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톨, 툴리아, 피토
BlueMoon 2026/03/13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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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랑이성의 마법사
- 루이스 새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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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 - 2025-11-26
: 2,810
모험과 사랑, 역풍을 맞았지만
: 루이스 새커, 『호랑이성의 마법사』 (창비)
고전 동화를 읽은 느낌이라면 이런 걸까. 형용할 수 없는 감정들을 느꼈다. 모든 작품에서 부정하다가 결국 인정하고야 마는 사랑을 만나버린 것 같다.
1523년 르네상스, 에스콰베타 왕국은 몰락의 위기에 처해서 툴리아 공주를 옥사타니아 왕국의 나이 많은 달림플 왕자와 정략 결혼을 시키려고 한다. 이 둘의 정략 결혼은 어렸을 때부터 정해졌다. 순탄하게 결혼까지 이어지면 굳이 이 책이 세상 밖으로 나올 필요가 없다. 툴리아 공주가 견습생 필경사 피토와 사랑에 빠지고 나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이 이야기는 호랑이성의 마법사 ‘아나톨‘에 의해 더 빠르고 몰입감 있게 전개된다. 툴리아 공주와 피토의 관계를 알게 된 왕은 툴리아가 달림플 왕자와 무사히 결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물약을 만들도록 아나톨에게 지시하고, 피토를 감옥에 가두고, 달림플 왕자의 요구대로 피토를 처형할 것을 명령한다. 툴리아가 어렸을 때부터 지켜보고 알고 지내왔던 아나톨은 공주를 배신할 수 없다. 그래서 툴리아와 피토에게 서로에 대한 기억을 지우는 물약을 만들어 마시게 만든다. 물약을 만들고 마시게 하는 과정에서 아나톨은 피토와 대화를 나누면서 피토가 죽게 내버려둘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 아나톨은 둘에게서 서로의 기억을 지우는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해내고 만다. 그러나 상황은 아나톨과 툴리아, 피토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셋은 정치적 음모와 언제까지 쫓길지 알 수 없는 불안을 피해 탈출을 감행한다. 탈출에 완벽하게 성공했다고 볼 수 없는 건 그들이 언제 어디서 궁 사람들에게 발각될 위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어찌저찌 수도원에서 당분간 지내게 된 셋을 보면 언제 들킬지 모르는 불안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봄이 오면 끊겼던 발걸음이 이어지니까- 로브 속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감춘 그들이 가장 안전하게 느껴진다. 로브 밖에서는 여러 죄목에 뒤엉켜 고통스러운 소리를 내며 죽게 되는 운명이니까. 왕을 속이고 정략 결혼을 파토내고, 탈출을 감행했으니.
셋의 위험하면서도 서로가 있어서 다행인 관계가 참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누구 하나 놓을 수 없는 관계만큼 무겁고 잔인한 관계가 있을까. 툴리아와 피토는 서로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둘이 살고 있는 시대에서는 말이다. 공주와 필경사라니. 가장 처절하고 애달픈 사랑은 계급이 다른 이들의 사랑인 것 같다. 계급을 떼고 나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이들. 왕의 명령은 잔인하다. 감정은 가장 투명하고 변덕이 심한 것인데, 그것을 지우라니. 그 명령을 따라야만 하는 아나톨은 당황스럽고 슬펐을 것이다. 자신도 툴리아와 피토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으니까. 아나톨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둘을 지켜냈다.(적어도) 위대한 마법사 아나톨이 만든 물약을 만든다고 해도, 그 물약으로 서로를 품었던 기억이 지워졌다고 해도 감정만큼은 완벽하게 지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나톨의 물약을 피해 숨은 감정이 두 사람 깊은 어딘가에 살아 숨쉬고 있다가 기회를 엿보고 폭발할 수 있을 것이다. 내 바람이기도 하고, 아나톨이 이뤄졌으면 하는 반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아나톨은 진짜 위대한 마법사다. 먼 미래까지 내다보고 계산하여 둘의 사랑을 진심으로 응원한 그 시대의 사랑꾼이었을지도 모르고.
삶과 사랑의 역풍을 맞은 공주 툴리아와 필사경 피토의 모험과 사랑 이야기를 아나톨의 시점으로 들을 수 있어서 더 와닿았다. 아나톨의 삶이 참 매력적이게 느껴진다. 아나톨이 들려준 이야기는 오랫동안 세계 곳곳에서 많은 독자에게 기억되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질 것이다. 전해지는 과정에서 아나톨은 가장 위대한 마법사와 유머를 놓치지 않는 마법사라는 수식을 제대로 갖게 될 것이다. 툴리아와 피토가 아나톨과 헤어지고 나서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알 수 없지만 잘 지냈기를, 쫓김에서 자유로워져 서로의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진 못해도 그 감정을 속이지 않았기를 바랄 뿐이다. 전 세계에서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청소년 작품의 작가인 루이스 새커를 <호랑이성의 마법사>를 통해 알게 되어 반갑다. 그가 낸 작품을 손꼽아 기다리며, 나는 알지 못한 그의 세계에 천천히 발을 들일 것이다. 설레고도 긴장되는 순간이 내게 찾아온 것이다. 세계에서 사랑받는 이유를 그의 세계에서 찾아내어 사랑 하나 더해도 좋을 것 같다. 툴리아와 피토의 사랑만큼은 아니지만.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창비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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