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종료한 삼성동 마이아트뮤지엄 리치오디 현대미술관전에 갔었을 때 더욱 느꼈던 점은, 시간이 지난다고 작품이 나아지는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예술은 선형적 시간관에 따라 기술과 미학이 발전하는 것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을 되새김질하며 전시장을 거닐었다. 1885년 작품이 구도, 색감, 조형 모든 면에서 1910년 작품보다 더 좋았고, 그보다 1860년 작품이 더 기술적인 완성도가 있었다.
아펜니노 산맥을 그린 피아첸차 화가, 롬바르디아 회화와 고전 구도의 서정적인 융합, 아름다운 자연을 사생한 포실리포 학파의 초기 나폴리 미술 등 기억에 남는 포인트도 많았고 아이 노동 누드 해변 파도 빛 등 주제별로 다양한 붓질과 표현법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 섹션에서 도난당했다가 되찾은 클림트 회화가 x-ray로 보면 덧칠해 재탄생하 작품인데 모델과 의뢰인에 숨겨진 스토리가 있다는, 수장(콜렉터)-보존(미술관)-채색(작가)-대상(패트론) 4중 구조의 스토리가 적절한 방점을 주며 전시의 매듭을끝 맺었다.
전시의 끄트머리에 도메니코 모렐리, 천사들에게 섬김 받는 그리스도, 1895 작품이 있었다. 아래 라틴어 성경 구절은 마가(마르코, Mark)복음 1장 13절으로 이렇게 써있었다.

Et erat in deserto quadraginta diebus, et quadraginta noctibus; et tentabatur a Satana; eratque cum bestiis, et angeli ministrabant illi
그리 어려운 라틴어는 아니다.
우리말 번역은 이렇다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신약성서는 원본이 헬라어이고 라틴어로 번역했다. 헬라어는 이렇다.
καὶ ἦν ἐν τῇ ἐρήμῳ τεσσεράκοντα ἡμέρας, πειραζόμενος ὑπὸ τοῦ Σατανᾶ, καὶ ἦν μετὰ τῶν θηρίων, καὶ οἱ ἄγγελοι διηκόνουν αὐτῷ
여기서
라틴어와 헬라어, 우리말에는 뉘앙스 상에서 감각적 차이가 있다.
1. 라틴어는 헬라어가 40일 동안이라고 한 것을 40일 낮과 40일 밤로 늘려서 고난의 기간을 강조했다.
라: quadraginta diebus, et quadraginta noctibus ㅎ
헬: τεσσεράκοντα ἡμέρας
2. 또한 라틴어는 et erat…;et tentabatur(3인칭 직설법 미완료 수동태);eratque et angeli ministrabant…로 동사 술어가 4번 이어져서 사건의 진행 혹은 나열을 나타낸다.
1)(광야에) 있으셨고 2) 시험받으셨으며 3) (짐승들이) 있었고 4) 천사들이 수행했다.
그런데 이때 헬라어는 카이(그리고) 세 번에 시험받았다는 동사가 분사로 연결되었다.
1) καὶ ἦν…πειραζόμενος 2) καὶ ἦν 3)καὶ
이 πειραζόμενος는 남성단수주격의 현재 중간/수동 분사로,
시험을 받으며
혹은 시험이라는 상태 속에 존재하고 있으며
정도의 뉘앙스를 준다.
그래서
헬라어는 상태 중심 (was .. , being tested)이고
라틴어는 행위 중심 (was ... and was being tested)이며
헬라어는 더 정지된 장면 속에 유기적으로 결합된 스틸컷적 이미지로 느껴지며
라틴어는 논리적으로 분절된 술어의 연속 속에 이야기적 흐름을 강조하는 듯 보인다.
무엇이 더 적합하냐하면 헬라어가 도메니코 모렐리의 그림에 더 적합했다고 본다.
사진을 안 찍어서 블로그에 "천사에게 섬김 받는 그리스도, 도메니코 모렐리"로 검색하거나, 게티이미지에서 볼 수 있다.
https://www.gettyimages.com/detail/news-photo/christ-in-the-desert-by-domenico-morelli-oil-on-canvas-news-photo/150618063
이 그림 속의 그리스도는 시험받는 상태 속에서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시간은 흐르고 있다기보다 정적이며 지속적이고 응축적이다.
라틴어에선 광야에 있었고 and 시험을 받았다라는 서사적 사건의 연속으로 기술되어, 시간 위에서 and(et와 -que)로 분절되어 진행되는 듯하다.
한편 헬라어에선 "그는 광야에 있었고, 40일 동안, 사탄에게 시험을 받는 상태였으며, 짐승들과 함께 있었고, 천사들은 그를 섬기고 있었다"로 번역 되기에
존재 상태의 지속 (being-in-testing)이 강조되어 그림과 정합적 연속성이 있다. 현재분사가 그 상태 안에서 일어나는 작용이라는 의미를 보강해주기 때문이다.
광야에 진입, 사탄의 시험, 짐승의 등장, 천사의 수발이라는 연속된 사건을 압축한 서사 이미지라면 조토의 화풍으로 시험 장면이 강조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모렐리의 그림에서 그리스도는 이미 시련이 끝났으나 여전히 시간은 다 가시지 않아 감정의 잔여물이 남아 있어 보이고, 그러한 시험 받은 상태 속의 긴장과 피로가 축적된 육체를 그린다.
이제 막 시련이라는 퀘스트를 시작하는 개선장군 같은 진취적이고 위세등등한 자세가 아니라 힘이 빠진 육체가 거의 쓰러질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의지의 힘이 우뚝 서있기 보다는, 간신히 정신을 붙잡고 있는 듯하다. 그래야 천사들의 수발에 기대는 것이 유의미하다. 천사들의 계속 섬기고 있는 상태를 강조하는 미완료 시제는 헬라어나 라틴어나 διηκόνουν이나 ministrabant으로 동의하고 있다. 이미 그림의 한 켠에 자리잡고 침묵 속에 돌봄을 한다.
그러니까 헬라어로 읽어야 그는 시험받는 상태 속에 있었고... 그 상태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라는 점이 부각되는 것이다.
영어로 번역하면 라틴어는
He was there in the wilderness forty days and forty nights
and was tempted by Satan.
He was with the wild animals; and the angels were serving him.
로 뚜벅뚜벅 이벤트가 진행되며
헬라어는
He was there in the wilderness forty days, being tempted by Satan,
and was with the wild animals; and the angels were serving him.
로 미묘한 상태성이 부각된다.
영어로 번역해보면 엇비슷해보이지만 원어의 감각은 다소 다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존경어가 부각되어 역사적 예수보다는 신성이 강조되는 느낌이다.
그러니까 라틴어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전달하고
헬라어는 그가 어떤 상태 속에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게 핵심이다.
물론 라틴어가 40 낮과 40밤 이라고 길게 늘여말한 것은 구약성경에서도 나오는 시험의 완전한 기간을 강조한 표현으로 다른 복음서와도 조화를 이룬다. 이런 반복구조는 낭송시 리듬의 운율을 낳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