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열릴 일기장에 어떤 이야기가?
조영미, 『오늘도 열리는 일기장』(자음과모음)
웃음과 찡함을 반복해서 느끼는 청소년 소설이라서 좋았다. 가볍게 읽었다. 여기서 가볍다는 의미는 뭔가에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읽었다는 의미다. 가볍게 시작한 것치고는 계속 읽을수록 마음이 울렁울렁했다. 수면 위로 햇살이 비추는 걸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면서도 울음이 불쑥, 고개를 내밀 것 같아서 숨을 있는 힘껏 참는 느낌이랄까.
학창 시절 한 번쯤은 겪었을 상황과 고민을 아이들 시점에서 잘 그렸다. 연우와 해리, 서은, 향기. 네 아이를 가만히 보고 있으니 다른데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같이 마음이 참 알록달록한 것 같다.
연우가 향기의 뒷담화를 하고 그것이 향기 귀에 들어가고, 멀어진 서은이는 향기와 가깝게 지내고, 연우 곁에는 해리만 남는다. 뒷담화 일로 학폭위까지 열렸고, 선생님들은 물론 친구들과 엄마한테까지 실망을 안긴 연우지만 연우의 잘못과 별개로 진실을 말하는 연우의 말을 아무도 믿어 주지 않는 상황은 답답하고 화났다. 내가 연우였다면, 방 안에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의 달라진 시선과 태도, 나와 두는 거리와 같은 변화를 받아들일 자신이 없으니까. 하지만 나와 달리, 연우는 피하지 않고 맞섰다. 연우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가 대단했다. 연우가 학교를 계속 나갈 수 있었던 건 해리 때문이었다. 언제나 연우 곁에서 그의 말에 호응과 공감을 멈추지 않고, 함께 한 해리. 연우는 해리가 고마워하면서도 그 고마움을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한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해리의 존재를 당연하게 생각하며 해리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행동을 자신도 모르게 계속한다. 작고 사소한 것들이 쌓여 해리의 마음에는 다양한 감정이 뒤섞여 감정 덩어리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연우는 처음에 해리와 서은과 함께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연우 곁에는 아무도 없다. 연우는 해리와 서은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부분에서 연우가 그동안 서은과 해리와 지내면서 자신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되돌아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그저 향기 욕을 바빴고 해리의 반응에 힘입어 향기 욕을 더 했고, 불평불만만 늘어놓았다. 해리는 맞장구를 쳤다면 서은이는 향기 욕을 하는 상황이 불편했다. 서은이는 친구에 대해 뒤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그것을 향기 욕을 하는데 침묵을 유지하는 것으로 표현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서은이라는 인물이 속이 깊고 성숙하다고 느꼈다. 연우의 지난 모습, 그리고 해리가 연우에게 처음으로 솔직한 모습을 보여줬을 때 깨달았다. ‘내가 연우였구나, 학창 시절에 내가 연우였구나.’하고. 학창 시절에 나는 친구들에게 내 이야기만 했고, 긍정적인 이야기보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밝은 친구들도 기운 빠지게 만드는 아이였다. 그때 친구들도 나만큼 어렸고 걱정과 고민이 많았을 텐데 내 이야기만 하느라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고, 좋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언제나 최악의 상황만 생각하고 말했다. 부끄럽고, 친구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왜 매번 그 순간에는 알지 못하는 건지, 시간이 지난 후에 느껴지는 것들이 참 마음을 아프게 하고 지나간 시간을 후회로 물들인다. 현재에는 알지 못했던 것들이 과거가 되면, 나는 그 현재에서 몇 걸음 떨어져 다른 현재를 살고 있기 때문에 과거가 된 현재에 관대해진다. 그 당시에 관대한 마음으로 보고 받아들였다면 친구들과의 우정이 깨지거나 오해가 쌓여 나의 마음이 다른 의미로 친구들에게 전해지지 않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는다. 이렇게 후회하고 나니 학창 시절이 늘 흐리고 얼룩진 것 같아서 울적하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나도 친구들도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만난다면 늦었지만 ‘미안했다고, 그때 나처럼 어렸던 너희들보다 나는 더 어렸다고 그래서 너희에게 상처를 줬다.’라고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 연우가 향기에게 사과한 것처럼. 물론 향기가 먼저 연우에게 다가온 것이지만. 향기는 이름처럼 향기를 가득 품었다. 마음이 깊고, 넓다. 내가 향기였다면 자신을 뒤에서 심하게 험담한 연우를 절대 용서하지 않았을 것이다. 용서하는데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연우는 향기의 엄청난 용기를 알까? 그리고 자신도 그 엄청난 용기를 낼 순간이 오게 된다는 것도?
