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을 다닐 때 내 전공은 아닌데 우연히 기회가 되어 미술사 수업을 들었다. 학부수업도 대학원수업도. 어느 유명 교수님과 함께 전국을 돌아다니며 미술관 박물관 명승지를 다녔다. 교수님은 따로 아무 설명도 안했다. 그런 교조적이지 않은 태도가 참 좋았다. 선생님은 그냥 기회를 주었고 함께 하셨고 학생들은 천둥벌거숭이처럼 알아서 돌아다녔다. 그때 나는 비로소 미술관에서 보면서 논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왜 그런 기회가 그때 내 앞에 주어졌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때론 인생에서 홀린 것처럼 하게 되는 일들이 있다. 보물처럼 선물처럼 주어지는 기회가 있고 그 기회를 추수했을 뿐이다. 추수하는 것도 운이다. 그러다가 미국 수능이라고 할 수 있는 AP 미술사를 가르치는 기회가 있었고 미국 교사들과 전문 교수워크샵 과정을 이수하고 나서 칭찬도 받고 하면서 왜 선진국에서 미술사를 가르치는지, 왜 유럽 미국인과 각 나라의 엘리트들이 그렇게 미술관 박물관을 많이 가는지 깨달음이 생겼다. 책을 쓰고 싶어졌다.
당장 먹고 사는데 도움도 돈도 안되는 미술, 이해도 안되는 미술을 그렇게 보러 다녀서 무슨 소용있는가? 그것이 선진국의 연습문제이기 때문이다. 부유한 일부를 위한 미술인 것 같지만, 대부분 선진국에서는 미술관 박물관 방문 티켓 가격이 가장 낮다. 그림을 소유하는 게 아니고, '보는 것'이라면 가난해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왜 그렇게 허들을 낮추는가? 미술관 박물관이 시민교육의 이상향이기 때문이다. 미술관 박물관에서 사람들은 창의성을 기르고 뇌훈련을 하고 사고의 업그레이드을 한다. 그렇기에 무료이거나 티켓이 싼 미술관 박물관이 많다. 상하이 미술관도 무료이고 The Met, 테이트, 내셔널갤러리도 국립현대미술관.. 모두 그렇게 비싼 것은 아니다. 콘서트 티켓이 오히려 훨씬 비싸다. 태국에서는 케이팝 콘서트 티켓 하나가 월급과 맞먹는다고 하는데 누구도 아이돌 콘서트를 엘리트 문화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왜 미술은 엘리트의 전유물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는가? 실제로는 가장 허들이 낮은데, 사실 모든 시민을 위한 예술인데.
화가여야만 미술작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술전문가여야만 미술관에 가는 것이 아니다. 과학자도 미술작품을 보면서 영감을 얻는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미술안료의 화학성분 분석 같은 것인가? 얼굴의 골상 분석? 아니다. 그런 전문지식을 얻는게 아니라 더 큰 메타적 인식방법에 가깝다. 사물을 보는 시각을 배우는 것이다. 미술작품을 예제로 상상과 창의를 연습하는 것이다. 과학자의 역할은 결과물만 보고 그 과정을 가설을 거쳐 복원해내는 것이다. 미술작품도 화가가 그린 결과물만 보고 그의 의도가 무엇인지, 전시회의 배치만 보고 전시를 기획한 학예사의 생각이 무엇인지 출제자의 의도를 하나씩 톺아보는 생각의 훈련을 한다.
유투브를 통해 무슨 돈을 번다고? 하면서 콧방귀던 시절이 불과 10년 전이다. 20년 전 굴지의 케이팝 기획사 초창기에는 딴따라가 어떻게 돈을 버는지, 영화쟁이가 굶지 않고나 살 수는 있는지 비웃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제는 누구나 그들의 작업에 함께하고 싶어하고 자신의 돈을 그 업계 주식에 투자하고 싶어한다. 문화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멀리는 외국의 잘 나가는 작품을 학습하고 서로 서로 참조해가면서 업계를 성장시켰는데, 정말 아무 것도 없던 맨땅에 헤딩하면서 성장시킨 것이다. 예외적인 개인, 신데렐라, 메시아에 가깝다. 선진국은 그 저변이 넓다. 선수가 될 사람만 스포츠 하는게 아니라 생활체육의 저변이 넓고, 콩쿠르에서 이기기 위한 음악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들 음악을 조금씩 하면서 삶의 질이 향상되는 소소한 행복을 느낀다. 미술관 박물관에서 배우는 연습문제.
