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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미술관에서 외국어 공부하기



데이미안 허스트전은 호불호가 매우 갈리는 전시다. 중간은 거의 없을 것 같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원본을 8천원으로 국내에서 볼 수 있으니 비행기 티켓 몇 백만원 아끼는 셈이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슈퍼스타 슈퍼리치 현대예술가의 기운을 받기위해 많은 인플루언서들이 방문할 것 같다. 나만 인스타에 올리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문화가 있는 수요일에 공짜로 본다면 더욱 사람을 몰리겠으니 전시스텝은 론뮤익보다 더 고생할 듯하다.


전시 기획은 직관적이어서 이해가 쉽고 해골 상어 소머리, 세 손가락으로 간결하고 임팩트가 있다. 마이아트나 더현대의 인상파전처럼 배워야할 유럽문화 배경지식이 많지 않아 허들이 낮다.


반면 데이미안 허스트전에 데이는 관객도 다소 있을 성 싶다. 해골 상어 소머리, 세 점 말고는 볼 것이 없다는 아우성이 있을 수 있다. 국공립의 공공성에 대한 논란도 하나다.


나는 기획이 전략적이고 영리하다고 생각한다. 설령 전시가 외화내빈이라고 비판받더라도 티켓은 잘 팔릴 것 같고 소셜미디어의 사람들의 반응도 좋을 것 같다. 유명세는 유명세를 부르는 마태복음 효과를 추종하는 SNS에 경도된 한국사회 아닌가. 론뮤익에서 배운 것 같다. 그 유명하고 비싼 다이아몬드 해골을 실견할 기회를 놓칠 배금주의자들은 적으리라


죽음과 박제라는 테마는 작년 국현미 개관 이래 최다 관객인 53만명을 모은 론뮤익과 연속성도 있다. 론뮤익도 허스트와 마찬가지로 아시아 최초의 대규모 개인전이었고, 론뮤익 마지막은 거대한 해골더미로 끝났는데 허스트는의 다이아몬드 박힌 해골이 릴레이 바통을 잡았다. 트라우마와 죽음충동은 작년 호암의 루이즈부르주아와 맥을 같이 한다.


개인적으로 일본이 근대미술에 강하다면(실제 진본 소장품도 많다) 한국은 현대미술에 강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만큼 우리의 경제성장이 더뎠다. 사람들의 먹고사니즘이 해결되어야 미술을 관람한다. 데이미언 허스트의 첫 아시아 대규모 회고전을 한국에서 했다는 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볼 게 많았냐는 잘 모르겠다.


쭈글한 소파 질감의 상어의 눈은 불쌍해보였고 파리는 꽤 팔팔했고 잘린 소머리는 리얼했으며 18세기 해골은 눈 푹 꺼진 자리 안와와 입천장 구개까지 꼼꼼히 박혀있었다.


예상치 못했는데 자기 살껍질을 벗겨낸 성바르톨로뮤 청동상과 대리석으로 조각한 천사 해부상이 흥미로웠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에서 중일전쟁을 반성적인 톤으로 기술하는 방향 속에 사람 살점 벗겨내는 몽골(?) 고문기술자가 떠올랐다. 살과 근육을 청동으로 구현한 질감과 대리석으로 표현한 대동맥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세 폭 제단화 구성에 왼쪽은 다양한 생선을 포름알데히드로 박제를 하고 가운데는 가위 등 의료기기를 두고 오른족은 생선에서 가시만 정교하게 벗겨낸 오브제 작품도 흥미로웠다.


왜 한미제약이 서포트를 했을까 보니 약통이 제단으로 쓰였다.


조각상이 마주보고 있는 공간이 있다 누미노제의 신성을 스테인레스스틸 가위로 도려낸 종교도상의 공간이다.

하나는 검정 하나는 하양

서로 흑백이 마주하고 있고 하나는 진취적인 로마 개선장군 포즈, 하나는 수그린 피에타 자세를 취한다.

하나는 남성과 울그락불그락 근육과 철제질감

하나는 스푸마토로 부드럽게 연마한 대리석으로 천을 구현했다.


나아가 나비라는 덧없는 생명이 박제된 영원을 추앙하는 종교의 스테인드글라스까지. 영성이 도려진 도상의 공간에서 의학이 종교를 대체했는가, 삶과 죽음과 영속성과 존엄은 어디갔는가 생각해본다. 


도록에선 학예사가 허스트의 미술사적, 미학적 분석을, 서울대 종교학과 유요한 교수가 예술 의례를, 철학과 굴뚝청소부로 유명한 이진경 교수가 죽음상징 바니타스 등 철학적 의미를, 그레고르 뮤어 테이트 미술관 디렉터가 골드스미스와 프리즈 시절 초기 경력을 훑어준다.


해골 상어 소머리가 핵심이긴 하지만 그외에도 종교를 대체한 의학의 역할, 가톨릭 도상의 재해석도 탐구할만한 재미있는 주제다.


대부분 허스트의 20대 시절을 다루는 1부를 쓱 넘어가겠지만, 거기서 보이는 대부분의 작품이 2,3,4부로 연결된다는 점을 더 감안하면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첫 작품 데님셔츠 <자화상>는 그가 골드스미스 학부1학년 때 개념미술의 방향을 설정해 준 마이클 크레이그-마틴을 오마주한 것이다. 노동집약적인 유럽회화가 고전주의 구도가 아니라 현대미술가로서 지향성을 나타낸다. 미술관에 걸어둔 옷이 미술이라는 점을 인정하거나 논란이 생기는 것에서 현대미술이 시작한다.


