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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요일 어플에서 인기 있었던 시들을 엮어 나온 시집이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라는 제목은 황인찬 시인의 <무화과 숲>속 한 구 절을 차용한 것이다. 시집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네 테마로 나뉘어져 있고 주로 '사랑'을 주제로 한 시들이 실려있다.

 

 

   최근 들어 시집이 조금씩 주목 받고 있다고 한다. 길지 않아서 읽을 때 부담이 되지 않고 'fast'에 익숙한 요즘 사람들에게는 짧은 시간에 감성을 찾고 위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마음을 울릴 수 있는 구절과 배치를 위한 적절한 여백의 조화는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인스타그램에 최적화 된 이미지를 만들어내기에도 용이하기 때문에 그에 접속하면 요즘엔 시와 관련된 사진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나도 시를 읽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예전엔 시를 읽어도 시가 가진 의미에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서 무료하고 따분하게 느껴지기만 했다. 그 때까지 내가 접한 시는 고등학교 때 입시를 위해 분석적으로 읽었던 것들 뿐이였다. 조금씩 나이를 먹고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게 있다는 한계를 자각하면서 나는 스스로 위로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다. 제일 먼저 만난 것이 음악이었고 다음이 문학이었다. 많은 소설과 에세이들을 읽으면서 내가 불편하게 느끼는 것들이 나쁘지 않고,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있다는 걸 확인했을 때 말로 하는 것보다 더 큰 위안을 얻었다. 다른 사람들이 종교에 의지하면서 거기서 정답을 찾듯, 나는 나를 거쳐간 많은 책들에서 정답을 찾고 거기서 나온 말들에 내 믿음을 걸었다. 그러면서 점점 시의 행간이 담고 있는 이야기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시가 나에게 의미가 있으려면 시를 읽을 때 내가 쌓아 온 시간 중 일부를 연결 시킬 수 있어야 한다. 간결한 문장들과 정제된 단어가 주는 여백은 읽는 사람이 자신의 경험과 비교하고 상상하며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면서 55명이 겪은 제 각기 다른 사랑의 모습을 보았다. 떠난 연인을 잊기 위해 눈썹을 밀고는, 이 눈썹이 다시 자라 초승달이 될 때면 모두 잊을 거라 생각했던 장면이나, 꿈 속으로 떠나면서도 놓을 수 없어 '당신 생각을 켜 둔 채 잠이 들었던' 장면이나, 내가 가장 가진 게 없고 가난한 모습일 때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는 순간이면 남루한 나조차 잊을 수 있던 장면들, 헤어진 연인을 잊으려 노력하다 문득 나마저 지워가고 있던 걸 깨달은 순간들 모두 가슴 아릿한 사랑의 순간들이었다.

 

 

   가장 와닿은 구절은 백석 시인의 '흰 바람벽이 있어' 에 있었다.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ㅡ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어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ㅡ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 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백석 '흰 바람벽이 있어' 중

 

  아직까지는 삶의 어려움, 고독을 노래한 시들이 좋다. 그래서 최승자 시인님이 좋고 신현림 시인님이 좋다. 이번 시집은 사랑을 많이 담고 있고 내게는 너무 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함께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특정 시의 여운을 충분히 느끼기에는 부족했던 것이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문학의 재미는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읽었을 때 내가 그간 쌓은 새로운 경험과 어우러져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색다른 의미를 만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 생각날 때 마다 거듭거듭 읽히게 되길, 그 사이에 내가 많은 경험들을 쌓아 읽을 때 마다 새로운 감상을 열어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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