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의 중림동 약현성당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에 다녀왔다
가톨릭의 중후하고 차분한 분위기는 적벽돌 건축으로 완성된다.
새문안교회 순복음교회 소망교회 같은 개신교 건물에는 발랄한 락밴드와 가운입은 합창단이 묘하게 습합되어 있어 젊고 현대적 분위기를 풍긴다면 가톨릭 성당은 나이듦과 죽음과 노화와 부질없음을 사유하기에 알맞은 깊고 짙은 심층수와 같은 공간이다.
G플랫으로 떨어지며 성스럽고 숭고한 고양감을 주는 그레고리안 찬송을 배경으로 박물관 내부는 편안하고 평화롭다. 색면추상의 레이어가 한꺼풀씩 쌓여 적층수와 같이 고즈넉한 맛을 준다. 물론 그러한 평화는 교회법의 엄수와 엄격한 위계에서 비롯되는 질서이기도 하다. 마치 성가의 완벽한 화음이 수학적 비례에 기반하는 것처럼.
천주교는 보수라는 이미지가 있으나 프로테스탄트처럼 어의 그대로 항의하는 자였던 시절이 있다. 19세기 박해시절 핍박에 항거했던 혁명적인 나날이다. 그 모진 고문 속에 숨을 거두어간 핏빛 순교자가 묻힌 곳이 이 서소문이다. 하여 이 공간은 태생적으로 어두운 공간일 수밖에 없으나 미국호러처럼 선혈이 낭자하는 위협적인 공포가 아니라 주님의품에서 모든 것을 안아주는 거대한 심연 같은 흑암이다. 무덤 속의 적막과 같은 것이다.
중세교회가 묘지를 품고 지하에 유골을 안치하게된 역사적 맥락에는 중세인들의 악령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원인모를 병과 끝없는 전쟁으로 죽어간 영혼들의 소름끼치는 절규가 밤마다 들린다고 호소하는 중세인들은 성직자들이 그 영혼을 교회 아래서 구제하고 벽사해줄 것이라 믿었다.
이런 맥락에서 개신교 교회는 무덤이 빌트인 되어있지 않고 천주교 성당만 무덤과 함께 하는 전통이 이어졌다. 같은 예수 그리스도 구원자를 믿는 종교지만 가톨릭 건물에서만 죽음에 사후세계에대한 선연한 위안이 느껴지며 생로병사를 고민하는 50대 이상 어머니들의 존재가 많이 보인다. 어떤 의미에서 개신교는 되려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는 유교의 철저한 현세관과 기복신앙적 요소가 더 많이 보인다.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은 김대건 성인과 함께 같은 장소에서 애프터 라이프를 생각해보기 좋다. 쿠오 바디스,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 많던 성인들은 신자들은 어디로 갔는가
처마처럼 콘크리트 외벽 선이 떨어지며 지하로 하강하는 듯한 걸음을 유도하는 1층 입구를 지나 박물관 시설은 지하1,2,3층에 있다. 무덤과 같은 높이다. 우연이 아니다.

오늘 온 이유가 있다. 건축 공간 디자인 학회를 하고 있어서다. 학회의 주제를 보고 있으면 그 시대의 흐름을 읽기 좋다. 아무래도 젊은 학생들과 호흡하며 미래를 고민하는 학자들이가에 시대변화에 민감할 수 밖에 없다. 올해 춘계 한국공간디자인학회에서는 브랜드디자인, 노후공간, 공유스페이스가 눈에 띈다. 상업주의, 고령화, 청년실업과 같은 시대정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나 특이한 것은 크루즈 디자인인데 건축공간을 정주공간뿐 아니라 노마드공간까지 포함하여 외연을 확장한 것으로 보인다. 재밌는 인사이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