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술 투어하며 미국에서 국위선양하고 있는 박생광의 옛 전시 도록을 보았다. 난 글로벌 관객이 박생광을 흥미로워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아직 반응을 직접 확인해본 적은 없다.
한국미술을 아는 해외 오디언스도 모르는 이도, 한국 교포도 그 낮섦에 큰 임팩트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
검은 윤곽선을 두껍게 에두르른 고채도 적청황녹흑 오방색의 색면 충돌이 사이키델릭적이면서 독일 표현주의를 경유해 해석될 수 있다.
또한 불교, 무속, 민화 도상은 고맥락적이어서 독일 바르부르크적 도상해석이 가능한 문화적 음미의 영역이다. 캔버스를 밀도 높은 기의 흐름을 꽉 눌러채워 야수파처럼 폭발하기에 폴락의 원초적 에너지도 로스코의 영적 색면도 있다.
해외 관객은 동아시아(한국) 미술에 대해 김환기 이우환처럼 먹과 여백이 만드는 절제된 미니멀리즘을 기대하는데 박생광은 정반대라 시각적 충격을 준다.
한옥과 배흘림기둥, 백자와 수묵으로 대표되는
전형적 한국 미니멀리즘의 반례다.
민족적이면서 환각적이기도 하고 칼융의 원형으로 톺아볼 수 있는 집단무의식과 의례의 시각화다.
박생광은 유교가 풍미한 조선의 선비문화가 억누르고 잊어버리려 애쓴 가능성 혹은 잠재력이다.
조선적이라기보다 동남아적이고
한양적이기보다 남방적이다.
추상의 영역에서 노니는 것은 공통적이지만 명나라와 주자학으로 대표되는 성리학의 엘리트 중심 지성사라기보다 동남아 사원, 티베트 탕카, 인도 힌두이즘과 오키나와 제의문화가 생각나는 민중의 무의식 정신사 혹은 해양교류사가 떠오른다.
빙의된 캐릭터는 트랜스상태에 있는데 고갱이나 피카소가 발견한 아프리카의 재구성된 원시성이 상기된다. 작가가 계산적으로 통제한 구성이 지배적인 세련되고 냉소적인 현대미술만 보다가 박생광의 그림을 보면 진짜로 무엇인가를 믿고 있는 그림이 제공하는 에너지가 있다
아울러 미국 추상표현주의와도 다른데 기독교 이후의 거세된 공허한 영성이 아니라 생동하는 민간 신앙과 연결된 영성이기에 마지막 퍼즐이 될 수 있다
그의 드로잉의 더 흥미롭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