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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미술관에서 외국어 공부하기
문예춘추 23년 6월호 다시 읽었다. 뒷쪽 칼럼 중에 챗지피티가 불러 올 찬스는 무엇인가를 논하며 2-3년 후를 전망한 부분이 있었다. 정확히 3년이 지난 지금, 3년 전의 예측을 다시 짚어보면서 메시지와 논거를 검토해보고 싶었다. 책 영화 전시를 보면서 내면 깊이 몰입하다 문득문득 터져나오는 기민한 촉같은 게 있는데 그런 전방위적 시대예측을 자주 하는 사람으로서, 시간이 흘러 다른 이들의 미래예언을 검토할 때 주장보다는 관점, 뒷받침 논거에 더 검토할 부분이 많다고 생각한다. 메시지가 맞았나 틀렸나 보다는 당시 현실분석, 변화를 추동하는 요소를 솎아내고 배치하는 구성능력이 더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대개 맞는 말이었다. 변호사나 의사 같은 고수익 고학력 직종에서 요구하는 수많은 학습량을 대규모언어처리의 데이터학습이 대체할 수 있다라든지.

그런데 3년 전에는 몰랐는데, 지금 다시 읽으니 눈에 띄는 구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구절은 주장은 맞는데 논거가 틀린 것이었다.

해당 구절은 대략 이런 말이었다.

일본은 해외에 비해 디지털화가 느렸기 때문에 대화형AI는 말로 간단히 지시할 수 있으니 폭발적인 발전을 할 가능성이 있다.

고정전화가 보급되어 있지 않았던 아프리카 여러 나라에서 스마트폰이 일거에 보급된 것처럼 도약(leap-frog)하는 현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리-뿌프롯구는 지렌마 이후로 두 번째로 충격적이었다. . リープフロッグ. 개구리 점프=도약이라는 의미다. 질렌마 ジレンマ는 진퇴양난을 이르는 Dilemma 딜레마다.

와뿌로(워드프로세서) 비루(빌딩) 마쿠도나루도(맥도날드) 같이 가타나가로 표시된 외래어는 잘 알려져있는데 가끔 이렇게 튀어나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표현이 더 알쏭달쏭해 야후재팬에 구글링해야 비로소 그 뜻을 깨닫게 된다.

이럴 때마다 이웃 나라의 언어에 비해, 음가가 많고 특히 모음을 거의 다 표기할 수 있는 한글이 얼마나 위대한지 새삼 느끼다가, 불현듯 꾸웨엑 화가 나며 무성순치마찰음 f를 순경음 피읍ㆄ으로
(유무성)치찰음 th도 반치음ㅿ로 충분히 표기할 수 있는데 옛 언어체계를 충분히 활용하지 않고 있는 당대의 나이브한 세태에 대해 짜증이 나곤한다.

th레드
ㆄㅐ션(Fashion)
ㅸㅣ토리(Victory)
아예 언어시스템에 내장된 기능이 없어서 음가를 표현할 수 없는 일본어와 중국어에 비해, 훨씬 유리한 과학적인 언어체계인데 그냥 기능정지해놓고 나몰라라 한다.

정신차리고! 돌아와서, 위어쨌든 의 일본어 문단을 읽고 나는 고정전화(케이블을 까는 유선전화망)를 생략하고 모바일로 넘어간 아프리카 제나라보다, 중국이 은행계좌 개설이 아니라 핀테크로 넘어간 것이 더 떠오르긴 했다.

그리고 그 뒷받침 논거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논의의 구조는 대략 이렇다.

디지털화가 뒤처진 일본 → 기존 시스템에 대한 투자와 습관이 적다 → 그런데 말만 하면 따라하는 생성형 AI가 기존 단계를 건너뛰게 한다 → 디지털전환(DX)를 건너 뛰고 급속하게 에이아이로 건너가자!

