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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미술관에서 외국어 공부하기
압둘라작 구르나의 그 후의 삶 읽었다. 2021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다. 우리말로 번역이 되어있으나 원서도 그렇게 어려운 영어가 아니고 오히려 처연한 글맛을 더 느낄 수 있다. 가디언지의 축사 리베팅(눈을 못 떼게 하는)은 남용되고 오염된 마케팅 용어지만 이번만큼은 적절히 사용되었다고 인정할 수 있다.

저자는 동아프리카 잔지바르 술탄국 출신으로 켄트대 문학박사 식민지문학 교수다.

칼리파, 라마단 등 이슬람 용어가 등장하는데 고유명사만 보면 언뜻 아프가니탄을 배경으로 한 칼리드 호세이니의 연을 쫓는 아이와 비슷한 인상이다. 두 소설은 폭력적 제국주의에서의 성장서사에 상처와 속죄, 정체성의 재구성을 다루었다는 점이 비슷하다.

왕정 붕괴, 소비에트 침공, 탈레반 통치라는 급변하는 아프가니스탄 현대사에서 소년이 죄책감에 맞서 자기 삶을 회복하는 이야기와
20세기 초 독일 식민지 시대 동아프리카에서 식민군 징집에 맞서 자기 삶의 서사를 빼앗겼다 되찾으려는
두 이야기의 얼개는 비슷하다

그러나 다른 점은 서사의 중심 감정과 배신의 구조, 폭력의 성격에 있다.

연을 쫓는 아이는 아미르의 침묵과 배신 이후 평생 따라다니는 죄책감, 그리고 아이 구조라는 속죄가 핵심 플롯이다. 관계에서 상처를 받은 개인의 심리적 여정이 중심축으로 가정이나 공동체 내부의 폭력을 다룬다. 계급, 민족 감정, 친밀한 배신 같은.

반면 Afterlives에선 개인적 배신이 아니라 구조적 배신이다. 식민 권력은 토착민 청년들을 이용하고 폐기한다. 등장인물 각각은 폭력적 질서에 동화되었다가 거리를 두고, 결국 잃어버린 자기 삶을 찾고 다시 쓰려한다. 상실과 역사회복을 염두에 둔 속죄다. 전쟁과 수탈구조 등 구조적 폭력을 통과한 공동체가 겪는 후유증과 기억의 정치학에 대한 이야기다.

잘못된 세계 속에서 어떻게 인간다움을 회복할까?
개인적 죄책감이 회복되는 서사를 찬찬히 따라갈까 아니면 역사의 상흔을 절제된 관찰자적 시각에서 바라볼까? 전자는 윤리적 메시지가 명확하고 후자는 천천히 스며드는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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