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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현님의 서재

2년간 내 존재의 심연에서는 하나의 욕망, 한 알의 씨앗이 태동해 왔다.
나는 내 내부를 파먹으며 익어 가고 있는 그 씨앗을 내 장부(臟腑)로 느껴 왔다. 씨앗은 자라면서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밖으로 나오려고 내 몸의 벽에 발길질을 시작했다. 내게 그것을 파괴할 용기는 더 이상 없었다. 그럴 수가 없었다. 정신적인 낙태는 시기를 놓친 것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母胎)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
「식물이 똥과 진흙 속에서 어떻게 돋아나고 꽃으로 피어나지요? 조르바, 이렇게 한번 생각해 봐요. 똥과 진흙은 인간이고 꽃은 자유라고.」
조르바가 주먹으로 식탁을 치며 외쳤다. 「그러면 씨앗은? 식물이 싹으로 돋아나려면 씨앗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내장 속에 그런 씨앗을 집어넣은 건 누구지요? 이 씨앗이 친절하고 정직한 곳에서는 왜 꽃을 피우지 못하지요? 왜 피와 더러운 거름을 필요로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의 정열에서 풀려나와 다른 더 고상한 정열의 지배를 받는 것. 그러나 이 역시 예속의 한 형태가 아닌가? 이상을 위하여, 종족을 위하여, 하느님을 위하여 자기를 희생한다? 우리의 지향이 고상할수록 우리가 묶이는 노예의 사슬이 더 길어지는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훨씬 넓은 경기장에서 찧고 까불다가 그 사슬의 한계에 이르지 않은 채 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이 소위 말하는 자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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