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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미술관에서 외국어 공부하기

커피를 마시고 폭발하는 집중력으로 책을 읽지만 카페인의 힘은 책의 중간부분부터 스르륵 사라진다. 전기 동력이 끊긴 기차가 달리던 관성으로 역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앉은 자리에서 끝까지 페이지를 밀고나가는 자는 복이 있을진저! 대개 집중력이 사라진 지점이후에는 책을 덮어버린다. 


특히 도서관에 있는 책은 앞부분만 닳았다. 책장은 앞만 접혀있고 뒷부분은 깨끗하다. 학술서는 참고문헌과 인덱스가 덕지덕지 달려있는 부분이라 읽는 파트가 아니라 휘리릭 스키밍하는 부분이다. 저자든 편집자든 정리에 품이 많이 들지만 독자는 거의 눈길을 주지 않는다.


앉아 있으면 끝까지 재생되는 수동적 감상법의 영화와는 달리 책은 적극적 감상이 요구되기에 페이지를 넘기는 내면의 추진력이 없다면, 혹은 중간까지 읽어서 어쨌든 끝까지 보려는 관성이 없다면 완독이 어렵다. 그러한 완독을 위해 동기부여와 호기심이라는 소형모듈원자로가 독서감상에 필수적인 에너지원이다.


헬스장에서 근력운동할 때 마지막 2-3번이 힘든데 근육 내 ATP-PCr 시스템이 고갈되고 젖산이 쌓여 근수축에 동원될 번개 에너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신체적 한계를 넘어야 근육이 성장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독서도, 그 책이 아무리 재미지다고 할지라도, 어떤 중간 분기점에서는 정신적, 체력적 한계에 봉착하고 완결을 보려면 힘이 든다. 만화, 무협, 경제분석, 에세이 등 모든 종이 콘텐츠는 다음으로 넘어가는 데 초중반의 에너지원과 후반의 에너지원이 다르다. 전자는 궁금증과 희열같은 순수한 감정이고, 후자는 인내심, 절제력같은 훈련된 태도다. 당연히 후자가 더 어렵기 마련. 그것이 설령 만화라고 할지라도 대단한 재능이다. 원피스 113권을 앉은 자리에서 다 볼 수 있는 자는 엄청난 사람이다.


물론 책마다 요구하는 읽기의 방식이 다르다. 어떤 책은 잔인하고 무서워서 포식동물을 만난 초식동물마냥 붙박은 듯 가만히 집중해 지켜보게 되기도 하고, 어떤 책은 다음 전개를 알쏭달쏭 궁금하게 만들어서 폭주기관차마냥 읽기를 멈출 수 없게 되기도 하고, 어떤 책은 내용이 이어지지 않은 분절형 부제인 숏츠같이로 퀼트처럼 얼기설기 엮어있어서 짧은 도파민 분비에 의지해 나아가다보니 연속 100m달리기로 하프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처럼 되기도 한다. 선형적으로 학습량이 증가하는 수험서, 문제집, 어학서 등은 1과와 20과의 지적 밀도가 다르기에 한 번에 물흐릇 후르륵 읽을 수 없다.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 위해 필요한 공부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며 뒷부분이 더 어렵다.


그러나 대개 많은 책들은 100장이 있다고 했을 때 정규분포를 띈다. 1-20장은 흥미를 유발해 달리게 만들고, 30-80장은 장르적 관습에 의지하며 관성에 의해 나아가게끔 하다가, 80-100장은 흐지부지 사라진다. 여기서 참고문헌이든 인덱스든 에필로그든 엔딩이든 덤이기에 어디서 끝나도 크게 상관없고, 문제집처럼 뒷부분이 강화되는 구조는 아니다.


