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스타벅스에서는 그란데 사이즈를 사라, 를 2008년에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일터(생산성)와 가정(안식처)이 아닌 사회적 교류와 휴식을 위한 제3의 공간으로서 까페의 기능에 대해 일깨워 준 책이었다. 소비자는 커피 원가가 아니라 커피를 포함해 공간경험을 위해 돈을 쓴다, 라는 요지였다. 미감 좋은 인테리어로 화사하게 잘 꾸민 예쁜 까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경험을 위해 약간의 돈을 더 지불할 의향이 있다, 라는 행동경제학적 관점에서 기업의 가격책정과 마케팅 전략을 다룬 책이었다.
혼잡도가 증가하고, 카공족이 많아지고, 회전율 중심 매장을 운영하며, 저가형 까페의 약진 등으로 인해 제3의 공간으로 가치는 퇴색해서 20년 전의 책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 최소한, 감성적 공간 경험만을 팔지는 않게 된 것 같다.
그런데 이는 모두 판매자의 입장이지 소비자 2-30대의 입장은 빠져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팔자, 어떻게 팔까? 가 아니라 살까? 왜 살까? 왜 갈까? 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다랄까.
어떤 의미에서 까페는 거실의 아웃소싱이다. 특히 아직 사회에 진출하지 않아 돈이 부족한 유예된 계층으로서 20대는 공유 기숙사, 좁은 고시원과 비좁은 원룸에 살거나 부모집에 얹혀 살기 때문에 사적 스페이스가 없다. 그러니 까페는 20대의 워너비 스페이스 렌탈이다. 자기만의 방이 없어서 공간을 구독하는 셈
뉴스미디어에서 20대가 스타벅스에서 노트북을 켜고 작업하는 것을 힙한 카공족의 문화나 디지털 노마드의 라이프스타일로 포장하지만 자기 거실이 있고 아기자기하게 까페처럼 꾸며 놓았다면 나올 이유가 있을까
그러니까 내가 갖고 싶은 푹신한 소파, 깔끔한 목재 서재, 나만의 넓은 테이블을 가질 재정적 기반이 없기에 음료값이라는 보증금 없는 월세 혹은 시간제 구독료를 내고 대기업의 거실을 빌려 쓰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장기적으로 보면 내 집에 투자하는 대신 타인의 자산에 더 큰 비용을 지불하는 구조적 약자다.
그러다가 30대가 되면 일부는 인테리어비 많이 주고 개인 매장을 차리는 경우도 있다. 30대는 직장을 잡으며 지갑을 열 수 있는데 자산 수준이 높지 않아 마음에 꼭 들만큼 완벽한 사적공간 확보는 지연된다. 따라서 감각적인 나만의 공간을 갖기 위해 소비자의 지갑을 빌려, 유지 및 구매비용을 소비자와 나눈다.
임대료(혹은 권리금)과 대출이자가 개인이 막기엔 너무나 막대하다. 그러니 소비자들에게 음료와 디저트를 팔아 공간 유지비를 분담시킨다. 불안정한 협업 체계라고 이를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내 통제가 미치는 공간의 주인이 된 것 같지만, 실상은 매달 소비자의 선택을 받아야만 유지되는 유동적 공간의 관리자이기 때문이다. 까페라고 이름하였을 뿐 창업(과 사무실)도 마찬가지다.
정말 자기 집을 까페처럼 꾸밀 수 있는 4-50대까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런데 구매력 있는 4-50대 장년이 되면서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4-50대는 오히려 집보다 자연이 좋아 등산하러 나가서 까페처럼 꾸민 거실은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미 부잣집 별장을 구매한 주인은 정작 일년에 며칠 못 오고 관리하는 사람이 더 누린다는 말도 있듯이.
드디어 넓은 아파트를 매입하고 인테리어 잡지에 나올 법한 홈카페나 미니멀리즘 거실을 꾸밀 수 있는 한몫이 생겼는데 까페에는 관심이 없고 마음은 자연으로 떠난다는게 아이러니다. 나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으나 필요 없다. 이젠 외롭고 힘들고 지쳐 모두의 공간으로 간다.