이어지는 <죽은 자의 머리와 함께> 사진에서 보면 16살의 허스트는 뚱뚱한 대머리 영국인 시체의 잘린 머리와 웃고 있는데 죽음에 대한 일관적인 주제를나타낸다. 2부의 상어 소머리와 연결된다.


그 다음 콜라주는 수집광 노인이 강제이주된 집에서 본 산처럼 쌓이 잡동사니가 인간 삶을 보여주다는 깨달음을 나타낸다. 세 번째 작품이 작가 최애라 했다. 4부에 산더미처럼 쌓인 약으로 이어진다. 잡동사니가 의약품으로 바뀐 것일 뿐이고, 의약품의 종류가 개인 삶의 궤적을 나타낸다 보는 것이다.


스팟 페인팅은 죽음의 반대 생명이자 덧없이 지는 와비사비의 상징, 벚꽃 연작과도 연결되고, 2층 작가의 방 리버페인팅과도 시각적으로 연결된다. 알약캐비닛 연작의 강박적으로 질서잡힌 다양한 색깔이나 마지막 전시실 벽을 뒤덮은 약제명과도 연결된다. 일부 스팟 페인팅 연작의 이름엔 화학물질이나 의약품명도 붙어있다.


<7개의 팬>은 상업주의 작가로서 효시를 알린 <프리즈>전의 기억이다. 투명한 관은 상어-소머리와 함께 있으나 지나치기 쉬운 나머지 한 작품과 연결된다. 의자가 너무 바짝 붙어서 폐소공포증을 일으키는 투명감옥이다.


<올라간 것은 반드시 내려온다> 헤어드라이어에 붙은 탁구공은 죽음과 탄생의 상승하강 이미지를 상기하며, 죽음이라는 불가항력적 운명을 중력으로, 헤어드라이어의 바람을 덧없고 일시적인 인간의 노력으로 치환한다.


기계의 힘으로 회전하는 캐버스에 물감을 부어 제작하는 스핀페인팅은 자신의 작업방식이 어시나 기계에게 외주를 준다는 점을 보여주기도 하고, 순환하는 생명의 사슬, 예술의 우연성과 통제불가능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산탄총으로 자살한 남자의 사진이 블러처리되어 QR코드로만 원본을 볼 수 있는 세척용품, 장갑, 의료기기와 함께 전시한 작품은 4부 죽음과 의학에 대한 1부에서 가장 직접적인 복선이다.


이렇게 1부의 작품 모두 전시 주제에 대한 암시를 하고 있다. 그 다음 이제 상어, 소머리, 해골이고 그 다음 의료기기, 동상, 약 끝이다.


전시를 가지 않아도 SNS에 너무 많은 사진이 올라올텐다. 정말 그게 전부이지만 사람들이 그래도 꾸역꾸역 직접 원본을 보기 위해 안국역으로 갈 것이다. BTS 컴백공연(3.21)과 단일전시 최대관객을 그러모은 공예박물관의 금기숙 기증전 종료(3.22) 마지막 고별인파와 허스트전 개막(3.20)이 겹쳐 도떼기시장일지도 모르겠다.


MOOC를 통해 대학강의 무료로 인터넷에 공개하면 학생들이 학교를 안 오고 집에서 공부할거라는 비판이 있었으나 기우였다. 사람 마음이 그렇지 않다. 온라인에서 보면 더 친숙해지고 오프라인으로 더 오고 싶어진다.


마찬가지다. 그 유명한 다이아몬드 해골 보려고 지방에서 다 올라올거다. 한국인의 갤럭시와 클라우드에 너도 나도 론뮤익과 허스트 작품 사진이 있게되리라. 희토류를 사용해만든 최첨단폰에 불필요하게 수많은 저장용량을 사용해서 자원낭비와 중복이 너무 심하지만, 다시는 안 볼 지언정 나만 안 할 수 없다. 포모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사진어플을 잘 쓰는지 어깨너머 알 수 있는 기회다. 아시아 최초전시라 하니 일본,중국,대만에서도 오겠지. 주식판의 지금이 가장 쌀 때다라는 말처럼 오히려 지금이 가장 사람이 적을 때다, 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문화가 있는 수요일 저녁엔 얼마나 많아질까.


너무 과한 촬영장비로 너무 과하게 찍는 이들도 있었다. 사진 촬영이 중요해서 작품에 다가가면 눈치 주는 사람들도 보았다. 미술감상보다 소셜스페이스가 더 중요한 시대라 그런지


흡사 현대예술계의 내한공연과 같아보인다.

용이나 유니콘 같은 상상 속의 존재를 내 눈 앞에서 볼 수 있는 전시다.

혹은 소문만 무성하던 왕족이 친히 내왕해주는 퍼레이드라 할 수 있을지도

언젠가 보았던 에도시기 그림에 조선통신사를 보기 위해 몰린 일본의 인파처럼, 일본 스님마저 내려온 것처럼.

루브르에서 모나리자 앞에서 선 유럽인도 매너건 뭐건 다 잊고 무장해제되어 너나 할 것 없이 폰을 들어 사진을 찍는다.


싫다는 사람의 볼멘소리도 노이즈 마케팅이 되어 장삼이사 모두 친견하러 올 것이다.

찰칵찰칵소리는 몇 달 간 끊임없으리라

미술담론과 상관없이, 한국인의 심리를 꿰뚫어 본 전략적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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