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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광선님의 서재
  • 자아 연출의 사회학
  • 어빙 고프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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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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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1982.11.19 위암으로 투병하다 사망한 친구 어빙 고프만에게 바치는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추모사이다..


Erving Goffman, Discoverer of the Infinitely Small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 무한히 작은 것의 발견자


Pierre Bourdieu(피에르 부르디외)


  The work of Erving Goffman is the product of one of the most original and rarest methods of doing sociology - for example, putting on a doctor's white coat, in order to enter a psychiatric asylum and thus place oneself at the very site of the infinity of minute interactions which combine to make up social life.

  어빙 고프만의 작업은 사회학을 수행하는 가장 독창적이고 드문 방법의 결과물 중 하나다(예를 들면 정신 병원 수용소에 들어가고, 그럼으로써 사회 생활을 구성하는 미세한 상호 작용의 무한한 현장에 스스로를 위치지우기 위해 의사의 흰 가운을 입는 것).


  This unusual oeuvre, which cannot be defined in terms of technique or specific populations is in fact the visible record of a gaze which sought to grasp (as photography does, according to Walter Benjamin) the most fleeting and elusive, and very often the most decisive, aspects of social existence, such as the furtive strategies that are engaged in the most banal and therefore least observed moments of ordinary life. Each book by this explorer of the everyday adds new objects to the sociologically unknown universe; the most significant situations of the ordinary world - the prudent banalities that pass between two strangers in the train - present themselves in a new light. The social world becomes what it also is: a theatre. And then one can set about extracting the invariant forms that give constancy and meaning to everyday interactions: for example, the tactics of bluff, or all the strategies made possible by the opposition between the limelight and the backstage workshop.

  테크닉이나 특정 집단의 관점에서 정의될 수 없는 이 특이한 작품들은 마치 일상 생활의 가장 진부하고 따라서 가장 관찰되기 어려운 순간에 관여하는 은밀한 전략들처럼, 사실상 사회적 존재의 가장 덧없고 파악하기 어렵고 종종 가장 결정적인 측면을 파악하려는(발터 벤야민에 따르면 사진이 그러하듯) 그러한 시선이 드러내는 가시적 기록이다. 이 일상 탐험가의 각각의 책은 사회학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세계에 새로운 대상들을 추가하고, 평범한 세계에서 가장 의미 있는 상황들(이를테면 기차 안에서 낯선 두 사람 사이를 지나쳐 가는 신중한 사소함들)이 새로운 시각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사회 세계는 그 자체로 하나의 공연장이 된다. 그런 다음 우리는 일상적인 상호작용에 일관성과 의미를 부여하는 불변의 형식들을 추출해낼 수 있다. 예를 들어,무대 위와 무대 뒤 작업장 사이의 대립으로 인해 가능해진 허세의 전술이나 모든 전략들을 말이다.


  Goffman's achievement was that he Introduced sociology to the infinitely small, to the things which the object-less theoreticians and concept-less observers were incapable of seeing and which went unremarked because they were too obvious, like everything which goes without saying. These entomologist's minutiae were bound to disconcert, even shock, an establishment accustomed to surveying the social world from a more distant and more lofty standpoint. The guardians of positivist dogmatism assigned Goffman to the "lunatic fringe" of sociology, among the eccentrics who shunned the rlgours of science and preferred the soft option of philosophical meditation or literary description; but he has now become one of the fundamental references for sociologists, and also for psychologists, social psychologists and soclo-linguists (I am thinking particularly of his last book, Forms of Talk, 1981).

  고프만의 업적은 대상 없는 이론가들과 개념 없는 관찰자들이 볼 수 없었던 것들, 아무 말 없이 지나가는 모든 것들이 그렇듯이 너무 당연해서 주목받지 못했던, 그런 것들에 이르기까지 무한히 작은 것들에 사회학을 도입했다는 점이다. 이러한 곤충학자와 같은 세세한 관찰은 더 멀고 고상한 관점에서 사회 세계를 조사하는 데 익숙한 학계를 당혹스럽게 하고 심지어 충격에 빠뜨릴 수밖에 없었다. 실증주의적 독단주의(positivist dogmatism)의 수호자들은 과학의 엄밀함을 기피하고 철학적 성찰이나 문학적 기술이라는 무난한 선택을 선호하는 괴짜들에 둘러싸인 사회학의 "미치광이 소수파(lunatic fringe)"라는 명칭을 고프만에게 부여했었지만, 이제 그는 사회학자는 물론 심리학자, 사회심리학자, 사회언어학자들(나는 특히 그의 마지막 책, 『담화의 형식들(Forms of Talk)』(1981)을 생각하고 있다)의 중요한 레퍼런스 중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다.