이런 생각은 조슈어 프레이거의 100권의 책이 말하는 100살까지의 당신을 읽으면서 문득 떠올려 본 생각이다. 다양한 작가가 저마다 구체적인 나이를 언급하며 통찰하는 구절을 모아놓은 책이다. 영어 원서는 일반적 판형인데 민음사에서 우리말로 번역하면서 가로로 긴 (OO학교에서 배우는 100가지 시리즈처럼) 특이한 판형으로 바꾸어 출간했다. 서문에서 편집한 구절의 질과 적절성이 좋다고 했는데 적절성은 잘 모르겠고 퀄리티는 그저그렇다. 기획은 좋다. 프로이트의 엄마를 박제하고 싶은 8살의 상상이나 에이미 탄의 지옥 개념에 대해 들은 4살의 땅 속 댄스는 보편적으로 공감하기는 힘들기에 적절성은 의문이다. 편집한 모든 작가는 저마다 취향을 많이 타고 각 나이별 사람들에게 설득력있게 다가가는지는 모르겟따. 그러나 기획은 재밌었다.


이렇게 1살부터 100살까지를 한 페이지 한 구절씩 읽어나가면서 사람의 생애주기를 빠르게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또, 1-20살이 재밌고 30-80살은 그 나이대 평균적인 경험을 하며, 언제죽을지 모르기에 80-100살은 꺼져가듯 희미하다는 점에서 1-20장은 재밌게 읽고 30-80장은 관성대로 가다가 80-100장의 덤이기에 어느 순간 책을 덮는 일반적인 독서경험과도 맞닿아있다. 


1-20살/장은 매 년 신체성장도 정신적 발전도 다르다. 시간도 빠르게 흐른다. 몰입하는 구간이다.


30-80살/장은 사회적 지위 마련, 자아 실현, 가정과 재생산, 노후대비, 상실 등 사회적 생애주기에 맞는 평균의 고민을 하면서 동시에 누구에게도 완전히 공감받을 수 없는 개별적인 경험을 한다. 일반과 특수의 교집합이다.


80-100살/장은 언제 끝맺어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마감하는 황혼의 시절이다. 같은 구간인데 숫자의 변화가 앞선 1-20살/장과 같지 않다. 급격하게 변화하고 밀도 높던 11살과 12살의 1차이가 81-82살에서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6살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96살의 죽음은 희극이다. 참고문헌이나 결어의 한 페이지와 그 다음 페이지가 프롤로그/문제제기의 한 페이지와 다른 것과 같다. 조슈아 프레이저의 책에서 30-80살은 그닥 특별하지 않은 일반적인 내용이었고, 80-100살은 딱히 그 나이를 대변한다기보다 그냥 노년의 생각을 반영한다고 느껴졌다. 허나, 1살과 99살은 매우 다르고, 10살과 80살의 분위기는 상전벽해였다. 책은 성동격서처럼 읽혀졌다. 동쪽에서 소리를 지르고 서쪽을 공격하는 것처럼 양극단의 차이만 보였다는 뜻이다.


독서든 삶이든 그렇다. 개별 숫자의 델타값(변화량)보다는 처음과 끝의 변화가 더 생생하다. 읽어서 끝까지 나아간 자와,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내고 존버해서 호들해서 마지막 생애까지 숨 쉰 자가 다르다. (hodl은 비트코인 크립토쪽 용어다. hold(버티다)의 뒷 음소만 바꾼 언어유희로 존버란 뜻이다)


카페인에서 시작해 관성에 의지해 참고문헌 즈음해서 손절. 호기심, 동기, 악바리, 뭐든 에너지원은 알아서 마련하자. 그래도 80%까지는 존버다. 중간은 재미없다. 누구에도 공감받지 못하거나, 모든 사람과 다 비슷해보인다. 그래도 존나게 버티는 거다. 인생이든 공부든 책이든. 그 마지막이 설령 물에 물탄 듯 술에 술 탄듯, 특별한 영웅같지 않은 시시한 결말이라고 해도. 시작할 때 확신한 생각과 끝날 때까지 붙잡고 있던 생각, 경이로운 탄생과 스러지는 죽음, 알파와 오메가는 선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 압도적인 변화량을 개개인이 육신으로 체감하기 위해 존재하고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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