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그 어떤 이야기들보다 가장 다정하고 눈부셨어. 두 번 다시 만나지 못 할 이야기였어.
: 프레드릭 배크만, 『나의 친구들』 🌊 (다산북스)
이 책을 만난 건 정말 나에게 특별하다. 모든 책을 만나는 일은 설레고 특별한 일이지만, 이 책에서 만난 특별함은 전과 다르다. 이 책을 만날 수 있어서, 이 책을 지금 이 순간에 만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내가 이 거대한 행운을 아무것도 지불하지 않고 품 가득 안아도 되는 건지 두렵지만 절대 빼앗기고 싶지 않을 만큼 욕심이 생겼다. 이 책을 나만 알고 싶다는 불가능한 욕심이, 이기적인 욕심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고개를 쳐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세상에 내놓은 작가가 열 받을 정도로 부럽고, 대단했다. 그 작가가 쓴 언어로 읽으면, 한글로 옮겨 놓은 이 책을 읽는 것보다 더한 감동이, 아니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을 내 안에 무수히 수놓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언어의 힘을 감히 헤아려 보고 싶다는 욕심이 든 건 처음이었다. 첫 페이지를 넘기고 나서 그대로 다이빙 하듯(나는 다이빙을 하면 어떤 기분인지 전혀 알지 못한다. 해본 적도 없고 앞으로고 할 일이 없을 것이다. 물을 무서워하기도 하고, 튜브가 없으면 절대 물로 들어가지 않는다.) 화가와 요아르, 테드, 알리 그리고 피스케와 루이사가 들려주고 작가가 쓴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아무리 물이 깊어도, 숨이 차도 수면 위로 올라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들과 함께라면 육지보다 바닷속이 더 편하니까.
모든 문장에 밑줄을 긋고 싶을 만큼 문장들이 내 마음에 들었다. 가능하다면 내 마음에 타투로 새기고 싶은 문장들이다. 이런 문장들을 쓴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혼자 상상하건대 화가가 작가와 많이 닮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세상 모든 작가를 존경하지만, 이 작가는 천재라고 생각했다. 화가는 천재니까, 작가도 천재이지 않을까 그냥 내 마음대로 생각해봤다. 작가가 천재가 아니라면 이 작품은 말도 안 된다. 그러니 작가는 천재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문장들이 참 아픈데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진짜로. 추운 겨울에 만난 벚꽃 같달까. 있을 수 없는 풍경을 머릿속에 그리게끔 만든 문장들이 이 책을 가득 채웠다. 이것만으로도 이 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할 이유는 넘쳐 흐른다. 이 책을 만난 독자들이라면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화가와 요아르, 테드와 알리는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아이들이다. 서로가 서로였기에 특별함은 우정이 짙어질수록 어마어마해졌다. 사실 그들이 특별했던 것이다. 그들이 특별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건 어른의 몫인데 그들의 어른들은 아무도 그 역할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특별한 존재인지 모르고 가장 눈부시게 찬란한 10대의 여름을 보냈다. 특별함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이, 서로만 있으면 된다는 듯이 언제나 함께했다. 서로가 아니면 안된다는 것이 모든 장면에서 보였다. 그게 참 아프고 다정했다. 한 순간도 빠짐없이 함께 했기에 그들 무리 중 한 명이 없던 순간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이 함께 한 순간은 어디서 봐도 선명했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간절해서, 사랑이라서. 그 누구도 사랑을 가르쳐준 적 없는 그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로에게 사랑을 베풀고 있었다. 사랑을 말하고, 사랑을 받아들였다. 그게 사랑인지도 모르면서. 그들이 주고받는 사랑은 놀랍다. 사랑을 갈구하지도 강요하지도, 만들어내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사랑이 그들을 감싸 안고 있었다. 넘겨진 페이지가 쌓일수록 깨달았다. 그들 자체가 사랑이라는 것을.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보지 못 한 ‘너무 서로를 위해서 아픈 사랑’을 책을 통해서 만날 줄 이야. 주변에서 너를 사랑해서 그런 거라고 했지만 사랑한 결과가 다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들은 사랑하는 이를 지키기 위해서 기꺼이 자신이 다쳤고, 자신의 행복과 웃음은 상대의 행복과 웃음으로부터 나왔다. 누구 하나 다치지 않는 사랑은 지구상에서 불가능하기에 우리가 흔히 꿈꾸는 진정한 사랑은 그들의 사랑이 아닐까. 수많은 관계를 맺는 과정을 겪으면서도 깨닫기 쉽지 않은 사랑을 우정이라는 가면을 쓴 사랑으로 배우는 그들의 모습을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겠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사랑이라는 감정을 화가와 요아르, 테드와 알리가 깨우고 말았다. 어렵고 나와 상관 없다고 생각한 사랑이 사실은 매일 짜증으로 시작하는 하루를 살게 하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화가와 요아르, 테드와 알리의 사랑만큼 루이사와 피스켄의 사랑도 눈부시다. 그들의 사랑과 둘의 사랑이 참 많이 닮았다. 모양과 색은 다른데 결국 그들과 둘이 만날 거라는 확신이 느껴진다. 화가와 루이사가, 테드와 루이사가 만난 것처럼.