  But perhaps special mention should be made of the book which Goffman devoted to "total institutions", Asylums (1961). It is probably his most Important work, and stands quite apart among his writings. Through a comparative study ot barracks, convents, asylums, prisons, and even concentration camps, he endeavours to show that institutions which differ greatly in their declared purposes show striking similarities in their actual functioning. These closed worlds, which the outsider is only allowed to enter after being stripped of everything which constitutes his social identity, subject the newcomer to a restructuring process which, in the case of the lunatic asylum, is called "asylumization". In the process of producing a "new man" attuned to the demands of the institution, the language of the Institution, that of psychiatry for example, has a decisive weight. It Is understandable that Goffman's model should have appealed to all those who have tried to understand the phenomena of indoctrination and religious or political conversion; and that, with a few friends, he should have conceived the project of writing an ethical manifesto against the abuses of social science.

  하지만 고프만이 '전체주의적 기관(total institutions)'에 대해 다룬 책인 『수용소(Asylums)』(1961)를 특별히 언급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아마도 그의 가장 중요한 저서일 것이며, 그의 저서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책이다. 병영, 수녀원, 정신병원, 교도소, 나아가 강제수용소에 대한 비교 연구를 통해, 그는 명시된 목적이 크게 다른 이 기관들이 그들의 현실적 기능에 있어선 놀라운 유사성을 보인다는 점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했다. 외부인이 자신의 사회적 정체성을 구성하는 모든 것을 박탈당한 후에야 들어갈 수 있는 이 폐쇄된 세계는 신참자로 하여금 정신병원 수용소의 경우 '망명화(asylumization)'라고 불리는 재구조화 과정을 거치도록 한다. 기관의 요구에 적합한 '새로운 인간'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기관의 언어, 예를 들면 정신 의학의 언어가 결정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고프만의 모델은 분명 사상주입(indoctrination), 종교적 또는 정치적 개종 현상을 이해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어필했을 것이며, 그는 (살아있다면)몇몇 친구들과 함께 사회과학의 남용에 반대하는 윤리적 선언문을 작성하는 프로젝트를 구상했을 것이다.


  If this meticulous student of the real knew so well how to observe it was because he knew what he was looking for. A pupil of Everett C. Hughes, one of the great masters of American sociology, he was able to draw on the strengths of the Chicago school - and especially the work of G. H. Mead and C. H. Cooley, to whom he constantly makes reference - and everything which that centre of scientific professionalism has accumulated or assimilated, whether it be the work of the Durkheimians or the formal sociology of Simmel. Equipped with all this expertise to which he added games theory, he scrutinised phenomena that had previously lain outside the scientific field of vision. Through the subtlest, most fugitive indices of social Interaction, he grasped the logic of the work of representation; that is to say, the whole set of strategies with which social subjects strive to construct their identity, to shape their social image, in a word, to produce a show. He regarded social subjects as actors who put on a performance and who, through a more or less sustained mise-en-scène, endeavour to show themselves off in the best light.

  이 세심한 현실의 연구자가 관찰하는 법을 잘 알고 있었다면, 그것은 그가 자신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학의 대가 중 한 명인 에버렛 휴즈(Everett C. Hughes)의 제자였던 그는 시카고 학파, 특히 그가 끊임없이 참고하는 조지 허버트 미드(G. H. Mead)와 찰스 호튼 쿨리(C. H. Cooley)의 연구, 그리고 뒤르켐 학파의 작업이나 짐멜(Simmel)의 형식 사회학 등 과학적 프로페셔널리즘의 중심이 축적하거나 동화시켜 온 모든 것의 강점들을 끌어 올 수 있었다. 이러한 모든 전문 지식에 게임 이론까지 더해 장착한 그는 그동안 과학 장의 시야 밖에 있던 현상들을 면밀히 조사했다. 사회적 상호작용의 가장 은밀하고 순간적인 지표들을 통해서 그는 대표/대의 작업(work of representation)의 논리를 파악했다. 즉, 사회적 주체가 자신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사회적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 한 마디로 쇼를 연출하기 위해 분투하는데 사용하는 일련의 전략들을 말이다. 그는 사회적 주체를 공연을 펼치는 배우로 간주했으며, 다소간 일관된 미장센을 통해 자신을 가장 잘 드러내려고 노력하는 배우로 간주했다.


  This vision of the social world, which may have appeared pessimistic, was that of a warm, friendly, modest, considerate man who was perhaps made the more sensitive to the theatricality of social life by his own profound impatience with all the ordinary forms of academic ceremonial and intellectual pomp. 

  아마도 비관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사회세계에 대한 이러한 시선은 아마도 모든 일상적 형식의 아카데믹한 의식절차와 지적 과시를 스스로 견딜 수 없었기에 사회적 삶의 연극성에 더욱 민감했을지도 모르는, 그러한 따뜻하고, 친근하며, 겸손하고, 사려깊은 인간의 것이었다.   



* This is a revised version of a text first published in Le Monde, 4 December 1982. The translation is by Richard Nice.

이 글은 1982년 12월 4일자 르몽드에 처음 게재된 글의 수정번역본이다. 영문번역은 리차드 나이스(Richard Nice)에 의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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