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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미술관에서 외국어 공부하기


26년 6월호 문예춘추의 <명화가 말하는 서양사>에서는 두 가지 점이 재밌었다. 프랑스 원어가 일본어로 번역되며 새로운 뉘앙스를 취득한다는 점이 하나, 다른 하나는 나폴레옹보다 먼저 이집트 스핑크스를 답사한 사절단이 있었다는 점이다.


왜 5.15인데 6월호냐면 최신호의 느낌을 유지하기 위해 다음 달 호수로 중순에 간행하기 때문이다. 정가는 1250엔이라 현지에서 사면 만천원 느낌으로 사고, 한국에 있을 때는 교보에서 주문하는데 만삼천원 받는다. 대신 할인쿠폰이 있어 이득이다. 과월호는 9천원에서 3천원까지도 세일하는 것을 보았다.


와세다대 졸업 후 에세이스트로 집필활동을 왕성하게 이어나가는 나가노 교코(中野京子)의 166번 째 연재다. 가운데 그림이 포함된 두 페이지의 글 꼭지인데 좋은 문어체 표현이 많고 흥미로운 일화가 많다. 일본 전시볼 때 모든 캡션을 꼼꼼하게 읽는 사람으로서 큐레이터가 베푼 전형적이고 일반적이 글보다 조금 더 문학적으로 다듬어서 읽는 맛이 좋다.


나가노 교코의 책은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아 우리말로도 여러 권 번역되어있다. <무서운 그림>을 비롯해 <명화로 읽는 OO역사> 등이 있고 절판 포함 28권, 절판을 제외하고 18권이 검색된다.


https://ja.wikipedia.org/wiki/%E4%B8%AD%E9%87%8E%E4%BA%AC%E5%AD%90



이번 회차의 제목은 <역사에게 내려다보이다>이다. 일본은 저작권 이슈가 우리보다 더 민감해 전문을 찍어 올리거나 다 번역하기는 곤란하고 흥미로웠던 점 두 가지만 언급한다. 가운데 그림은 저작권 기한 70년 만료된 공공 지적재산이다.


우선 도입부는 이렇다.


스물아홉의 젊은 장군 나폴레옹은 1798년, 영국에 큰 타격을 가하기 위해(痛打を加えるため) 이집트 원정을 감행했다. 그리고 기자의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배경으로 병사들에게 사기를 북돋우며( 외쳤다(兵士たちに激を飛ばして曰く)


“제군들, 4천 년의 역사가 지금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諸君、四千年の歴史が今我々を見下ろしているのだ!」。


(…) 스핑크스는 (…) 숭배받아야 할 신성한 존재였다


(…)


물론 나폴레옹 역시 자신도 그런 존재가 되기를 바랐을 것이기에, 스핑크스 상을 올려다보며 깊은 감회에 잠겼을 것이다(大きな感慨に耽ったことだろう)


일단 여기까지. 고풍스러운 한문투의 문학적이 표현을 음미하기 참 좋다. 예를 들어


檄を飛ばす(げきをとばす)

격문을 띄우다[돌리다]=격려하다=사기를 북돋다

曰く(いわく)

이르기를

痛打を加える(つうだをくわえる)

큰 타격을 주다

感慨に耽る(かんがいにふける)

깊은 감회에 잠기다


1798년 7월 21일 이집트 원정 중 피라미드 전투 직전에 베푼 나폴레옹의 연설은 일본의 문학적 표현과 함께 감동이 배가 된다. 그런데 일차적인 문제는 나폴레옹이 그렇게 말했다는 기록은 편집된 사실이라는 점이다.


마치 예수의 말이 제자들을 통해 기록되었고 소크라테스의 문답이 플라톤에 의해 기록되었듯, 나폴레옹의 말도 고르고 장군(General Gourgaud)의 회고록(Mémoires)을 통해 기록되었다. 여기서도 생각해 볼 논점이 많지만 일단 넘어가고


프랑스어 원문은 이렇다.


Soldats, songez que du haut de ces pyramides, quarante siècles vous contemplent ! 

병사들이여, 이 피라미드의 정상에서 4천 년의 세월이 그대들을 관조하고 있음을 <깊이 상상해보고 그 역사적 무게를 느껴보라>이다.


여기서 songez que..는 일반적인 생각하다penser나 영어의 기억하다remember의 뉘앙스가 아니다. songer는 마음속에 떠올리다, 깊이 상기하다, 몽상하다라는 뜻이라서 뉘앙스를 살려서 <>안에 길게 풀었다.


그리고 숫자를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4천 년은 40세기로 표현되었다. 1세기가 100년이니 40x100=4,000년으로 표현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일본어와 프랑스어의 뉘앙스가 매우 다르다.

일본어는

제군들, 4천 년의 역사가 지금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今我々を見下ろしているのだ!