사실 예술은 본래 부질 없는 것이다. 먹고 사는데 관련없다. 그러나 부질 없는 예술이 바로 선진국으로 진입한 단계에서 자연스럽게 나온다. 모두가 새마을운동하면서 으쌰으쌰 조국은 건설하던 시기에는 예술은 사치라는 국민적 합의같은 것이 있었던 모양이다. 당장 내일의 끼니를 굶고 깨끗한 물과 더위와 추위를 막을 집을 고민해야하는 상황에서 예술은 당장의 고민은 아니다. 그러나 그 고민에서 상당히 많은 인구가 벗어나게 되고(가난을 완전히 박멸할 수는 없으니까) 등따숩고 배부르게 된 오늘날에서 한국은 예술을 고민해야한다. 바로 그 문화가 우리의 부와 평화를 지속가능하게 해줄 것이고 부가가치를 올려줄 것이고, 김구가 그리던 문화의 힘을 세계에 떨치게 해줄 것이다. 예술과 문화는 선진국이 된 오늘날 한국의 화두이다. 그러나 누구도 어떻게 예술과 문화를 익히고 배워야할지 알려준 적이 없다. 그러니 이제 선진국의 시민들이 미술관 박물관에서 무엇을 감상하고 배우고 그 인사이트가 그들에게 어떻게 활용되는지 조금 생각해보자. 배부르고 먹고 살만하게 되었으니 이제 다음 세대는 문화와 예술을 배워보자. 쓸데없는 것을 배우고 익히자. 주변에는 쓸데없는 것들 하는 사람들 투성이다. 피규어 만드는 사람 게임 하는 사람... 그 쓸데없는 짓을 하는 사람들 중에 연봉 5-70억원인 페이커도 나오고 원피스 피규어 만들어 천만원에 파는 사람도 있다.
예술만 쓸데 없나. 교육도 그렇다. 쓸데 없고 부질 없다. 고등학생 눈에 구구단 배우는 학생이 얼마나 한심해보일까. 프로 선수의 눈에 초급반 학생의 움직임이 얼마나 한심해보일까. 그러나 모든 학습자는 자신만의 엄청난 분투를 하고 있다. 고귀하지 않은 학습은 없다. 누군가에게 한심하게 쉬운 내용이 누군가에게는 뇌가 쫄깃할 정도로 큰 에너지를 사용하는 부담스러운 내용이다. 그러나 누가 교육이 쓸데 없다고 하지 말라고 하는가.
대학 교수의 눈에 초등학교 교사가 가르치는 내용은 지나치게 쉬워보일 수 있다. 그러나 초등학교의 본분은 전문지식 학습이 아니다. 훌륭한 초등교사는 학생들에게 맞고 틀리는 것을 지적하는 사람이 아니라, 북돋고 자신감을 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사회에는 초등 교육을 가르칠 사람이 가장 많이 필요하다. 어떤 의미에서 미술사학자는 영관급, 도슨트는 소위 중위 등 초급장교라고 할 수 있겠다. 미술사학자는 전문가로서 그 나름의 본분이 있다. 누군가는 평생 반 고흐의 작품만 연구해야한다. 최근에는 미발견 작품이 6400억원에 팔렸는데 온갖 복원, 감식 전문가가 있어야 작품의 진위를 판명할 수 있다. 고독한 학문의 길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누군가는 디테일에 민감한 사람이 되어 평생 기와, 꼭두, 칠기, 탱화를 연구해야만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미술사학자가 되기 위해 미술관을 가고 미술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처럼 도슨트의 숫자가 학자보다는 훨씬 더 많이 필요할 수 있다. 훌륭한 도슨트가 많아지면 미술작품을 향유하는 계층의 저변이 넓어질 것이다. 사람 만나기 좋아하고 이 작품 저 작품 다양한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은 도슨트가 되어 매번 다른 계층의 사람들을 만나며 미술작품에 담긴 재미난 스토리를 들려주게 될 것이다.
