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길 속으로 몸을 던져야 하는 이유, (서로에게 불이니까)(책의 야성이 우리를 「부름」)
김혜빈 장편소설, 『등에 불을 지고』(사계절)(*가제본)
엄청난 속도로 달리는 차 안에서 너무 무서워서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느낌이었다. 불에 그을린 자국을 한 가제본을 소장할 수 있는 기회에, 인쇄소 화재에 대한 줄거리를 읽고 궁금해서 서평단을 신청했고, 운 좋게 기회가 닿아 가제본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읽고 싶었던 만큼 문장을 따라 빠르게 눈을 움직였다. 멈추는 순간이 많았는데, 그건 밑줄을 긋거나 내 생각이나 느낌을 덧붙이거나 소름이 돋을 때였다. 오랜만에 속도감이 장난 아닌 작품을 읽어서인지 읽고 나서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등에 불을 지고』는 인쇄소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신인 작가 첫 책이 모조리 타버리는 사건을 시작으로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인물과 인물의 관계를 추측하고, 그들의 관계에 대해 깊이 들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인쇄소에서 불이 나는 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지만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단언할 수 없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스토리에서 인쇄소 화재가 큰 사건이 되는 게 진부하게 느껴졌다. 근데, 첫 장을 넘기고 나서 내가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은 불씨가 순식간에 숲 전체를 집어삼키는 것처럼 첫 장의 불씨는 나를 순식간에 『등에 불을 지고』의 우거진 숲으로 내쫓았다.
여러 인물이 나오고 ‘배호연’이라는 인물이 전체적으로 스토리를 끌고 나가는 느낌인데, ‘우희슬’이라는 인물에 완전히 매료됐다. 알면 알수록 모르겠고, 더 알고 싶은 인물이다. 금방이라도 꺼질 것 같은데 절대 꺼지지 않는 아주 단단한 힘을 가진 불씨 같달까. 그래서인지 ‘우희슬의 죽음’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는다. 어째서 불로 죽음을 택했을까? 희슬이 자신이 말하는 세계, 닿고 싶고 되고 싶었던 세계는 무엇이었을까? 불이 되는 거였을까? 재가 되는 거였을까? 그런 거 라면 희슬은 자신이 원하던 세계를 제 것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희슬의 죽음과 희슬과 기영의 기묘한 관계, 그리고 희슬이 기영에게 건네준 자신의 수첩들(13권), 기수라가 한 말, 말없이 자퇴하고 떠나 행방불명된 기영의 형 태형 등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차고 넘친다.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걸 이해하려고 애쓰는 의미 없는 짓으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결국 말하고 싶은 걸 믿는다.’ 이 문장의 무게가 무겁다. 모든 걸 태워 재로 만들었는데, 가벼울 줄 알고 들었던 재가 너무 무겁달까. 가벼울 줄 알았는데 무거우니, 당황스럽다 못해 잔인하게까지 느껴진다. 여전히 『등에 불을 지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불, 불붙기 전이 가장 두려울 때며 인물 모두 서로에게 불씨를 날리거나 불씨가 되어 불을 붙게 만들어 화상(지독하고 고통스러운 상처)을 입힌다는 것이다. ‘불’이 처음부터 (결말이 포함되지 않아서 끝을 알 수 없지만) 끝까지 지배한다. 인간이라는 이름표를 단 불씨가 인간 행세를 하고, 인간 세상을 살아가는 느낌이다. 불만큼이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여러 죽음이 등장하는데, 앞서 말했듯이 희슬의 죽음이 목에 걸려 자꾸 신경 쓰게 만드는 생선 가시 같다. 자살이지만 희슬을 죽인 범인이 분명 따로 있을 거라는 어디서 온 지 모를 확신이 자꾸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다. 배진택(호연과 호수의 아빠)의 죽음은 어느 정도 예상했다. 죽음에 가까워지는 시간에 배진택이 하고 있던 모습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럽고, 잔인했다. 머릿속으로 아무리 미화해서 상상해도, 화상을 입어 사람의 형체를 진작에 잃어버린 배진택은 괴물 그 이상이었다. 불은 정말 모든 걸 태워버린다. 죽음 마저 태워버린다. 모두 서로에게 불이거나 불씨를 키우기 위한 기름이나 종이, 마른 나뭇가지였다.
