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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기 캐리어가 아닙니다
- 송해나
- 12,600원 (10%↓
700) - 2019-07-03
: 1,442
나는 ‘대학교’ 라고 부르기엔 규모가 작고 십대라면 꿈꿀 법한 대학생활을 즐기기엔 좀 미약한 환경의 학교를 졸업했다. 학교를 열심히 다니지 않아 대학 동기나 선배들의 소식을 들을 길이 좁은데, 가끔 인스타를 둘러보면 내가 그나마 대학 생활을 즐길 때 함께 술 먹고 놀던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어느 덧 한 아이의 보호자가 되어 있는 걸 확인한다. 대개 아이 사진이 그들 인스타그램의 피드를 장식하는데 그 때 마다 나는 뭐라 일러야 정확할지 모르나 생경함, 경이 같은 것을 느낀다. 아직도 정신적으론 20대 초반을 못 벗어난 나를 훨씬 앞질러 인생 과업을 차근 차근 수행해가는 그들을 볼 때 마다 모종의 존경심을 느낀다.
결혼 생활도 그렇지만 특히나 ‘임신’과 ‘출산’이란 나에게 막연하기만 했다. 임신을 하면 미디어에 그려지는 대로 부푼 배와 펑퍼짐한 옷을 입은 온화한 모습의 임산부가 떠올랐고, 한 생명을 품은 그들의 열 달은 약간의 입덧과 배가 나오고 살이 찌는 등의 외형적 변화로만 나에게 각인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기간을 마무리 하기 위한 극악의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정도. 출산보다도 앞으로의 시간 에 한 생명을 책임지겠단 그들의 결정을 두고 나는 결연함마저 느끼곤 했다.
이번 책은 전부터 트위터를 통해 소식을 들어오던 ‘임신일기’ 계정주 분의 기록을 엮은 것이다. 140자 제약이 있는 트위터 특성상 이 분의 멘션은 긴 타래로 풀어지곤 했는데, 웹 상의 긴 글(특히 트위터이지 않나...)에 약한 나는 ‘하트’만 누른 채 그 분의 이야기를 넘기기도 했었다. 이번에 좋은 기회를 통해 그 분의 열 달을 오롯이 엿 볼 수 있게 되었는데, 첫 장부터 ‘이게 (내가 모르던) 실인가’ 싶어 당황스러웠다. 나에게 와 닿건, 이해가 안 되건 조금이라도 그냥 못 넘어가겠으면 인덱스를 붙이곤 했는데 처음엔 책의 파도가 너무 세서 도대체 어떻게 적응을 해야 할까, 어디서부터 받아들여야 하나 우왕좌왕 하다 정신차리자 맘 먹고 한 장 한 장 넘겨가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 여파가 이어지고 있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중엔 ‘무계획이 최고의 계획’이라는 대사가 등장한다. 모든 게 계획대로 되지 않는 단 거다. 계정주분도 철저한 계획 아래 임신을 하셨지만 그 후 겪은 열 달 간의 이야기는 모두 예상의 근처에 가볼 법도 못 한 일들이었다. 오죽하면 ‘속아서 한 임신’ 이라는 문구가 등장할까. 그렇다고 진짜 속아서 하셨다는 건 아니다.
이 책을 통해서 본 임산부를 대하는 우리 나라의 태도는 조악했다. 제도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성인 여성은 ‘누구나’ 그래왔듯 아이를 갖고, ‘얌전히’ 재생산에 임해야 하는 납작한 존재다. 국가가 출생률 장려를 위한답시고 만들어놓은 여러 제도들은 시혜적이고 단편적이기 그지없다. 그런 제도들은 사람들의 인식을 평생 녹지 않을 비누처럼 단단히 만들었다.
책 초반엔 임신과 동시에 태어날 생명을 위해 ‘저도 모르게 노력을 다하는’ 마음이 계정주 분에게 녹아든 듯 해 그부터 안타까웠다. 아직 스스로 생각할 수도 없고 눈으로 식별 조차 불가능한 세포 하나 때문에 계정주 분의 온갖 신경이 그 곳으로 집중해 있는 것 같아 읽는 내가 다 기빨렸다. 그 후 그 분에게 닥쳤던 ‘무지로 인한 무례’는 셀 수 없이 많아 말할 것도 없고. 거기다 더해지는 여러 신체적 고통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초점이 모두 본인이 아닌 ‘뱃 속의 아기’로 향할 때의 무력감이나 좌절감은 또 어떠셨을 지, 난 감히 상상할 수 없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임신과 출산에 있어 복지 제도가 잘 마련되어 있다. 내 인생 과업의 절대 마지노선은 ‘결혼’이라 생각하여 출산으로 얻을 혜택들에 나는 배제된단 사실에 아쉬움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고, 그런 제도를 활용하시는 분들을 볼 때 마다 은근한 부러움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나 또한 책에 나왔던 무례한 사람1 이었음을 깨달았다. 내 몸의 주인은 나고 내 몸의 결정권 또한 나에게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왜 ‘임산부’ 분들의 입장을 단편적 생각해 왔는 지 지난 내가 창피했다.
지금도 가끔 트위터에 올라오는 ‘임신일기’ 님의 글을 본다. 여전히 나는 하트를 누르고 피드를 재빠르게 올려 새로고침 하지만, 나에게 ‘출산’ 이라는 세계가 어떤 지 세세한 경험을 알려주신 해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아이와 해나님과 그 가족이 행복한 시간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물론 해나님 경험 또한 수 많은 여성 이야기 중 하나임을 안다. 그렇기에 다른 이들의 이야기에도 눈을 뜨고 귀를 열어야 함을 뼈저리게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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