라고 내려다보다=볼 견, 아래 하의 미오로스를 썼는데


프랑스어는 무생물 주어인 40세기=4천 년의 시간이 그대들을(vous) 명상하고 관조하고 있다(contemplent)이라고 풀었다.


컨템플레이트는 라틴어 contemplari에서 비롯되었고 con+templum의 합성어다. 템플은 원래 신탁을 위해 하늘을 구획한 공간이었으며 고대 로마에서 새 등을 통해 자연적 징후를 읽던 사제 혹은 점관(augur)가 하늘을 응시하며 징조를 읽던 곳이다.


이런 어원과 문화적 뉘앙스를 감안해 꽁땅플레contempler의 본디 뉘앙스는 오래 바라보다, 경건하게 응시하다, 의미를 읽기 위해 관조하다이다.


그러니까 일본어에서처럼 나의 생애보다 더 긴 세월이 미미한 인간을 권위적이고 압도적으로 내려다보는 느낌이 아니다.

풍경을 넋 놓고 바라보고, 예술작품을 오래 응시하고, 종교적이고 철학적으로 관조하는, 뭐랄까 가스통 바슐라르의 몽상적(rêverie) 느낌이다.


물론 나폴레옹은 19세기 프랑스 제국주의의 계승자로 이집트라는 이역을 점령하면서 스스로를


역사의 계승자로 연출하는 노련한 기획도 읽을 수 있다.


앞선 songez que 상기하라, 와 함께


병사들 개개인이 지금 세계사 속에 들어와 있고 역사를 만들고 있다는 감각적 이미지를 체험하게 만드는 말이다. 특히, 프랑스어에는 있었는데 일본어에서는 내려다보다는 동사술어로 풀어내 사무라이-평민의 위계관계로 오역된, 


du haut de ces pyramides

(이 피라미드들의 높은 곳으로부터)

의 수직성을 감안할 때 더 그렇다.

위에 있는 고대의 시간이 아래 있는 현재의 병사들을 관조하며 그 사이를 흐르는 시간과 역사적 운명에 잠기는 감각이다.


이게 첫 도입부의 나폴레옹 연설 구절의 일본어와 프랑스어의 차이를 통해 본, 언어별 뉘앙스이다. 이를 통해 번역된 서구문학은 사실 별도의 일본문학처럼 읽히게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일본어라는 언어와 문화를 통과하며 제2차 창작된다. 서구문학을 좋아하는 일본인은 사실 현실이 아닌 어떤 창작된 판타지를 읽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흥미로웠던 두 번째 포인트다.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은 1798-1801년인데 스핑크스 아래의 나폴레옹을 그린 장레옹 제롬이 작품을 제작한 날짜는 1886년이다.


글의 마지막에는 "자, 여기서부터는 일본인의 에피소드다"라고 운을 띄우며 이렇게 서술한다.


제롬의 이 작품이 발표되기 20여 년 전인 1864년, 비록 머리 부분뿐이었지만 최고급 스핑크스 관광을 경험한 일본인 일행이 있었다. 이케다 치쿠고노카미 나가오키를 단장으로 한 제2차 유럽 파견 사절단이다. 그들은 유럽으로 들어가기 전에 이집트에 들러 스핑크스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흑백의 작은 그 사진에는 나폴레옹 시대보다 발굴이 더 진행되어 어깨 정도까지 지표 위로 드러난 스핑크스가 찍혀 있다.


한반도는 철종에서 고종으로 막 왕위 교체를 한 시점(1863)이라 서구를 방문한 적이 없어서 유럽근대사와 일본사가 교차하는 세계사가 재밌다.


또 여기서 막말 유럽사절단을 이끈 池田長発 이케다 나가오키의 이름도 흥미로웠다.


처음엔 이름 한자가 너무 길어서 당황했다. 7자 이름이라고?


지전축후수장발? 池田筑後守長発?


찾아보니 이케다いけだ + 치쿠고노카미 ちくごのかみ + 나가오키ながおき로 끊어읽고 근세 일본 무사 계급 특유의 이름 + 관직명 + 실명 구조라고 한다.


池田 = 성씨

筑後守 = 관직명(칭호)

長発 = 본명(諱=이미나)

이고 7자로도 검색되고 관직명을 뺀 池田長発로도 검색된다.


https://www.ibarakankou.jp/sightseeing-information/great-man/DB036.html

筑後는 현재 후쿠오카 남부 지역 옛 지명이라고 하고

守(かみ)는 원래 국(國)의 장관, 지방관이기에


직역하면 치쿠고국의 수령이라는 의미다.



실제로 위키피디아 아래쪽에 스핑크스 아래에서 촬영한 일본사절단의 사진이 있다. 놀라운 일이다.


https://ja.wikipedia.org/wiki/%E6%B1%A0%E7%94%B0%E9%95%B7%E7%99%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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