안타깝지만 이는 안된다

기술사적으로 말하는 후발자의 이점(latecomer advantage)으로 적용될 수 있는 사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술사와 경제사는 분리해보아야한다. 경제사가 기술사를 포함하며 기술사가 부분집합이다. 경제성장은 퀀텀점프가 가능하지만 기술사는 어렵고, 기술사는 제논의 역설이 적용된다고 본다. 후발국이 따라오면 (내연기관-> 전기차-> 4단계자율주행) 의 단계를 다 밟으며 기술발전한 선진국은 격차를 더 벌린다.

경제와 달리 기술은 단계를 건너뛸 수 없다. 거셴크론이 말한 후발국의 추격 효과는 경제성장론에서 소득이 낮은 낙후된 경제가 선진국보다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격차를 줄여나가는 현상인데 이런 압축적 산업화는 경제적, 사회제도적 차원의 모방과 자본집중을 의미할 뿐이지, 원천기술의 축적과 내재화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기술은 자본처럼 외부에서 주입한다고 해서 단번에 성숙할 수 없다. 반드시 누적적인 학습과 실패의 단계를 거쳐야만 고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매트릭스처럼 뇌척추인터페이스에 쿵푸 스킬을 주입한다고 쿵풀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오늘 연립방정식을 배우던 아이들에게 엄빠가 물리해서 고가의 학습자료와 최상의 인공지능 비서를 령했다고 해서 당장 저녁에 코사인법칙과 공간도형을 마스터하고 다음날 유체의 비선형적 흐름을 설명하는 나비에-스톡스 방정식과 파생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블랙슐츠모형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이 100년에 걸쳐 만든 최첨단 공장설비를 후발국은 차관을 들여와 몇 년 만에 단숨에 그대로 복제해 설치할 수 있다. 겉보기에는 그렇다. 일견 압축성장이 일어난 것처럼 보인다. 이것도 사실 극히 힘든 일인데 그 불가능한 힘을 민족의 단결력과 존버 정신으로 해낸 거의 유일한 나라는 한국이다. 현대사에서 피원조국에서 원조국으로 바뀐 유일한 나라다.

껍데기는 베낄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이라는 중요 선진국이 축적한 기술을 베껴서 가능했다. 그러나 공장설비 안에 녹아 있는 설계메커니즘이나

소재배합기술이나 기계의 마찰계수, 밸브의 오차, 미세 공정 노하우는 돈으로 살 수 없고 쉽게 학습되지 않는다. 오랜 시간의 관찰과 노력이 필요하다. 기술과 함께 나 들어가야 체득되는 노하우가 있다. 그 노하우는 넥스트 레벨의 테크놀로지를 만들기 위해 필수적인 축적의 단계다. 기술은 앞선 단계의 실패와 시행착오가 쌓여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암묵지(Tacit Knowledge)의 성질이 있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기술은 단계를 건너뛰는 립뿌프롯구, 개구리점프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선발자가 우위를 점한다. 초고성능 저전력의 칩전쟁을 매그니피선트7이 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1등이 독식하기 때문이다. 발전된 국가에서 탄생한 기업은 중진국의 GDP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진다. 그래서 미국 내부에는 여러 주가 모인 연방체(미합중국)뿐 아니라 기업 또한 거의 나라처럼 존재한다. 마치 유럽 근세에 가톨릭 교구와 장인 길드, 금융계 큰 손들이 독립적인 권력을 가졌던 것처럼
럼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중첩된, 독립체들 나타난다. 애플, 엔비디아, 메타, 인텔 등등등은 미국이 품은 중형 국가끼리의 전쟁 같은 것이다. 마치 로마 교황청이 하나의 거대한 가톨릭 세계를 이루고 제후 군주국을 포함하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해본다. 전통의 대공국인 메타가 신흥북부대공 엔비디아를 견제하기도 협력하기도 하고 유서 깊은 인텔 백작가가 레거시 버프를 받아 다시 치고 나오는 그런 형국 같다. 어쨌든 여기서도 승기를 잡은 하나의 기술표준이 향후 미래의 모든 것을 지배할 것이기에 에이아이 경쟁을 하고 있다.

