방향을 틀었다. 몇 걸음 가지 않아 눈 앞에 색색의 코스모스들이 나타났다. 아름다운 광경을 두고 매정하게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휴대전화부터 꺼내들었다. 내 눈에 보이는 색색의 물결 그대로를 사진으로 담고 싶었지만 꽃 무더기를 찍는 건 생각보다 까다롭다. 꽃밭을 화면에 담으면 송이 송이 꽃들이 흐릿해 지고 그래서 다가가면 꽃보다 푸른 줄기가 화면에 더 많이 담겨 꽃이 듬성해 보이기 때문이다. 무릎을 굽혔다 폈다 휴대전화를 꽃에 가까이 가져갔다 멀어졌다 하며 내가 담고 싶은 모습에 가까워질 때 셔터를 눌렀다. 마음에도 눈에도 코스모스가 한아름 들어왔다.
발걸음을 돌려 잔디 언덕 사이로 난 조그만 길을 따라 걸었다. 여름에서 몇 계단 내려온 가을볕은 다정했다. 저 멀리 익숙한 동요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가 들려왔다. 이 날 있었던 가족 단위 행사 덕분에 스피커가 설치되어 있었다. 가을의 아름다움에 이내 펴진 마음은 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게 했다. ‘혼자라고 느껴질 때면 주위를 둘러보세요. 이렇게 많은 이들 모두가 나의 친구랍니다.’ 무심코 듣던 노래였는데, 이 부분에 이르러서는 노래가 끝나고도 몇 번이고 가사를 소리내 말해 봤다. 이렇게 많은 이들 모두가 나의 친구 랍니다.
전날 마신 술로 숙취가 완전히 가시지 않은데다 따뜻한 볕이 자꾸 나를 나른하게 해서 결국 키 작은 코스모스 옆 벤치에 드러누웠다. 눈 감고 누워 볕을 쬐다 이 때다 싶은 마음에 가져간 에코백에서 책을 꺼내들었다. 언젠가 작가님 sns에서 스친 봉봉의 순간순간이 있었다. 이어 봉봉과 작가님이 주고 받은 사랑에 대한 기록들. 내게 와 준 존재로부터 비롯된 충만함은 이내 타인을 향한 관심과 애정이 되었고 그것이 점점 주변으로 번져나가는 모습은 찬란했다. 모든 순간이 작가님이 아끼는 유리병처럼 매끈하지는 않았지만 본디 사람이란 ‘여러가지 면과 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매일 흔들리기’ 때문에. 돌아갈지 언정, 긍정을 품고 조금씩이라도 나아가는 사람이 도달할 수 있는 삶의 다채로운 모습들이 아름다웠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근무 중인 회사 근처엔 ‘아무책방’이라는 이름의 서점이 있었다. ‘아름답고 무용한’ 의 줄임말에서 비롯 됐다고 한다. 읽는 내내 그 이름이 자꾸 떠올랐다. 쓰임에 따라 가치를 평가하는 사회에서 (심지어 사람마저도) 작고 오래된 것에 마음을 아끼지 않는 작가님 모습에 자주 뭉클했다. 금방이라도 바스라질 듯 메말라가는 요즘 세대에 필요한 건 책이 보여준 다정함일 것이다. 내 옆의 이도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믿으며 그의 행동에 주는 한 뼘만큼의 여유, 나의 선택이 불러올 여러 상황을 상상하며 한 발 물러나는 배려. 그리고 회피하지 말고 끝까지 긍정할 수 있는 용기. 우리 각자가 만들어 낸 작은 움직임들이 곧 변화를 불러오리라 믿는다. 하여 내일은 서로에게 조금 더 다정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