나는 그 둘 중 어느 것도 아니다. 나의 관심은 선진국 사람들은 왜 미술관 박물관을 그렇게 자주가는가? 그들은 무엇을 보고 느끼는가? 좋은 미술관 박물관의 설명들은 우리를 어떻게 고양시키는가? 그러한 인사이트들은 우리를 어떤 넥스트레벨로 데려다주는가? 에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최신의 전시를 빠르게 취재하고 알맞은 형태로 재가공하는 데 있다.
박사가 되면 논문을 쓰고 자신만의 전문분야를 갖게 되고 아주 세밀한 자기 전공에 도덕적인 윤리적인 책임을 지게 된다. 나는 그정도까지 하나만 파는 성격은 아니었다. 아무리 도슨트라고 해도 하나의 전시에 매여있게 된다. 나는 이 전시도 저 전시도 다 관심있었다. 새로 신메뉴가 나오면 먼저 먹어보고, 새로 영화가 나오면 꼭 챙겨보고 새로 전시를 하면 꼭 가보는 내 라이프스타일에 가장 맞는 것은 어쩌면 작가가 조금 더 가깝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롤모델이 많지 않았다. 오래 전의 롤모델, 고희동 같은 평론가, 외국의 롤모델, 전문적으로 미술 전시를 가고 리뷰하는 사람들, 더 뉴욕커, 뉴욕타임즈, Best American Food/Travel Writing같은 저널리스트들의 글을 많이 참조했다. 최종적으로 닮고 싶은 글은 Laurie Schneider Adams와 Dr.Beth Harris이다. Laurie Adams는 르네상스-19세기 서양미술에 관해 해박한 지식과 유려한 글솜씨를 자랑하는 교수로, 별로 중요하지 않는 잡지식을 자랑하지도 않고 너무 전문적인 역사용어로 압도하지 않고 전달한다. 25만원에 산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책은 가격이 전혀 아깝지 않다. 조금 더 가성비 있는 만8천원짜리 19세기 서양미술 교양서는 몇 번이고 읽어도 간결한 학술영어의 매력이 살아있다.
원래 쓰고 싶은 글이 있었다. 그 글의 내용은 비밀. 캐나다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한 사람이 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고 편집자를 하고 싶다고 했고 외국에서 먼저 출판을 하려고 했지만, 외국 출판사에서 무명작가가, 그것도 논네이티브 잉글리시 스피커가 책을 출판하는 것은 너무 쉽지 않다고 하였고, 오히려 한국에서 먼저 출판해서 출판시장에서 조금씩 네임밸류를 올려야한다는 데 서로 동의를 했다. 동아시아인이 동아시아를 다루는데 동아시아에서 먼저 출판하는 게 외국출판사들에게도 더 설득력이 있겠지. 그래서 일단 영어로 쓰던 글은 잠시 멈추고 2023년부터는 이 책을 쓰려고 지난 1년간 한국, 일본, 대만, 홍콩 미술관 박물관을 다녔고 이제 자료는 충분히 모으고 어떻게 쓸지 구상이 끝났다.
이제 매일 쓰면 된다. 일간 발행! '미술관에서 외국어 공부하기'를 매일 써서 알라딘에 올리고 편집해서 책으로만 만들면 된다.
미술작품을 보는 방법을 캡션을 통해 외국어 비교 설명하는 방식으로.
미술관 박물관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어떻게 읽는지 공유하는 글을 퍼블리시한다.
미술관 박물관에서 외국어 공부하기 -
이과에게 수학문제가 있다면 문과에게는 예술작품이 있다!
수학자가 될 것도 아닌데 왜 이과는 수학문제를 그렇게 열심히 풀까? 과학분야에서 필요한 논리적 사고과정을 연습하기 위해서. 그렇다면 문과는 무엇을 통해 연습해야하나? 그 연습문제는 바로 미술관 박물관에 있다.
왜 화가도 아닌데 미술사학자도 아닌데 선진국에서는 그렇게 미술관 박물관을 많이 갈까?
미술사학여자여만 관련분야 전공자여만 미술을 감상할 수 있을까?
미술관 박물관을 습관적으로 다니는 유럽인, 미국인들은 무엇을 보는 것일까?
미국의 수능 AP 미술사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패스트 팔로어에서 퍼스트 무버가 되려는 한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반드시 배워야하는 것은 크리에이터를 위한 미술감상교육
선진국 22세기형 창의형 인재는 미술작품을 감상하는데서 탄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