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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미술관에서 외국어 공부하기

뉴욕리뷰오브북스 편집국장(실무책임자) 로렌 케인이 어제 올린 글 <뮤지엄고잉(미술관가기)>이다. 배울 게 많은 좋은 글이다.


뮤지엄은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책임지는 공간인가? 라는 화두를 품고

지난 한 해 동안 리뷰 필진들이 뉴욕, 프랑스, 이탈리아, 우즈베키스탄 등 전세계 미술관을 방문하고 발행한 글을 깔끔하게 재서술했다. 전시 서문, 혹은 파이널 요약본 같은 정제된 글이다.


본사에서 30분 정도 소요되는 (미국인 상식으로) 지근 거리에 있는 뉴욕 프릭컬렉션 재개관뿐 아니라 시에나, 티치아노, 베로네세, 프리드리히, 퐁피두의 초현실주의, 카라바조, 동양화, 텍스타일, 퍼포먼스, 사진, 조형예술까지 폭넓게 다닌 저자들의 글을 보면 세상은 참 넓고 가야했을, 그러나 못 간 전시가 정말 많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글을 통해 방문 경험을 공유해준 저자들은 작품과 더불어 작품을 둘러싼 맥락이 밀도있는 관객경험을 준다는 점을 부각시켰고 미술감상의 재미와 더불어 이를 둘러싼 역사, 권력, 책임을 동시에 사유하는 것이 오늘날의 뮤지엄경험이라고 일갈했다.


읽는 이들은 우즈베키스탄 비엔날레와 같은 국가적 문화 재브랜딩 사례나 장식예술(섬유)가 미술의 외연으로 포함되는 과정을 간접 경험으로 톺아보며 미술은 언제나 보이는 것과 보이도록 허락된 조건의 합으로 작동한다는 점을 이해하게 된다. 나아가 왜, 도대체 지금, 하필 이 방식으로, 굳이 이 장소에서 보이는가라는 질문이 감상의 깊이를 풍부하게 만든다는 점을 깨닫는다.


전시 러버들은 으레 오랜 경험을 통해 체득하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전국의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지향을 갖고 개최되는 전시는 랜덤으로 던진 주사위처럼 개별적으로 독립 사건처럼 보인다. 한 전시가 다른 전시를 꼭 참조하거나 개최일시 등에 있어서 필연적 영향관계에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러나 메타적으로 생각해보면 만들어지고 보여진 모든 작품과 이를 모아둔 이벤트는 한 시대적 맥락과 담론의 질서와 행정적 한계 속에 속박되어 큐레이터의 디자인, 수집가의 성향, 국가의 정치적 욕망, 젠더화된 매체, 사회적 위계, 복원 기술의 발전, 제도 속 윤리가 복잡다단하게 교차하며 미술의 의미를 끊임없이 재조정하는 공간이다.


이런 큰 맥락을 고려하면 개별 전시는 커넥팅 닷이고 개인적 경험으로 성취한 그 점들을 연결하면 무엇이 예술로 남고, 무엇이 주변부로 밀려났는가라는 유행의 심해를 추적할 수 있는 구성주의적 지도를 만들어볼 수도 있겠다. 자신이 다닌 공간과 자신이 본 작품으로 자신만의 학습 지도를 구성한다는 뜻이다. 학점으로 평가받을 필요도, 우열을 가릴 필요도 없는 지금 내가 이해한 바대로의 나만의 지적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다.


뉴요커, 뉴욕리뷰오브북스, 뉴욕타임즈.. 너무 뉴욕뉴욕으로 치중되긴 했지만 나는 이 세 매체를 좋아한다. 접근방식과 영어표현에서 배울 점이 많다. 매 번 내가 감탄하고 좋아한 부분을 한글로 다시 바꿔서 시간을 들여 글을 쓰는 것은 품이 많이 들어 귀찮아 잘 안 하긴 하지만..


예컨대 이런 표현은 참 좋다.


3문단의 a nonstop flurry of experimentation and innovation(숨 돌릴 틈 없이 이어진 실험과 혁신의 소용돌이)


그리고 6문단의 Textiles chafe against our default notions of museum-quality art(텍스타일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뮤지엄급 예술’의 기준을 불편하게 긁는다)


1번은 쉬운 어휘로 시지각적 느낌을 잘 부여했고 4문단은 chafe against라는 영문학에만 보이고 존재한다는 것은 아는데 영어시험에는 잘 등장하지 않는 동사가 추상적 문장을 감각적으로 표현해 맛있는 양념을 친 것 같다.


그림: Hubert Robert: Design for the Grande Galerie in the Louvre, 1796


https://substack.nybooks.com/p/museumgoing?source=que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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