미국 내부의 기업끼리 피튀기는 내부 경쟁을 하는 이유는
기술 표준을 선점하는 승자가 독식하기 때문이다. 이에 더해, 기술 패러다임에는 절차적으로 뛰어넘을 수 있는 장벽이 있다. 후발국이 선발국의 눈부신 기술을 모방해 열심히 쫓아갈 때 쯤이면 늦다. 선발국은 이미 축적된 기초과학 자산을 바탕으로 새로운 기술패러다임을 만들어 격차를 다시 벌린다. 기초 체력이 없는 후발자는 패러다임 전환기에서 단계를 건너뛰어 선두로 치고 나가기 버겁다.

분게슌주의 칼럼에서 아프리카 스마트폰 사례는 인프라의 도약을 말한 것이다. 그런데 기술 도약이 가능한 것처럼 말했다. 그래서 틀렸다. 그 모바일 기술의 로열티는 개발자에게 속한 원천기술이다.

유선전화망 구축 안했고 비용이 드는 저개발 글로벌 사우스에서 바로 스마트폰이 보급되어 모바일 네트워크망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인프라 보급이다. 경제사적 추격이다. 많이 늦었지만. 기술발전이 아니다. 이제 모바일이 보급된 아프리카에서 기초과학부터 시작해 미국의 팹리스까지 따라오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까. 독재자는 그런 결정을 하기보다 권위주의 정권을 유지하고 엘리트끼리의 단합을 통해 제왕적 부를 누리는게 낫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발전할 수가 없다.

오히려 아까 살짝 언급한 중국의 핀테크가 칼럼의 논지에
아프리카보다 적합한 예시였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제도와 관행의 도약이다.

신용카드 결제문화가 약하고 현금이 우세였던 2010년 이전의 중국에 은행은 있었지만 소비자 사용경험은 불편했다. 중국인 대다수가 은행통장이 없었고 은행까지 가기에 불편했고 전국에 지점을 다 세울 여력도 없었다. 그러다가 스마트폰이 보급되고 곧바로 QR결제 중심의 모바일 결제로 이동했다.

모바일테크놀로지와 뱅킹시스템이 결합된 사례다
.
지하를 파내고 까는 유선전화망 → PC 인터넷 네트워크 → 전산망이 있고 실시간 전용결제네트워크를 이용한 신용카드 결제시스템 → 스마트폰 기반 모바일 결제

중국은 여기서 유선전화와 신용카드 단계를 생략하고 모바일 결제로 넘어갔다. 스마트폰이 일종의 신분증 기능을 입고 가능한 것이다.

일본의 AI 논의는 이런 패러다임 전환을 모방해 디지털 전환을 생략하고 저비스한테 말로 명령하니까 알아서 척척 해주는 아이언맨 같은 시리로 넘어가고 싶다는 것이다. 많이 힘들 것이다

왜 그런가? AI는 디지털이 축적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탄생했기 때문에 디지털 전환을 건너뛸 수 없기 때문이다.

PC → 클라우드화인 SaaS → 디지털 업무 프로세스 → AI

라는 기술적 발전단계에서

일본은 아직 공무원은 팩스를 사용하는 아날로그형 사회인데 아래처럼 하고 싶어한다.

종이 → 팩스 → 이메일 → 뛰어넘자! 폴짝!→ AI

중간 단계를 충분히 거치지 않았음에도 AI가 그 공백을 메워줄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디지털화가 늦었으니 AI가 잘 될 것이라는 말은 맹목적인 기대라고 보인다.

디지털화가 늦었으니 AI도 늦을 수 있다, 라는 게 더 현명한 현실직시다.

AI는 디지털화를 전제로 한다.

