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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미술관에서 외국어 공부하기


OTT에 있고 DVD로도 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왕가위, 아녜스 바르다, 오즈 야스지로의 기획전을 하면 보러 간다. 큰 스크린에서 보는 감각이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고, 집에서 편히 보면 좋은데 그게 또 그렇게만은 편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카톡이 나를 방해하고, 내가 나 스스로를 방해하기도 한다. 아까 했어야했던 연락이 생각나기도 하고 빨래 다 되면 건조기에 넣어야하는 등 자꾸 스페이스바를 눌러 정지할 건덕지가 많이 생긴다.


도대체 그 수많은 자질구레한 일들은 영화관에서는 왜 생각이 안 나는 것인지, 할 수 없기 때문에 안 하는 거라면 집에서도 그럴 수 있을텐데 왜 그게 힘들까


집에서 충분히 인강보고 공부할 수 있는데 어쨌든 학원이나 스카를 가는 것과 비슷하다. 혹은 충분히 혼자 운동할 수 있는데 크루를 만들고 헬스장을 가는 것과 비슷하다. 남의 시선이 없으면 스스로 통제가 안되고 자기 한계를 넘기가 힘들다.


전시도 비슷한 측면이 있다. 과거엔 귀족만 보던 유럽회화를 이제는 민중도 볼 수 있어 접근성이 높아졌다. 그리고 과거엔 지적재산권 등 여러 이유로 디지털화에 칠색팔색이어 그나마 그림이 인쇄된 책으로만 유통을 허락했는데, 40년 전 캐논 카메라보다 더 고화질로 찍는 스마트폰이 모두의 손에 쥐어진 덕에 전시장 사진촬영에 대한 심적 허들이 2010년 중후반쯤 봇물터지듯 무너져서 이제는 너도 나도 그림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린다.


그렇지만 아무리 고화질 사진이어도 자기가 직접 전시장에 가서 그 원본의 아우라를 경험하는 것만큼은 아니다. 그래서 아무리 스크린의 사진을 보아도 현장 감각을 대체할 수 없다. 남의 경험을 일축한 이미지로 충분한 예습도, 대리체험도 할 수 없다. 트레일러가 영화가 아니듯, 사진으로 전시를 대체할 수 없다. 넛지, 느슨한 동기부여는 할 수 있다.


디지털 프레임으로 표현되지 않는 붓자국, 마티에르의 양감, 화사한 색채, 이머시브 전시의 앰비언스, 조각의 물성, 조각의 사방을 에둘러 걸으며 여러 방향에서 보는 경험, DVD와 인터넷으로 찾아볼 수 없는 전시장에서만 제공되는 작가의 한정판 영상 등등 전시장을 찾아가야할 이유는 셀 수 없다.


모두가 다녀왔다던 데이미언 허스트의 해골 소머리 상어를 나도 놓칠새라 버스에 함께 타는 것도 물론 시대적 트렌드와 함께 걷기 위한 호수 위 백조의 우아한 발헤엄이다.


그렇지만 근처 갤러리조선의 이은 전시에서 살짝 기괴한 디즈니풍 미로를 체험한다든지,


금호미술관 2층 박현진의 에코 트랙스에서 실타래와 흰 밀납풍 플라스틱 설치미술 사이를 돌아다니다가 스크린에 그렇게 빨빨 거리고 전시장을 탐사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강아지를 찍는 홈캠처럼 시차를 두고 나타내보인다는 것을 본다든지,


그리고 돌아와 전시설명문을 읽으며 그것이 바로 반려견 어질리티를 형상화한 것을 깨닫는다랄지,


성곡미술관의 부산시립 젊은작가전에서 망원경으로 멀리 있는 드로잉을 본다든지, OCI에서 아주 작게 유리사이에 숨겨진 작품을 본다든지,


하는 디지털로 대체불가능한 경험이 있다


무엇보다 교통수단을 선택하고 예약을 하거나 안하고 그날의 날씨를 느끼며 직접 그 장소에 가서 티켓을 끊거나 끊지 않고 인사를 하거나 하지 않고 큐레이터와 작가가 의도한 동선과 배치를 생각해보며 작품 사이를 거닐며 깊이 그러나 짧게 마주하는 모든 것이 


그리하여 전시를 이미 보기 전에 전시를 보겠다고 마음 먹는 순간 이미 전시장으로 나아가 있으며, 그 마음의 움직임부터 신체의 움직임에 이어 가기 까지 모든 경험이 전시를 완성한다. 미래완료시제로 말하면, 그림을 그렇게 만나러 가게 될 것이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책도 그렇다.

나는 전자책 리더기로 책을 보지 못한다. 이상하게 집중이 안된다. 논문도 인쇄해서 본다. 이공계 논문은 구성이 형식적이어서 다들 이미 옛날부터 프로그램을 돌려서 정리하고 보았는데 GPT가 나온 이후엔 요약해서 보니 누구도 인쇄하지 않는다.


한편 인문예술 논문은 결론보다 표현과 사고의 과정이 중요해서 전체를 스스로 독해해야한다. pdf는 검색과 정리를 거들 뿐


번역본보다 더 비싼 원서도 유명한 책은 pdf로 구할 루트가 있음에도 사서본다. 일차적으로는 저작권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스크린으로 잘 안 읽히기 때문이다. 어! 쩔! 수! 가! 없다. 종이책으로 읽어야할 수 밖에.


디즈니 영화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디즈니 플러스에 올라오겠지만 영화관에 가는 것과 비슷하다. 종이의 질감이 아니면 집중이 안된다. 여행다닐 때 예스이십사, 교보e리더기를 사용하면 참 가볍고 편하겠다. 눈물이 난다.


일본에선 문고본을 산다. 500엔에 한 손에 들어오는 판형. 싸고 가볍고 만듦새도 좋다. 이에 비하면 한국책은 무거워 소장용이다. 이렇게 만들지 않으면 안 사서 그렇다고 들었다. 지만지 출판사가 시도했었지만 펭귄이나 이와나미, 카도카와 같은 문고본은 한국에선 요원한 일이다.


하우스메이드 읽다가 술술 넘어가 세 번째까지 샀다. 킨들로 많이 팔렸다 써있다. 우리의 웹소설격으로 페이지 터너다.

나는 웹소인 화산귀환도 종이책으로 읽었다. 구제불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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