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미술의 선구자 솔르윗의 대규모 아시아 회고전이 도쿄현대미술관에서 올해 상반기에 개최된 후, 하반기에 용산 아모레퍼시픽에 순회를 온다. 원래 APMA에 예정되었던 조나스 우드 개인전이 작가사정에 의해 취소된 빈 슬롯에 극적으로 성사된 것이다. 이미 준비된 전시를 갈아엎고 바닥에서 재시작하는 큐레이터들의 노고가 꽤나 컸을 듯하다.
9월 1일이니 이제 모레다. 층고 높은 APMA의 지하를 잘 활용해 거대한 월 드로잉과 입체 구조물 작품의 앰비언스가 남다를 것이라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또한, 건축철학에 따르면 중세교회처럼 천장이 높으면 창의적 사고가 발달한다 했다. 수리와 추상을 사유한 개념미술이 자리잡기 더할 나위없이 좋은 장소다. 원주 뮤지엄산의 제임스터렐이나 안토리 곰리관의 명상성과 더불어, 아무 것도 존재하지 않는 허적에서 유한이 싹 트리라.
작년 상반기에 국현미에서 했던 론 뮤익전에 출품된, 진격거의 크기에 비근한 해골 두상 100개 모음 <매스>도 지하의 깊이감을 활용한 국현미 5전시실에서 했을 때 압도감이 있었는데, 같은 작품이 지금 도쿄에 순회를 가서 모리미술관 고층빌딩에 배치될 땐 동일한 질량감을 주지는 않는 듯 하다.
솔 르윗의 작품 두 점은 올해 이미 이태원 리움 퍼포먼스 예술가 티노 세갈전 2층에서 보았다. 개념미술이 창시하였으되 아직 풀로 뒤덮인 에움길을 더듬어 퍼포먼스 아트가 따라갔으니 배치는 의도적이었다.
하반기에 나리타공항 근처 치바시미술관에서 열리는 도자기에 현대미술의 조형적 사고를 도입한 도예가 八木야기 가문과 솔르윗과 함께 톺아보기 좋을 것 같다. 군더더기를 깎아낸 고도의 추상성을 추구한 미니멀리스트는 공통이되 동서양 개념주의가 충돌하는 한마당이 될지도.
쓰임새가 있는 그릇의 개념을 부정하고 형태가 아니라 공간과 아이디어를 재료로 포착한다는 야기의 생각은, 장인정신과 감정을 제거하고 아이디어로 작품을 만드는 솔 르윗의 생각과 흡사해 보인다. 흙이라는 물질로 비기능적 개념을, 수학과 시스템으로 비물질적 개념의 물질화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