희슬의 수첩에 적힌 내용을 책으로 쓴 게 분명한 기영. 희슬의 모(이모영)는 희슬이를 제 속으로 낳았지만,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아이라고 말할 만큼 미스터리 그 자체다. 이해하는 것 같으면서도 우리와는 다른 세상에 사는 느낌. 희슬은 책장을 열고 닫을 때부터 불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넘길 책장이 얼마 남지 않을수록 생각했다. 아, 희슬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고. 호연이, 혹은 이모영, 기영이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한 존재라고. 그게 더 어울린다고. 호수가 명상에 매달렸지만 호연은 희슬을 숭배했다. 호연에게 희슬은 특별한 존재 그 이상이었다. 희슬이 호연에게 했던 말들(호연이 자신을 낳아줬으면 좋겠다, 등)은 하나 같이 세상의 끝에 서서 마지막으로 세상을 눈에 담고 금방이라도 죽음 직전의 절벽에서 죽음을 향해 몸을 던질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아슬아슬하달까, 보는 사람은 불안한데 희슬이 본인은 아무렇지 않은 것 같다.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것도 우리가 그렇게 믿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희슬의 세상은 특별해보였지만 고통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그걸 뒤늦게 알아차린 나나, 어느 정도 느꼈음에도 그저 바라만 봤던 호연은 뒤늦게야 희슬이 남긴 수첩으로 그녀를 찾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호연과 기영, 희슬 엄마는 희슬의 죽음을 어느 정도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희슬이 삶을 쉽게 져버릴 아이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다. 무엇이 희슬에게 죽음을 주었는지, 왜 하필 불이었는지 묻고 싶지만 아무도 대답할 수 없어서 그저 시간을 거꾸로 돌려 그럴싸해 보이게 답을 꾸미는 것이다. 확실한 건 서로가 서로에게 불길을 잡는 대신, 불길을 번지게 만든다는 것이다. 희슬은 애초에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자신의 죽음, 녹우리 인쇄소 화재 등등. 사람들은 신인 작가의 책이 화재를 불러왔다고 근거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살을 붙여 퍼나른다. 「부름」이라는 제목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꼭 근거 없는 이야기 같지도 않다. 우리는 말하고 싶은 대로 믿으니까. 책이 정말 불을 불러온 걸까? 희슬의 휘갈겨 쓴 문장들이 불을 불러온 걸까? 개인적으로 후자의 선택지에 힘을 싣는다. 기영의 소설은 희슬의 문장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니까.
진실을 파헤칠수록 더 미궁 속으로 빠진다. 결말에 가서는 진실에 닿을 수 있을까? 불길을 잡을 수 있을까? 불길을 잡더라도 다 타버린 것들을 복구할 수 있을까? 복구가 불가능해서 새로운 것을 들여야 한다면, 새로운 것을 들일 수 있을까?
사건의 범인을 여전히 찾지 못했다. 결말이 포함되지 않은 가제본이라서 그렇겠지만 정식 출간본을 사서 읽는다고 해도, 범인이 밝혀져도 그 범인을 범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다. 불을 지른 사람이 범인인데, 그건 명시적인 범인 같달까. 화재의 범인은 모두가 아닐까.
천천히 불씨를 키우기 시작하던 것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불씨를 거대하게 키운 바람에 마지막 문장을 읽고 책장을 덮어도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것 같다. 호연은 화상을 입어도 녹우리 인쇄소 화재를 앞세워 벌어진,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쫓을 것이다. 호연이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뿐일 수도 있다. 녹우리 인쇄소를 태워버린 불, 인물들의 삶에서 지금도 험상궂게 몸을 부풀리고 있는 불은 내 머릿속에 잔상으로 오래 남을 것이다. 책은 여전히 불타고 있다. 책상 위에 올려둔 『등에 불을 지고』에서 희미하게 연기가 피어오르는 중이다. 그 연기에 기침을 하거나 눈이 맵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 이 가제본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사계절’에서 제공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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