<나의 친구들>을 읽는 내내 마음에 수많은 감정이 들이닥쳤다. 어떤 감정이라고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서 읽다가 힘들기도 했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루이사가 그들의 이야기 엔딩을 이미 알아버린 것처럼 나도 알았고, 그래서 엔딩을 듣지 않기 위해 자고 있는 테드의 곁에 화가가 전재산으로 산 ‘바다의 초상‘ 그림을 두고 조용히 떠난 것처럼 이 책을 덮고 책상 모서리 쪽으로 밀었다. 애초에 이 그림을 가질 수 없다고, 그 행운을 자신이 갖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며 뒤돌아보지 않고 떠난 루이사와 달리 나는 책으로 시선이 자꾸 갔다. 밀어둔 책을 가져와 다시 펼칠 수 밖에 없었다. 어떤 엔딩인지 알아도 해피엔드를 꿈꾸고, 기어코 내 눈으로 마음으로 엔딩을 봐야 직성이 풀려서 펼치고 말았다. 그렇게 다시 읽기 시작한 그들의 이야기는 속도를 높여 수많은 감정을 겁 먹은 나를 향해 밀기 시작했다. 그 감정들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 하고 삼켜진 나는 이 이야기를 처음 만났던 날로 돌아갔다. 모든 걸 처음부터 느끼기 시작했다.
책을 좋아하고 쌓고 읽기 시작하면서 이런 감정을 느낀 건 처음이다. 줄거리를 파악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그들의 이야기라는 이유만으로 내 머리와 마음에 깊이 새겨지고, 모든 문장을 가능하다면 내 안에 새기고 또 새기고 싶다고 생각한 건 말이다. 넘겨야 할 페이지가 줄어들수록 느끼는 아쉬움과 슬픔은 이 책을 만난 독자들이라면 알 것이다. 독자들이 느끼는 아쉬움과 슬픔 마저 이 책의 한 부분이라서 감사하다. 이 책을 만날 수 있어서, 화가와 요아르와 테드와 알리 그리고 루이사와 피스켄을 만나게 되어 행복했다. 이 행복을 내가 가져도 되는지 스스로 여러 번 물어볼 만큼 내 안을 가득 채웠고, 행복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내가 행복을 꿈꾸게 되었다. 그들과 만남으로써 내가 얻은 것들은 오랫동안 내 안에 남을 것이다. 절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 그들의 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내 안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행복을 느끼고, 삶을 살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 내가 사는 하루하루를 특별하다고, 눈부시다고 말해준 그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그들이 한 모든 행동과 말, 그들이 보낸 모든 시간은 다정해서 아팠고, 아파서 눈부셨다. 그들의 이야기가 그냥 잊히지 않게 흰 종이를 검은 글씨로 가득 채워진 이들에게 고맙다. 여전히 검은 잉크가 마르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은 왜일까? 내 눈물과 웃음에 번진 글씨는 그들이 가장 행복하고 눈부셨던 여름날에 잔교 아래로 뛰어들어 튀긴 물방울이다. 그 안에는 그때의 소년들과 소녀가 살고 있다. 절대 잊히거나 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에 화살표를 그어 덧붙인 내 이야기도 영원히 살 것이다. 그들의 아름다운 이야기에 내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 수 없었다. 내 이야기는 길거리에서 바람에 날리는 명함 하나라고 생각했는데,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준 나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는 처음 들었다고, 우리가 잘 지악하겠다.’라고 말해줬다. 서로 닮은 우리는 짧은 시간 안에 서로를 사랑하고 받아들였다. 닮은 구석이 많아서 아프기도 했지만, 가장 다정하고 편안한 품이 내게 생긴 것이니 마냥 아파할 것도 아니다. 두 번 다시 만나지 못 할 이 이야기는 자주 내 머리와 마음을 유영하며, 나를 살리려고 힘 쓸 것이다. 그들의 노력에 나는 못 이기는 척 살아갈 것이고. 나도 그들에게 살라고, 내가 평생 기억하겠다고 약속하며 그들을 못 이기는 척 살아가도록 이제야 잡은 손을 놓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책장을 덮어도 그들과 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는다. 삶은 유한하다고 하지만 어쩌면 무한할지도 모르니까. 사랑하는 이들을 두고 떠났어도 남은 이들에 의해 계속 삶을 살게 되니까. 우리의 이야기는 서로가 없는 곳에서 언제나 쓰이고 읽히고, 전해질 것이다. 우리의 삶은 미친 듯이 찬란하니까 ✨
이 책을 만나게 되어 너무 행복했고, 아팠다. 20대 후반에 만난 ‘평생의 책‘이다. 이 책을 만났기에 앞으로 살면서 내가 부딪치는 하루하루들이 외롭지 않을 것 같다. 이 책과 함께라면 어떤 날이든 잘 버텨낼 것 같다. 꼭 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이 책을 만난 모두가.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다산북스‘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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