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마음을 휘어 잡은 동화를 쓴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는 심정은 어떠할까
다른 방식으로 감동을 준 대작이 나올 것인가
사정 없이 낙담시킬 태작이 나올 것인가
자연스럽지만 부담스럽기는 매한가지인 독자의 기대에 대해 작가는 어떤 방식으로 차기작을 빚어나갈 것인가?
후속작을 구상하는 저자가 반드시 직면해야하는 이런 4년간의 고민의 끝에 <나나 올리브에게>를 선보인 루리 작가는 <긴긴밤>의 의인화된 동물 드라마라는 설정을 이어가기 보단 전달하고자는 감정에 집중하고 전쟁이라는 보편적 의제와 이국적 이름 <아야>를 더해 스타일의 연속성과 글로벌 의제접속이라는 두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냈다고 생각한다.
차기작이 성공한 경우는 예를 들어 이런 작품이 있다. <토이스토리>처럼 오랜만에 시리즈 리부트를 하며 그리운 유년시절에 대한 회고적 감정을 잘 묘사해 긍정적인 반응을 얻는 경우, 그리고
<스파이더맨>처럼 전혀 다른 스타일과 주인공으로 재해석하되 청소년 히어로의 일탈과 구원, 도시 비행 스타일을 잘 유지하는 경우가 있다.
나나 올리브는 이렇게 다음 세대에 바톤을 잘 넘긴 작품의 좋은 점을 모두 받아(회고적 감정, 연속된 스타일의 재해석) 릴레이의 효시를 알렸다. 하여, 작가의 세 번째 작품도 기대된다.
다음 작품을 쓰려는 사람들은 여러가지 전술이 있겠다. 르포 작가처럼 이론과 접근 방식은 그대로 두고 소재를 다르게 할 수도 있다. 양적방법론으로 논문을 쓰는 학자처럼 테크닉과 글쓰기 형식에 숙달이 되면 케이스의 종류만큼 많은 글을 양산할 수 있는 방법이다.
또한, 해리포터처럼 3권까지는 어휘, 문법, 주제 등에서 아동용 도서임을 표방하다가 자신의 책을 읽으며 성장하는 88-95년생 세대에 집중해 4권부터는 GRE수준 어휘, 라틴어 기반 분사구문 활용, 풍부한 영문학 표현, 방황과 정체성 고민이라는 딥한 서사를 넣으며 전혀 분위기를 다르게 가져가는 경우도 있다. 동반 성장 모델이다.
반대로 호주의 앤디와 테리 아동도서작가처럼 거의 매년 13층씩 증축하는 트리하우스 시리즈를 출간하며 창의적 설정을 다변화하고 발랄한 문체와 그림체, 어휘는 그대로 유지해 성장하는 독자는 암묵적으로 졸업시키고 새로운 아이들을 독자로 섭외하는 경우도 있다. 설정 유지 존버 전술이다.
아니면 한강 작가처럼 한국에 대한 개인적 이야기를 썼는데 영국에서 번역되며 고립, 신체, 여성이라는 사회적 의제와 접속이 되거나, 폴란드에서 번역이 되며 전쟁체험이라는 구체적이면서 보편적 아제다와 맞닿아 반향을 얻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한국의 대저택에서 일어나는 약자와 더 약자의 밥그릇 다툼이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해석으로 받아들여 칸느와 오스카상을 동시에 수상한 봉준호처럼 가장 개인적 것이 가장 창의적이고, 나아가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는 경우다.
물론 이때 너무 개인적이지 않으면서 보편을 추구하는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가도 있다. 고유명사만 빼면 초국적으로 읽힌다. 루리 작가는 앞서 언급한 모든 참고 가능한 롤모델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루리 작가의 <긴긴밤>은 의인화된 동물 페르소나, <나나 올리브에게>는 할머니, 군인, 강아지라는 보편적 설정에 기반해 번역되었을 때 글로벌 어디서든 어필하기 좋아 보인다. 문장 역시 번역하기 좋은 깔끔하고 쉬운 문장이지만 허투루쓴 문장이 없다. 건반 하나 한 음 한 음 소중히 대한다고 케이팝 스타에서 이진아 뮤지션에 대해 평한 박진영의 평이 생각나는 문장이다.
또한 작품에서는 이러한 명작의 향기가 난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35)>의 아이 시점과 나레이션 문체
<우동 한 그릇(一杯のかけそば, 1992)>의 따뜻함과 주제
<괭이부리말 아이들(2000)>의 가족-됨과 비극
<마당을 나온 암탉(2000)>의 깨달음과 우화
그래서 나는 루리 작가가 귀인을 만나고 때를 잘 만나 언젠가 세계적인 아동 작가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원타임 원더로 끝나지 않고 다음 작을 내어 무엇을 더 할 수 있을지 고민의 흔적과 역량을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K-아동문학 작가의 탄생을 독자 제현에게 알린다.
훗날, 아니 지금에라도
아동은 어른의 미니어쳐가 아니라 그 자체로 완성되어 개별적으로 대접받아야 할 존재라는 주제의식을 널리 알리고
어른도 읽는 아동문학이라는 전세계 모은 아동문학작가의 문제의식을 공유하여
K-아동문학의 한 획을 긋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필요한 것은 에이전시 정도. 상황과 기반 정도.
작품에 대한 스포는 쓰지 않는다. 그저 188페이지의 단 네 글자와 그 다음 페이지 190페이지의 삽화의 진한 울림이 있다는 점만 짚고 싶다.
이 클라이맥스를 위한 180여 페이지였다고 생각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페이지를 읽는 시간만큼 네 글자에 머물러 있게 된다.
누구나 쉽게 읽는 아동문학이다. 누구나 쓸 법한 일반적인 문장이다. 누구나 말할 법한 평범한 말이다.
그러나 그 쉽고 일반적이고 평범한 말이 갖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여운을 제대로 드러내 온전히 대접할 수 있기에
루리 작가는 아동문학 작가라고, K-아동문학 작가가 될 것이라고 내다 볼 수 있으리라

이런 구도의 강아지 그림은 누구나 좋아하고 누구나 봤고 누구나 생각 가능한데도 돌이켜보면 그림으로 그려진 작품으로서는 별로 본 적 없다. 일상의 기적을 포착하는 작가의 능력을 시각적으로 증명하는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