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출판만화상을 받은 작가라는 홍보문고는 있었지만 그런 주례사 비평은 어디에나 있어서 큰 설득력이 없고 특이해보이는 책은 별 생각 없이 구매하는 습관때문에 손에 쥐게 된 책이다. 그런 가운데 생각지 못했던 기적인 세렌디피티가 있기 때문. 계획하지 않고 발길 닿는대로 가다가 우연히 들어간 골목길 가게에서 최고의 미식 경험을 할 수 있듯이 말이다. 세로로 긴 폰트가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편집이라는 첫 인상밖에 없었다. 그 퍼스트 임프레션은 곧 충격으로 바뀔 것이었다.
한국어로 쓰여졌다 뿐, 내용은 프랑스문학이다. 모두가 하하호호 하면서 읽을 수 있는 범용성이 있는 글은 아니다. 대개 유럽문학이 그렇다. 유럽이라는 문화자본과 외국어라는 낯섦에 의해 포장이 되었을 뿐 내용적으로는 이상하고 뒤틀린 부분이 있다. 일단 그리스로마신화의 부친살해, 난봉꾼, 근친상간 등의 파격적 주제를 보면 알 수 있다.
글쓴이는 일본에 살면서 한국어로 유럽적 사고를 하는 흥미롭고 놀라운 저자다. 정치적으로 깨어있고 국제적인 사고를 하며 거시적 시야를 장착했는데 또한 유년시절 쌍둥이 심리적 트라우마와 현재 남친과의 늪에 빠진 관계성과 개인적 모순에 대해 탐구하는 미시적 시야까지 있다. 유일무이한 단독자로 존재하는, 어디에도 닮은 이가 없는 캐릭터다.
글에는 저자가 의식했든 안했든 유럽문학권의 세례가 있다. 토마스 만, 밀란 쿤데라, 제임스 조이스, 사라 워터가 부분적으로 모두 느껴진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다음 권호로 있어야하는데 이제 신간으로 나왔고 2-30년 후에는 세계문학의 시리즈로 함께 읽혀질지도 모르겠다.
두세 페이지마다 좋은 표현이 있어 포스트잇 날개를 달다가 나중엔 포기하고 줄을 쳤다. 예컨대
p25 주변시로 훑어봤다.
p27 기억의 핀 조명도 거기서 꺼진다. / 로 끝나는 구절
p29 아주 귀애하는
p32 외따로 떠올린다.
p35 마지막 쌍둥이의 구절로 해당 장 슬레이트를 임팩트있게 마무리
p39 개개 풀어져 무장 해제되고 이윽고 무적이 되는 것 같았다.
p110 만화의 홈통을 타고 배수되는 두분의 간수 같은 시간 속에서 .. 찰방찰방 나아가다보면
내용적으로는 다음 부분이 특히 문체도 내용도 유럽문학 같이 사회문화적 분석과 내면적 탐구가 함께 결합된다.
p52 우익적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
p54-56 특히 p55 나카무라에 대한 분석은 p7의 남자 이야기에 대한 부분과 이어진다.
p66 장례지도사 분노 일화
p150 <속가> 장, 그리고 이후 모든 스무 페이지 전부
책을 덮고 나서 날개의 찬사가 모두 이해되었다. "자기 피를 어디로 튀기고 싶은지 아는 사람"이라는 조익상 만화평론가의 코멘트와, "정교하고 집요하고 탁월한 자기 추적"이라는 최현숙 구술생애사 작가의 감탄은 일리가 있다. 아트선재 <스펙트로신테시스>보다 절규하지 않고 이성적이고, <대도시의 사랑>보다는 솔직하고 포장하지 않고 민낯을 보여준다. 홍상수 감독이 34편, 54시간에 이르는 자신의 영화에서 지속적으로 사람이 투명하고 솔직하고 진실되어야한다고 말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 홍상수 감독의 영화는 말만 할 뿐 딱히 진실된 점이 없다고 느껴질지 모르겠다. 외국어 번역투에 외국식 사고방식을 드러내는 서양문학과 달리 한국어로 쓰여져서 그 자기고백이 훨씬 더 사람냄새를 풍긴다. 저자가 직접적으로 언급한 작품은 장 주네의 <하녀>의 솔랑주와 클레르뿐인데, 이 관계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정치사상가 레오 스트라우스는 과거에는 책을 처음부터 선형적으로 낭독해 읽고 스키밍하거나 검색을 하지 않았고, 따라서 정치적으로 위험한 이야기는 자기 말을 잘 들어준 사람들을 위해 2/3지점부터 숨겨놓는다고 했다. 밀교적(esoteric) 글쓰기다. 이 책 역시 대략 2/3지점인 100페이지까지 따라가야 그 이후 더 충격적인 개인사가 나온다. 이미 앞부분도 상당했는데 과거의 이야기고, 그 이후 나오는 모든 부분은 지금-여기의 자기 스토리다. 가끔 영화 중에 타이틀이 처음 10분 안에 뜨지 않고 중간이나 뒤에 삽입되는 경우가 있다. <나미비아의 사막>이 그렇다. 이 책은 p103에 <림보에서의 축지법>이라는 책제목을 딴 장이 나온다. 그 이후 책을 덮을 때까지 손을 뗼 수 없다. 그것도 2/3지점인 100페이지를 읽어와 저자가 스스로 내면을 투명하기로 보여주기로 선택한 고백적 일기를 다 읽어 준 사람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다.
나카무라, 주민세, 노비타(도라에몽의 진구), 시바리테, 가이낙스, 안노 히데아키, 미시마 유키오 같은 일부 고유명사로 인해 저자가 일본에서 애니메이터로서 일하고 있음이 짐작이 되긴 하지만, 옛 사회문화보다는 컨템포러리한 배경을 깔고 있기 때문에 초국적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처럼 읽힌다. 아무 국가의 아무 사람이나 읽어도 보편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다루는 정체성, 트라우마, 성적 페티시가 전혀 보편적이지 않는다는 사실만 제외하고 말이다. 소수 취향은 각 국가에서 부분집합으로 긁어모아 국제적으로 단합한다는 측면에서 느슨한 보편성을 취득할 수 있을 것이다.
의식의 흐름같이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현재와 기억이 습합되고 착종되는 것 같으나 일견 저자의 복잡다단해 보이는 세계는 대단히 일관적이다. 이런 종단적 분석은 어문학과 문학분석 시간에 다루기에 적절하다.
p19의 기어다니는 이미지는 p178의 개로, p182의 에필로그로
p26의 붙들림과 굴욕은 p130 p143의 돔섭관계로
p25의 유년시절 기억은 p180의 현재로
p17의 튀어오르는 볼은 p111의 엉덩이에서 p142의 페티시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