예를 들어 회사 문서가 종이, 팩스, 도장의 상태이기 때문에 AI가 읽을 데이터가 없다. 찍어서 학습셋부터 만들어야하는데 일본특유의 개인정보 민감문화로 인해 가능할지 미지수다. 고맥락 문화도 에이아이의 범용성에 허들이 된다.

특히 부하직원이 상사에게 고개숙여 인사하듯 도장을 기울여 찍는 관행인 오지기한코(お辞儀ハンコ)같은 위계적이고 비즈니스 특유의 문화는 인공지능 학습을 어렵게도 만들지만 인공지능 비서마저 일본 비즈니스의 한 사축(회사 노예)로 포섭하게 만들 것이다. 생성형 AI는 디지털화 기술이면서 인간 인터페이스 기술이기도 하기에 주변환경맥락에 따라 변모하는 카멜레온이다. 그러니 미국식으로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저비스보다는, 일본식으로 혼내고 길들이는 공기인형이 될 가능성이 높다.

AI 도입의 첫 단계는, 말하면 다 들어주는 만능 AI 구매 후 사용시작! 이 아니라, 시스템 개조 및 문서 디지털화다.

디지털화 없는 AI는 어렵고 뛰어넘으려고 했던 그 단계를 다시 돌아와 밟아야 할 수도 있다. 마치 집에 놓고 온 열쇠와 지갑이 있어야 출근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방법이 없다. 되돌아갈 성싶은데.

앞선 모바일 스마트폰 도약과는 차이가 있는데
스마트폰은 전화선 없이도 바로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AI는 데이터 없이 작동하지 않는게 함정이다.

물론 과거 기술로 행했던 디지털화은 너무 느렸고 현재 쓸모가 없는 데이터셋도 많다. 플로피 디스크, 오씨알, 엑셀, 프로그래밍 등등을 이젠 쓰거나 배울 필요가 없다. 자연어로 말하면 변환되는 바이브 코딩의 시대에 옛 기술의 자리는 없다.

아, 아까 말했어야했는데 계속 의식의 흐름으로 쓰다보니 깜빡한 것. 일본형 공기인형으로 될 것이라는 말에서 추가. 일본 사회는 원래 구두 지시, 암묵지, 장인정신, 대면 커뮤니케이션의 비중이 큰데 말로 시키는 AI라니 일본식 업무문화와 예상보다 꽤 잘 맞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건 아날로그 서면문화를 뿌리부터 뜯어 고치는 디지털혁명이 아니라 음성화된 사무원의 추가적 도입이고 본다.

일본은 AI를 비즈니스문화의 혁신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반항하지 않고 순종적인데 진급하지 않아 평생 써먹는 유능한 신입사원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 한 번 진급은 될지도 모르겠다. 인간신입보다는 직급이 높아야 기존 직급자명령만 들을테니.

중국도 일본처럼 강력한 아날로그 관행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기술도약이 그 관행을 우회해 QR결제가 은행 창구를 넘었다. 그러나 이 안에는 사회적 변혁이 수반되었고 중국이 젊은 성장국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일본은 시스템 관성과 문화적 저항성이 너무 강해 과연 생성형 AI가 디지털 전환(DX) 프로젝트 자체를 우회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DX를 건너뛰고 AI로 진격! 이 가능하려면 AI가 챗봇을 넘어 회사의 문서, 결재, 회계, 행정 절차까지 대신 처리하는 수준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전제가 붙어야할 것이다.

중국 핀테크가 성공한 이유는 낙후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이면에는 스마트폰 보급, 초거대 플랫폼, 느슨한 규제, 정부의 지원, 거대한 내수시장, 변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있었다.

낙후했기 때문에 도약이 아니라

낙후 + 적절한 조건 → 도약이었다.

중국과 다른 일본의 문제는
고령화, 보수적 기업문화, 책임소재 중시, 강한 개인정보 규제인데 말로 시키는AI는 AX가 아니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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