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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미술관에서 외국어 공부하기























올해 퓰리처상 중 이 책이 제일 좋았다. 첫 페이지 읽자마자 휙하고 휩쓸려 들어갔다. 일하는데 집이 없는 사람들의 주거 불안정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클로이 자오의 오스카상 수상 영화 <노마드랜드>가 생각나지만 영화쪽은 웨스턴과 로드무비를 섞어 낭만화한 측면이 있다. 반면, 책은 부자나라의 가난한 국민의 초상을 처절하게 다루며 노숙자는 게으른 사람이라는 앵글로색슨적 복지관념을 타격한다.


왜 일을 하는데 집에서 쫓겨나고 힘들게 사는가? 집에서 퇴거된 후 영구적으로 임시상태로 사는 미국인들의 구체적이고 개별적 삶의 단면이 자세하게 서술되었다. 영화는 실외 공간에서 광활한 자연과 마주하는 유랑민이 만든 캠핑 공동체에서 희망을 전달하지만 책에선 그런 것도 없다. 모텔을 배경으로 실내 공간의 수탈과 구조적 감금, 강제 퇴거의 악순환이 이어져 집을 잃고 다시 정착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을 그린다


책에선 밀도 높은 현장감과 힘있는 정서와 이성적인 분노가 모두 느껴진다.

단독주택이 늘어선 교외지역 개발, 장기거주와 지역 공동체라는 20세기 미국적 신화와 아메리칸 드림은 도시화에 기반했다. 이제 이 도시사회학적 모델이 해체되고 21세기 미국은 단기 근로계약, 임시 모텔, 차량 생활, 플랫폼 노동을 중심으로 한 모빌리티 인간, 즉 이동가능한 인간이 탄생한다. 그 결과 이전의 시민(citizen)이 이제는 사용자(user)가 되며 정착민 사회가 다시 유목화(노마드화)된다.


올해 초인가 작년 말인가(벌써 오래 전 일 같다) 읽었던 송길영의 <시대예보: 경량문명의 탄생>에서 말했던 경량화된 개인이 실패한 열화버전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책 정도로 디테일하고 힘있고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논픽션 기사는 6년 전 시사인 르포가 생각난다.


daerim.sisain.co.kr


푸코는 권력을 세 가지로 나누어

규율권력(disciplinary power)은 신체를 통제하는 권력으로 의학, 병원, 감옥, 군대로 나타나며 

담론권력(discourse/power-knowledge)은 정신과 의식을 다루는 권력으로 교육, 언론, 심리학이 주관하며

생명권력(biopower)은 개별 신체를 모두 포괄하는 집단 전체의 삶, 즉 인구의 권력으로 국가 행정, 통계, 복지, 성관리로 세분화할 수 있다고 했다.


푸코의 위대한 통찰은 생명권력이긴 한데


한국에선 담론권력이 많이 쪼그라들었다.


혹은 전통적 레거시 미디어에서 유투브와 인플루언서로 권력이 옮겨갔고

요즘은 종이신문으로 출발한 언론의 기능이 이전 같지 않다.


그래서 위의 시사인이나 이런 퓰리처상 받은 중량감 있는 책을 쓰는 사람이 적은 것 같다.


한국에서 기자를 폄훼해 기자+쓰레기=기레기라고 하듯

일본에서도 대중언론(mass communication)의 일본식 준말인 매스컴(마스코미マスコミ)에 쓰레기를 일컫는 고미(ごみ)를 붙여 마스고미라고 한다.

레몬ost로 유명한 드라마 언내츄럴에서 들었던 어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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