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바논은 중동전쟁에 참가한 전차 승무원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좁은 공간에서 갖가지 사건을 겪으며 정신적 혼란과 갖은 스트레스로 인하여 서로 충돌을 계속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격정적인 모습과 더불어 무미건조해져 가는 모습은 강렬한 대비로 나타난다.
사실 이런 모습은 반전을 주제로 하는 여러 종류의 컨텐츠에 나타난다. 풀 메탈 재킷에서는 훈련소에서 겪는 비인간적인 일상과 거기서 나오는 낙오자를 통하여, 전쟁터에서는 쓰러져 가는 분대원들과 위에서 내려오는 무언의 압박을 마주치며, 주인공은 점차 시니컬해지고, 무감각해져 간다. 제대로 기억은 나지 않지만 허트로커 역시 마찬가지 광경을 보여준다.
이제 이런 모습은 의외로 우리에게 낯설지 않을 수 있다. 아직 이데올로기와 프로파간다를 짙게 깔고 가는 컨텐츠도 부지기수긴 하지만 그런 곳에서 조차 이런 것들이 녹아들어 있다. 또한 이런 것들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 하더라도 영화 고지전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아무리 못해도 적어도 전쟁관련 영화를 몇번이라도 본 사람들은 다들 한번쯤은 이런 전쟁에 나타나는 인간성의 파괴를 접해보지 않을 수 없다.
레마르크는 1차대전에 독일군으로 참전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그는 이 책을 썼고, 즉각 큰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반전의 아이콘으로서 떠오른 것이다. 그 덕에 후일 나치당이 집권했을 때, 결국 스위스로 망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집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 책의 주인공은 막 20대에 접어든 청년이다. 그러나 풋풋한 모습은 없다. 군대의 생리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참호에서 뒹굴고 간이로 만든 용변기에 앉아 카드 게임을 하며, 조금이라도 더 풍족한 식량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잠자리를 찾는 것은 일상을 이어가지만 그래도 평시의 생활과는 이질적 모습을 드러낸다. 소설이 진행될수록 이런 모습은 점점 커진다. 쏟아져 내리는 포탄, 엄폐부에서, 여의치 않으면 포탄 구덩이나 심지어 공동묘지에 있는 누군가의 자리에서 까지 목숨을 부지해야 한다. 상황은 시간이 흐를수록 내면의 모습까지 점차 파먹으며 끝끝내 그를 부여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후반부에서 이야기하는 오로지 삶이라는 부분만이 남았다라는 이야기는 우리가 다른 곳에서 보았던 전쟁으로 인한 인간성의 파괴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남은 삶조차 불완전한 모습과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주인공이 속한 청년층이 그 직접적 대상이라는 점에서, 참상은 극대화된다.
레마르크 이전에도 전쟁의 참상과 반전을 이야기한 책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있긴 있을 것이다. 대표적으로 톨스토이의 하지 무라드나 전쟁과 평화 역시 이런 면을 반영하고 있다 생각한다. 그 이전에도 더 이전에도 평화를 이야기하며 반전의식을 가진 주장과 저서들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전쟁이 사람을 어떻게 파괴해가는지 보여준 책은 이것이 처음이라고 말하고 싶다. 서술은 감성적인 면보다 담담한 어조가 더 많다. 하지만 그것은 그 때의 시간들이 메말라버렸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곳에서 꿈틀거리고 저지르는 비명은 이전의 이야기들보다 더욱 사실적이고 그 때문에 더욱 설득력 있다. 생기를 잃은 삶을 쪼개고 낱낱이 늘어놓는다. 거기서 보이는 결핍은 우리에게 반대로 돌아서라며 외치고 있다. 그럼 이제 돌아보자. 우리는 메마른 시간을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