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영화 3편을 보았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19세 로맨스에 사랑의 불가능성과 희노애락의 지겨움에 대한 영화였다.
늘 그렇듯 정보 찾아보지 않고 독립영화관에 걸렸거나 어느정도 제목이 온라인에 유통되어 제목이 눈에 낯익다 싶으면 그냥 일단 냅다 들이대 영화를 AtoZ로 바닥에서부터 이해하는걸 좋아하는 편인데 우연히도 세 영화의 주제가 비슷했다. 혹은 한 날에 본 내가 그렇게 주제와 감성이 병치되었다 느꼈다. 루이 가젤 뮤지컬영화는 추천받았다.
미국 시골마을에 사는 산후우울증에 시달리는 그레이스의 권태와 조울증을 다룬 다이마이러브의 독특한 점은 철저하게 캐릭터 본연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영화는 임신 후 아이를 돌보는 엄마의 광기를 치료의 대상으로 접근하며 판단본위의 시각을 전제한다. 비정상이므로 치료해야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본인보다 본인을 둘러싼 주변사람의 입장을 드러내며 그들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고, 얼마나 주인공을 도와주고 싶어하는지를 그린다. 영화는 놀랍게도 철저하게 그레이스에게 초점을 맞춘 개인주의적 시각으로 영화를 그린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다 이해한다는 듯이 연출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은 나오지만 신파로 전락해 남편의 희생이라는 일방적인 시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으레 이런 스토리에서 등장하는 불륜 의심도 옅게 측면적으로만 다뤄진다. 그보다는 성관계가 우선인 사족보행하는 동물적 사랑이 더 중요하다.
남편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하는 모든 시도가 무용하다. 술도, 햇살도, 강아지도, 라이드도, 리모델링도, 해변가 소풍도, 결혼식도, 언덕 위의 하얀집도 무위로 돌아간다. 그렇다고 도저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내의 발언과 행동에 관객이 이입할 여지를 주지 않고 철저하게 관찰자 입장에 머물게 바리케이드 선을 친다.
집요한 강아지 소리 등으로 인한 짜증의 연쇄를 폭발적으로 분출시키지 않고 차갑고 건조하게 응축하는데, 엔딩의 거대한 화염을 위해 에너지를 축적하기 위해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