오랜 직장 생활과 사회적 압박에 지쳤기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홈어라운드 소비의 주역들은 주말이면 정성껏 꾸며둔 거실을 뒤로하고 차를 몰고 산으로, 바다로, 교외의 자연과 한정식 가든으로 탈출한다. 정작 카페처럼 꾸민 거실은? 주중엔 출장으로 텅 비어 있거나 정적인 공간으로 방치된다. 소유와 활용의 미스매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다 6-80대가 되면 평생을 바쳐 확장해 온 사적 공간인 집은 급격히 축소되고 요양원의 1평 남짓한 침상으로 수렴되니... 까페는 안중에 없다. 평생 공간을 소유하기 위해 투쟁의 종점이다. 무덤에 커피머신을 가져갈 것인가?
그러니 가장 까페를 필요한 20대에겐 까페가 주어지지 않았고, 가장 까페가 필요 없는 이들에겐 까페를 꾸밀 힘이 있으니...
아니 근데 내가 쓰려고 했던 아이디어의 발상은 이게 아닌데
그게 아니라, 죄송,,,
혼잡도가 증가하고, 카공족이 많아지고, 회전율 중심 매장을 운영하며, 저가형 까페의 약진 등으로 인해 제3의 공간으로 가치는 퇴색해서 20년 전의 책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대충 소비자 경험(CX)은 대략 세 번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겪은 것 같다.
2000년대 초반의 1세대는 제3의 공간과 감성 마케팅이 주력이었다. 집도 직장도 아닌 물리적 공간이 주는 안락함, 고급진 인테리어, 재즈 라운지 앰비언스 음악 브금... 소비자는 커피 한 잔의 가격에 이런 감성적 공간을 빌리는 가치를 지불한다는 하워드 슐츠의 철학에 기반한 것이다.
그러다가 2010년대는 디지털 생태계와 접목한다. 모바일 앱의 사이렌 오더와 스타벅스 별 리워드 시스템. 물리적 공간은 충분히 맛 봤다. 스벅 아아 구매는 매일 아침의 루틴이 되었으니 시간의 효율성과 개인화를 추종한다. 이에 더해, 브랜드는 데이터 기반 마케팅을 통해 소비자가 매장에 머무는 시간과 도달하기 전후의 소비자 여정 전반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20년대 3세대에 이르러 DT, 딜리버리 서비스 등이 확대 되는데 코로나를 거치며 머무는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제3의 공간이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빠르고 정확한 메뉴 획득이라는 편의성의 극대화만 중요해진다.
20년 전 전통적인 감성중심의 소비자경험 분석은 공급망 효율성과 디지털 인터페이스 최적화 중심으로 변화한 것이다.
나아가 브랜드 경험이 액체화되어 탕비실이나 편의점에도 스타벅스 브랜드명이 붙은 제품이 유통되었다. 매장뿐 아니라 생각지 못했던 여러 곳에 삼투하고 침투한다.
또한, 옛날에는 CX가 공간을 즐기는 능동적 몰입을 추구했다면 이제는 인지적 부하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는데, 차지처럼 모바일 원터치결제시스템로 뇌빼고 클릭 한 방으로 결제를 유도하는 무결점 경험을 지향하는 게 그 방증이다. 여기서 왜 사? 라는 질문을 뺐다. 당연히 사는데, 쉽고 간편하게 사게 해줄게.
스벅과 함께 자란 일부는 남고, 새로 성장한 20대 공간 유목민은 연희 연남 홍대 상수 성수 을지로 등지의 취향과 개성이 넘치는 스페셜티 로컬 매장에 정착한다. 정착할 땅과 자기만의 방이 없어 여기 저기 떠도는 노마드는 여전히 상존한다. 구조적 모순속에 자가 증식하는 것처럼 보이기 까지 한다.
20대는 사적 공간의 부재를 메우려 카페에서 디지털 세계로 도피.
30대는 그 공간을 제공하려다 자본의 한계에 부딪혀 일부는 불안정한 협업, 일부는 자산 증식에 매진.
4-50대는 콘크리트 거실을 두고 산으로 니게로! 자연으로 도망치고
노년에는 병상으로 수렴한다.
까페가 필요한 이에게 자기만의 까페가 주어지지 않는 생애주기적 모순과 악순환. 결핍된 영토는 언제 누가 수복할 수 있을까.
요즘엔 그 힙한 까페가 글로벌적으로 확장된 것 같다. 일본까지 지도에 핀한 범위가 증가한다. 새롭고 예쁘고 세련되고 댄디하고 단정한 공간을 향한 욕구는 무한히 확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