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얌님의 서재
  • 경애의 마음
  • 김금희
  • 14,400원 (10%800)
  • 2018-06-15
  • : 9,662

별 것도 아닌 일에 울컥하는 요즘이다. TV를 넘기다 익숙한 그림체가 등장하기에 봤더니 '벼랑 위의 포뇨' 였다. 극적인 갈등 없이 동화 같은 서사로 진행되는 그 영화에서 가장에 기억에 남는 건 포뇨가 정말 천진난만한 목소리로 웃는 부분이었다. 이전에 한 번 본 적 있는데도 그 장면의 전후가 어땠는 지는 기억 나지 않고 포뇨가 까르륵 웃는 장면만 자꾸 맴돌았다. 여기서 갑자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같이 보던 여동생이 알면 아무리 막역한 사이라 해도 나를 유난이라 생각할까봐 마음을 가라앉히려 노력했었다. 이 외에도 빨강머리 앤이 자신에게 무례했던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솔직하게 화를 낼 때, 즐거운 멜로디의 자우림 노래를 들을 때 눈물이 핑 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사소해 민망할 정도다. 하지만 이젠 나이도 적당히 먹어 다른 사람 앞에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만큼 어리숙 하진 않다. 8장의 제목인 '다친 줄도 모르고 웃는'처럼 상황보다 내 감정이 우선하는 게 아니라 상황을 살피고 감정을 억누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다. 내가 무어라고 느끼건 간에,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봐, 분위기를 차갑게 만들까봐, 괜히 분란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등의 이유로 침묵을 지켰다. 그 순간엔 마음이 편했고, 표면적으로는 어떤 문제도 없어서 잘 넘어가는 듯 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석연찮은 무언가가 마음 한 켠에 쌓여갔다. 그건 내 맘 하나 편하자고 했던 일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눈물을 머금고 덮었던 상처를 다시 한 번 건드리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가격과 실용성을 따져 구매했기에 합리적이라 생각했지만 그 물건의 생산 업체는 우익 단체를 후원한다던지, 내가 즐겨 듣는 밴드 보컬이 성추문에 휩싸여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던지와 같은 일들. 나에게는 즐거움으로, 편리함으로 다가왔던 많은 것들의 뿌리를 찾아 파고들어보면 마냥 진실되고, 깨끗하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고 고민할 때 마다 주변 사람들은 뭐가 그리 예민하냐며, 그런 거 하나하나 다 따지면 뭘 입고, 뭘 먹고 살아야 하냐, 너무 융통성이 없는 것 아니냐며 작은 핀잔을 주곤 했다. 자라고 배울 땐 타인의 아픔에 공감해야 한다, 항상 정직하고 솔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등의 이야기들 속에 살게 하고선 막상 사회에서는 그 반대로 행동해야 한다니, 나에게 그런 이야기를 건네주었던 책이나, 영화, 어른들 모두에게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니냐고 되받아치고 싶었다. 그렇게 조금 더 영악하지 못했던 과거를 후회하던 차 경애와 상수를 만나게 됐다.

 

   경애와 상수는 모두 소신을 지키며 사는 사람이다. 경애는 회사의 부당함에 항의하기 위해 머리를 깎았다. 그렇게나 절실한 마음이었건만 그 안에서 생긴 또 다른 약자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성희롱을 당한 동료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던 것이다. 비록 파업이 흐지부지 되긴 했으나 경애의 마음 덕에 피해자는 큰 위안을 얻었을 것이다. 나는 소설 내내 경애의 단단함이 좋았다. 한 번 마음 먹으면 주저하지 않는 경애의 소신이 반짝 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 경애도 정말 멋있는 인물이었지만 그보다 나에게 더 큰 인상을 남겼던 건 상수였다. 처음에 상수 이야기를 읽었을 땐 사람들이 말하는 '사회생활' 이라는 것을 할 줄 모르고 집 구석에 앉아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염탐하는 변태 오타쿠인 줄 알았다. 얼굴, 이름도 모르는 온라인 상의 관계라도 내밀한 감정까지 내보일 정도로 믿고 따르던 '언니'가 상수라는 걸 알았을 때 충격받고 뒤돌아 설 회원이 바로 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읽으면 읽을수록 세심한 상수의 마음 씀씀이가 보였고 상수가 이제까지 살아오며 얼마나 많은 침식과 풍화의 과정을 거쳤을 지를 상상하게 됐다. 특히 심한 상하 관계를 가진 남자라는 성별 속에서 지난하게 이해받지 못했을 지난 시간들을 생각하면 상수가 '언니'로 변해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위안을 얻는 취미를 갖게 된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리라고 생각하게 됐다.

 

   처음엔 두 사람의 어색하고 서툰 시간을 보고 '참 답답하다' 싶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점점 진행되면서 소설 속 다른 사람들이 그랬듯 '둘이 얼른 모종의 연인관계가 되어라'라는 마음을 갖게 됐다. 낭만주의자이자 세심한 상수와 무뚝뚝한 경애가 겉으로는 달라보여도 비슷한 감정의 결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두 사람 사이에는 풀고 넘어가야 할 숙제인 '은총'이와 '언니'가 있어서 쉽게 가까워지진 않았다. 그럼에도 읽는 입장에서는 두 사람이 은총이라는 친구를 매개로 엮여있던 걸 알게 되는 것도, 상수가 '언니' 였던 과정이 드러나는 순간들을 보는 것도 재미있어서 소설의 마지막까지 집요하게 내달렸던 것 같다. 대범한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았을 일들에 대해 거듭 고민하는 상수를 보고 누구에게도 상처 주고 싶지 않아하는 세심함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소설 속에 등장하는 많은 사람들. 일영이, 조선생, 창식씨, 헬레나, 에일린 등.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기준으로 봤을 때는 지나가는 행인1에 불과했을 사람들을 속속들이 알아가는 것도 따뜻한 일이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나태주님의 시가 읽는 내내 떠올랐다. 작가님이 우리 주변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있고 어루만져 주는 지 느껴졌다.

 

   처음에 이 책을 받고 소개글을 보았을 때, 누군가의 죽음으로 엮여진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기에 너무 무겁진 않을까 하고 걱정이 되었다. 아직까지도 우리 사회는 죽음에 대한 부채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은 그런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내게 밝고 따뜻한 감정을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경애와 상수로 인해서 조금 더 솔직해져도 괜찮고,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도 괜찮다는 용기를 갖게 됐다. 그게 나를 조금 불편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다르다'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어도 결국 진심은 통한다는 걸 소설을 통해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눈물이 날 것 같으면 참지 않고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기로 했다. 화가 나면 내가 어느 부분에서 화가 났는 지 조목 조목 얘기하고, 아닌 것 같으면 아니라고 말 할 것이다. 소설 속에서 경애와 상수가 보여준 것처럼 나도 스스로에게 진실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남자고 다짐했다.

 

   마지막으로 작가님을 거쳐간 무수한 영화와 소설을 확인하는 것도 큰 재미였고, 소설 곳곳에 있는 적절한 은유들을 찾는 것도 흥미로웠다. 다친 마음을 위로하고 싶을 때, 따뜻함이 필요할 때 한 번 더 읽어보고 싶을 책이다. 제목인 '경애의 마음'은 주인공인 경애의 마음이 어떻게 변해가는 지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 곳곳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을 향한 작가님 만의 공경와 애정의 마음을 드러내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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