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일간 미술관에서 외국어 공부하기

뜻하지 않게 번거로운 설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인 이야기를 전해본다.

서양과 동아시아 언어, 음식의 차이도.


아래 일본테레비방송 썸네일은 강한 봄바람이 계속된다는 뜻이다.




하루 노 아라시라 읽고 봄춘春+의+일본재정의한자 아라시 산 아래 부는 강한 바람嵐의 합성어다.


그 아래 한자"被害相次ぐ"를 보고 "피해상이 계속된다"라고 읽길래


아니다 히가이+아이쯔구(피해+상차)다라고 설명했더니


피해상+계속 차(차례할 때 다음 차次) 아니냐 네이버사전에 찾아봤더니 없다고해서


相次ぐ의 상相은 서로 상(상부상조) 혹은 바탕 상(진행상)이고 이렇게 붙여쓴다 부연했고


이에 그럼 관상은 무엇이냐 관상은 보는 거 아니냐 피해상도 보여지는건데 라고 되물어


형상과 모양을 이르는 상은 狀이며 피해상황狀況, 복구상황을 줄여서 피해상被害狀, 복구상復舊狀을 쓸 수 있고


관상觀相은 사람의 본바탕을 본다는 뜻이며


코끼리 상象 혹은 모양 상像을 사용해 형상(形象/形像)을 쓰지만 초상(肖像)처럼 사람 인 변을 써야 더 이미지에 가깝다고 하니 


한자사전의 相풀이에 모양형상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더 적합한 어휘가 있다, 그러나 나도 사실 잘 모르겠으니 주어진대로 쓰자고 했다. 동아시아 한자는 굳어진대로 쓰는 것이다고 손을 털었다.


그런데 이 일화를 몇 시간이 지나 밥 먹으며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직접 빚은 간장과 직접 담근 김치를 사용하는 정말 맛있는 한식 밥상이었다.


손님들이 비법이 뭐냐 주인에게 물어봐도 답은 해주는데 별 영양가가 없었다. 같이 숟가락을 뜨던 다른 사람이 그 레시피를 따라해도 어차피 집에서 이 맛을 못 낸다고 했다.


흑백요리사2에서 선재스님이 안성재 셰프에게 극찬을 받은 비법은 직접 담근 장에 있었다. 양적 훈련을 받은 파인다이닝 요리사가 따라해도 시판 양념을 사용하는 이상 그 맛의 오묘한 깊이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화려한 칼질은 묵은 장 앞에서 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그 김치 버무리고 장 담그는 비법은 마치 서예처럼 스스로 터득하는 것이다. 하다보면 어떻게 되고 경험적 노하우가 쌓이는데 말로 전하기 어렵고 과학적 통계를 내기도 어렵다.


르꼬르동 블루에서 아무리 레시피를 데이터화하고 계량화하려고 해도 한식은 그렇게 하지 못해 엄마 손맛, 할머니 손맛은 늘 비밀로 남는다.


밥을 우물우물 씹고 이 대화를 들으면서 이런게 서양이 바라보는 동아시아 글자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왜 한자어휘를 설명하기 어려운지도. 왜 이 상은 되고 저 상은 안되는지 설명하는게 복잡한지도.


유럽어는 문법을 기준으로 표준화, 레시피화가 되기에 시스템을 이해하는 것이 관건이고

동아시아어는 거의 전적으로 개별 사례에 천착하기 때문에 경험적 학습이 핵심이다, 라는 생각을 했다.


유럽어는 대개 그리스로마의 뿌리에서 출발해 알파벳을 공유한다. 초심자에게 전미래니 미래완료니 대과거니 미완료니 하는 문법이 어려워보이지만 로망스어는 시스템 안의 변주다. 프랑스어를 배우면 스페인어를 안 하는건 사실 게으른 일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친연성이 높다.


그런데 동아시아는 다르다. 서양인이 보기엔 모두 한자를 쓰는 듯이 보인다. 한국은 한글을 쓰지만 한자가 기반이니 마치 알파벳을 쓰지만 내용은 아랍어에서 온 튀르키예어 같다고 생각할 수 있다.


經濟는 한국어로 경제, 중국어로 찡찌, 일본어로 케이자이, 광둥어로 껭자이, 베트남어로 낀 떼니 다르지만 유사한 발음이고 간체经济, 약자経済, 번체의 차이가 있긴 있으나


대개 발음이 ㄱ-ㅈ로 이어지는게


마치 유럽언어에서 같은 그리스어 어근의 이코노미(οἰκονομία)를 강세와 표현만 살짝 바꿔서 읽는 것과 비슷해보인다.


스페인어: economía

이탈리아/포르투갈어: economia

프랑스어: économie

루마니아어: economie

독일어: Ökonomie

덴마크, 노르웨이어: økonomi

러시아어: экономика

폴란드어: ekonomia

크로아티아어: ekonomija

처럼

이런 어형적 유사패턴, 문법적 유사패턴을 보면 EU의 언어는 수는 맣으나 계통별로 방언같다. 시스템, 즉 표준화된 레시피 학습이 관건이라고 생각될 것이다.


그런데 한자는 그렇지 않다. 개인이 알아서 선인들이 빽빽하게 심어놓은 고전의 숲을 헤쳐나간다.


글자가 겉보기에 통일되어 보여도 유럽보다 훨씬 더 변주가 많고 지역적 다양성이 많다. 어떤 어휘는 서로 공유하고 있으나 자신의 나라 혹은 지역에서만 쓰는 어휘도 많고 발음도 까탈루냐어와 체코어의 간극같은 동베이 방언과 쿤밍의 방언의 간극이 있다.

알파벳을 배우고 상, 태 등의 문법에 익숙해지고, 로망스어군의 다양한 시제표현, 독일어군의 분리/비분리전철과 관사, 슬라브어군의 이동왕래발착동사와 어근 같은 것을 하나 습득하면 해당어군의 다른 언어를 쉽게 배울 수 있는 것과는 한자는 다른 것 같다.


물론 한국인이 일본어의 경어표현이나 어미를 배우는 것은 중국인이나 서양인보다 쉽고, 한자를 아는 일본인이 중국어를 배우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우나 겉모양만 읽을 수 있지 그 정확한 표현은 잘 몰라 찾아봐야하는 상호 교환이 안되는 한자어가 많다. 


예컨대 일본어로 質入(시치이레)는 질입이지만 한국인도 중국인도 한자만 보고 무슨 말인지 모른다. 한국어로는 저당잡히다는 뜻이고 중국어로는 디야抵押인데, 한자는 저압이다. 


그러니까 한중일 세 명이 같이 있을 때 일본인이 질입質入이라고 한자를 쓰니 중국인이 한국인에게 이거 抵押라는 뜻이라고 설명한다면 한국인은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다.


서예를 배우는 이는 스승의 가이드는 있지만 이런 상황에서 쓰이는 단어, 저런 상황에서 쓰이는 단어, 이런 획수 저런 획수 이런걸 계속 써보면서 알아서 배운다. 많은 고전의 예시를 통해 스스로 터득한다.


마치 장을 담그는 이가, 사찰음식을 하는 이가, 습도, 햇빛노출정도, 관리법 등 수많은 변수를 매일의 상황 속에서 체득하는 것과 같은데 행동으로 배운 걸 말로 전하기 어렵다.


그 결과 동아시아 어휘를 남에게 쉽게 구조적으로 설명하기는 난해하고 배우는 자는 아리송하다. 서양어만큼의 깔끔하고 체계적인 문법은 없고 평생 다 못 읽는 고전원문의 케이스만 가득하다.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