연우가 향기 뒷담화한 것을 녹음해서 향기에게 전달한 사건의 진범은 밝혀졌다. 처음에 나는 향기와 친해진 서은을 의심했다. 믿음을 쌓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의심을 시작으로 믿음이 산산조각 나는 건 순식간이다. 해리보다 서은과 함께 한 시간이 더 긴 연우인데, 나는 연우의 가장 친한 친구를 가장 먼저 의심했다. 정황상 서은이가 범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진짜 범인이 정체를 드러내고, 범인이 연우 앞에서 진짜 솔직해질 때 정말 ‘관계라는 것은 복잡하고 어렵고, 아주 얇은 유리병같이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작고 사소한 감정들이 쌓이면 언젠가 터지는데, 터지고 나면 모두가 충격에 휩싸이고 파편에 찔리거나 스쳐 상처를 입는다는 것 또한 다시금 깨달았다. 연우가 범인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흘린 눈물과 그 순간의 마음은 어느 정도 알 것 같다(95퍼센트는 안다.). 어릴 때부터 친구라면 벌벌 떨었던 연우에게 ‘친구’가 어떤 존재인지도, 친구라는 존재에 벌벌 떨게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들에 대해서도. 내가 연우와 너무 닮아 있어서 자꾸 연우가 되어 스토리에 몰입했다. 몰입할수록 마음이 무겁고, 정확한 이유를 말할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다.
‘늘행복소망복지관’에 엄마가 가라고 해서, 인성을 배우기 위해 갔지만 연우는 그곳에서 특별한 두 가지의 만남을 갖게 된다. 첫 번째는 아이라인을 진하게 그린 ‘너구리눈’(나중에 이름을 알게 되지만, 이름은 이미아(이예은)), 두 번째는 책상 서랍 속에서 촌스럽고 레트로한 취향을 가진 게 분명한 사람의 일기장이다. 인성을 배운다고 기를 수 있을까 싶고 건물이 많이 낡은 이곳에서 무언가 얻어간다면 다행이다 싶을 때, 연우는 너구리눈과 일기장 때문에 조금씩 전과 달라지고 있었다. 성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는 시간 안에 일어나는 신비로운 시간 같다. 너구리눈과 이야기를 나누고, 몰래 훔쳐보는 상황이기는 하나 일기장을 읽으면서 웃고 우는 모습을 보면서 연우에게는 바쁜 엄마, 엄마와 자신을 떠나 새로운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지내는 아빠가 아닌 일상을 나누고, 마음속에 있던 것들을 꺼내 나누는 시간 속에 함께 할 누군가가 필요했다는 것이 느껴졌다. 너구리눈과 일기장이 없었다면 연우는 아마 해리가 곁에 있었더라도 마음의 빈자리가 더 컸을지도 모른다. 일기장을 읽으면서 연우는 느낀 게 많을 것이다. 가족이 보고 싶어도 가지 못하고 쉴틈없이 일을 하고 건강이 좋지않는 등 힘든 상황에서도 일기장 주인은 항상 일기를 감사하다는 말로 끝맺는다. 나는 여기서 많이 반성했다.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에 대해 한 번도 감사한 적이 없고 당연하게만 생각했으니까. 남에게 아쉬운 소리하면서 얻은 게 아니라 오로지 내 시간과 힘으로 얻었기 때문에 감사하지 않아도 생각한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얻어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라는 걸 일기장 주인이 알려줬다. 당연해지면 감사함을 모르고, 감사함을 모르면 소리 없이 금이 가기 시작한다. 당연한 것들이라도 매일 감사하다는 말로 하루를 마무리한다는 건 내 하루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줄 뿐만 아니라 오늘 힘들었지만, 내일은 괜찮아질 거라는 또 다른 주문 같기도 하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늘 일기를 쓰는데, 늘 감정을 쏟아내는데 치우쳐 있다. 감정 쓰레기통인 셈이다. 매일 쓰레기통이 가득 차는데 버리지는 못하고 한곳에 쌓아둔다. 그럼 일기를 쓰는 이유가 없는데 말이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분류하고 정리하며, 버려야 할지 모르겠다. 일단, 버린다는 것을 모르겠다. 시작하고 나면 다음은 조금 수월해질 것이다. 일기장 주인을 따라서 사소한 거라도 감사한 것을 찾아 하나씩 적어봐야겠다. 처음이야 어렵겠지만, 계속 적다 보면 감사한 것들이 넘쳐날 것이다. 감사하다 보면 정말 행복한 삶을, 내가 주인공으로 가득 찬 삶을, 그토록 찾아 헤맨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오늘부터 차곡차곡, 감사한 것을 찾아서 부지런히 기록할 것이다. 일기장 주인에게 꼭 전하고 싶다, 덕분에 내가 얼마나 소중하고 특별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알게 되었고, 감사히 하루하루를 보내겠다고. 힘들 때면 일기장 주인을 떠올리고, 응원하며 힘내보겠다고.
