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can-foundation.org/archives/exhibition/%ec%84%a0%ed%8c%85%ec%98%a4%ec%9d%bc-suntint-oil
이태원 언덕길 고급주택가 사이에 위치해있는 캔파운데이션에 다녀왔다. 선팅오일이라는 제목으로 이진형과 조효리 2인전을 하고있다. 들어가는 길목은 북미 상점가처럼 느껴진다.

태양(썬)과 착색(틴트)의 합성어인 썬팅은 콩글리시로 영어권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표현이다. 차량유리의 자외선 차단필름을 지칭하는 이 어색한 조합은 본래 존재하지 않는 언어로서 이질적인 두 감각을 상징하며 태양의 직사광선과 틴트의 차단, 즉, 외부의 에너지를 가리면서 동시에 내부에서 밖을 볼 수 있도록 투명해야하는 불가능한 공존을 의미한다.
뒤틀린 조합은 우리가 세상을 언어로 포착하는 방식과 실제 지각 사이의 어긋남을 드러내는 재밌는 예시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언어적 일탈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림이 단순히 대상을 재현하는 수단을 넘어서서 감각을 조정하고 현실 인식을 전환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썬이라는 외부 자극은 걸러내고 동시에 원하는 시지각은 통과시키는 반투명한 막, 틴트는 전시에서 어떻게 나타났는가?

두 상반된 속성의 중간지대에서 감각이 잠시 정지했다가 흘러가는 순간을 포착하기도, 서서히 번져가며 자취를 남기는 점성물질을 보여주기도, 지평선이 서로 다른 시간대의 회화표면에 공존하는 순간을 보여주기도 하면서 불가능의 동시성을 드러냈다.
이진형 작가는 이미지가 전달하는 메시지보다 그것이 인식되는 방식에 더 초점을 둔다. 내용보다 접근법이다. 작가가 수집한 시각자료는 디지털매체에서 발생하는 불완전함을 드러내는데, 크기 조절과 해상도의 흔들림, 형태의 왜곡을 반복하며 실험한다. 그의 이미지는 즉각적으로 해석되지 않고 찬찬히 볼 때만 서서히 의미를 드러내는 시각적 단서들이다. 작가는 일련의 이미지를 해체하거나 병치하거나 새롭게 재조합하는데, 이러한 구성은 시지각의 구조 자체에 대한 창조적 실험이며, 보는 행위를 탐구하는 과제이다. 이러한 그의 작업에서 회화는 대상을 복제하는 매체가 아니라 감각의 리듬을 조율하는 시각적 언어로 정초된다. 화면은 안료가 덧입혀지는 평면에 머무르지 않고 시각적 정보가 가라앉거나 떠오르는 깊이감 있는 필드로 외연이 확장된다. 이 과정에서 보는 이는 시선을 고정하지 않고 분산시키게 되며, 이미지에 몰입하기보다 그 가장자리에서 미끄러지는 듯한 경험을 하게된다. 하여, 작가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보는가보다,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자각한다.

조효리 작가는 시간과 공간의 흐름 속에서 감각의 움직임을 재조립한다. 3D 시뮬레이션으로 활용해서 가상구조를 평면이나 입체로 전환시킴으로서 허상과 실재가 뒤섞이고 내부와 외부 그리고 정과 동이 동시에 존재하는 장면을 만들어낸다. 작품은 유리 표면, 반사된 이미지, 불분명한 경계 등이 특징인데, 감정의 여운이 잠시 머물렀다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다. 다양한 감각적 층위 위에 부유하면서 따라가고, 문득 자신의 기억과 상상을 겹쳐보게된다. 하여, 보는 이는 무엇을 보는가, 보다는 어떤 존재로서 바라보는가라는 화두에 천착하게 된다.

선팅오일전은 두 작가의 작업세계에 익숙한 이들과 새로 보는 이들 모두에게 새롭게 맥락화된 시각적 경험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처음 보는 이들은 각각의 회화세계로 들어서는 관문이 될테다. 이 전시는 보는 이가 그림을 매개로 어떤 감정을 어떻게 느끼는지, 시선이 어떻게 머물렀다가 흘러가는지, 혹은 나는 어떤 존재로서 그림을 바라보는지 등, 각기 다른 생각에 침잠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보는 이는 각자의 속도와 감각으로 작품에 응답하게 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미 전시는 끝났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