연우와 너구리눈이 일기장을 몰래 훔쳐봤으니, 자신만의 일기장을 만들어 ‘촌스럽고 레트로한 일기장’이 자신들의 웃음과 눈물을 책임진 것처럼 누군가에게 웃음과 눈물을 선물하면 좋겠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웃고 우는 게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연우와 너구리눈의 일기장에는 어떤 이야기가 쓰일지 궁금한 나의 바람이다. 평범한지 않을 것 같다. 사소하지만 재밌는 순간들로 가득 채워질 것 같다. 나의 일기장은 흐릿한 마음이 걷어지고 나서 누군가에게 수줍게 건네고 싶다. 언제가 될지 알 수 없지만. ‘오늘도 열리는 일기장’, 누군가의 하루를 아무 조건 없이 알 수 있다는 건 참 특별하고 감사하다. 작가님 덕분에 나 또한 특별하고 감사한 순간을 경험했다. 미소를 짓기도 하고 눈시울이 붉어진 순간들이 반복되었던 시간. 이 시간을 선물한 작가님과 자음과모음 출판사에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한다. 그리고 연우와 예은이, 서은이와 해리, 향기에게도 고맙다. 나보다 어린아이들에게 배울 점이 많았고, 자신들과 함께 나 또한 아주 조금 성장하게 해줘서 고맙다. 아이들의 변화를 지켜보면서 행복했다. 앞으로 아이들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지만, 잘 넘기며 빠른 속도로 마음이 건강하게 자랄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이 내게 준 깨달음을 통해 나 또한 나에게 닥칠 일들을 잘 넘기면서 어제보다 더 자란 나,로 매일 날 찾아오는 오늘을 나로 가득 채워 보낼 것이다.
세상 곳곳에서 오늘도 부지런히 열리는 일기장을 통해 우리는 만날 것이다. 다시 만나는 날을 기약한다.
*아이들 모두 각자 상처를 안고 있다. 그저 웃는 얼굴 뒤로, 침묵의 뒤로 숨기고 있을 뿐. 우리는 그렇게 수많은 가면을 바꿔 써가며 연기한다. 연기 안 하고 살기에는 모두가 힘들다는 걸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금방 알게 되니까. 나만 힘든 게 아니니까. 연우와 미아, 서은이와 해리, 향기 각자 갖고 있는 상처는 각자만의 방식으로 치유될 것이다. 상처가 덧나지 않고 잘 아물길 바란다. 그리고 상처를 안 받을 수 없는 세상에서 상처를 안 받길 바라는 건 불가능하니 그저 덜 받길 바랄 뿐이다. 그리고, 상처가 아이들을 잡아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경희 이모는 연우 엄마한테는 동생들밖에 모르는 언니, 누나였고, 연우한테는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알려준 특별한 사람이자 이모다. 살아서는 동생들을 지켰고, 하늘에 가서도 동생과 동생의 딸까지 지키고 있다. 가족은 언제 어디서나 내 편이라는 것, 내 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힘이 나서 쉽지 않은 세상을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을, 이 특별하고 소중한 사실을 새삼 되새긴다.
*연우가 일기를 썼으면 좋겠다는 나의 바람이 여름의 시원한 바람에 실려 연우에게 닿은 걸까? 연우가 12월 25일 화이트크리스마스에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시작했으니, 앞으로 빠짐없이 자신의 하루를 기록했으면 좋겠다.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바래지지만, 기록은 그 당시의 내가 썼던 그대로 그 자리에 있을 테니까. 연우의 일기장이 어떤 이야기로 채워질지 궁금하다. 사소한 거라고 좋다. 연우가 일기장에 자신을 채웠으면 좋겠다:)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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