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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서관 문이 열리면
  • 범유진
  • 11,700원 (10%650)
  • 2025-05-12
  • : 2,635

“도서관 문이 열리는 순간”

범유진, 『도서관 문이 열리면』(푸른숲주니어)(☆가제본)

 


범유진 작가님 책은 이번이 처음인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작가님이 쓴 작품과 쓸 작품이 기대됐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학창 시절 일부를 보는 것 같아서 부끄러워 얼굴이 붉어지기도 하고, 웃음이 나기도 했다. 마음이 뒤숭숭하고, 어른이 된 지금도 학창 시절에 겪었던 문제들을 놓지 못하고 도망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정면으로 마주하니 종이에 손가락을 살짝 벤 것처럼 마음이 시큰거렸다. 중학생이 되면 누구나 겪는, 누구나 갖는 순간을 은솔, 수빈, 단아, 재현, 범준이라는 인물에 각각 세심하고 현실감 있는 에피소드를 입혀 인물의 생동감은 물론 스토리 몰입력이 높았다. 도서관 문을 열고 천천히, 오른발을 내밀어 최대한 몸을 웅크려 들어갔던 내 모습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고, 도서관에서만큼은 ‘내가 나로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들을 추억할 수 있어서 아이들의 이야기에, 그리고 둔둔 도서관에 더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나의 학창 시절 도서관에는 둔둔 도서관의 사서 선생님처럼 개성 있고 매력적인 선생님이 상주해 있으면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책 관련해서 이벤트를 열 수 있게끔 도와주는 선생님이 없었다는 게 아쉬웠다. 아이들만큼 사서 선생님도 매력적인 인물이어서 <에필로그>나 얇은 책으로 선생님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나같이 우리 주변에 있었거나, 있거나, 있을 친구들을 그려낸 걸 보면 범유진 작가님의 관찰력이 정말 세심하고 긍정의 의미로 집요한 것 같다. 은솔의 이야기는 재밌게 읽었다. 은솔이는 상대를 위한다고 했지만, 오히려 상대방에게 상처를 줬고 어쩌다 알게 된 도서관에서 종이접기를 하며, 말을 접고 접어 나중엔 정말 전해야 할 말만, 내가 아닌 상대를 위한 소문을 내는 아이로 변화하는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근데 ‘상대를 위한 소문’을 긍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은솔의 감정 변화를 따라가는 재미도 쏠쏠했다. 수빈의 이야기는 반반, 느낌이었다. 수빈처럼 나도 친한 아이들 앞에서는 아이들을 웃겨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재밌는 아이처럼 보이려고 애쓰면서 점점 지쳐가는 모습과 무리에 자연스럽게 속해서 잘 지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서로 부딪쳐 내 안에서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다. 그 갈등은 눈에 보이지 않고 나만 아는 거라서 친구들은 알아차리지 못했고, 설령 알아차리더라도 그건 내 사정일 뿐이었다. 수빈이 친구들 싸움을 말리겠다며 화제 전환을 했지만, 오히려 분위기가 더 안 좋아지면서 주변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과 비난까지 받았던 장면은 마음이 불편했다. 수빈이도 둘 싸움에 끼고 싶지 않았다. 근데 옆에서 ‘분위기 메이커‘라는 별명을 들먹이며 분위기를 풀어 보라고 부추기는 친구들 때문에 개입하면서 듣지 않아도 되는 말을 들었다. 수빈은 친구들과 있으면서 함께 있다는 느낌보다 혼자 있는 느낌이 강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진짜 최수빈'이 아닌 자신이 역할을 부여한 '가짜 최수빈'으로 연기해야 했으니까. 진짜를 감추고 가짜로 생활하던 수빈은 점점 지치더니 이내 혼자 있을 공간을 찾다가 둔둔 도서관에 발을 들인다. 둔둔 도서관을 방문하게 된 이유는 서로 다르지만, 아이들은 같은 곳을 향해 가고 있다. 도서관의 첫 출입을 시작으로 수빈은 가짜 최수빈이 아닌 진짜 최수빈으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둔둔 도서관은 정말 묘한 힘이 있다. 한번 발을 들이면 계속 찾아가고 싶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둔둔 도서관이라는 공간이 주는 ‘안정감’은 굳이 묘사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변화하는 과정을 통해 알 수 있다.


단아는 먼저 다가온 아영이와 친해지면서 자신의 상상을 잘 들어주고 재밌다고 말해주는 아영이를 좋아하게 된다. 뭐 하나 빠짐없이 잘하는 아영이는 엄친딸이다. 단아는 그런 아영을 부러워하면서 아영이가 가진 물건을 따라 산다. 단아는 아영이가 되고 싶어 한다. 자신과 정반대의 모습으로 활발하고 인기 많은 아영이가 부러울 수는 있지만, 아영이가 되고 싶을 만큼 자신에게 자신 없는 단아한테 화가 나면서도 안쓰러웠다. 「네가 되고 싶은 나」는 읽는 동안 마음이 가장 불편했다. 단아가 싫었다. 나와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닮았다는 고백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속에 담아두기만 하면 더 괴로울 것 같아서 뱉었다. 되도록 떠올리고 싶지 않은 낯빛이 어두운 중학생의 내가 떠올라서 짜증이 났다. 여전히 중학교 때의 나도 '나의 일부'인데 인정하기 싫어 못 본 척하고 있는 지금의 나한테 화가 났다. 실은 단아가 싫은 게 아니라, 내가 싫은 것이다. 인정을 하고 나니 가볍긴 하지만 나를 가장 아끼고 사랑해줘야 할 내가 그렇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나에게 미안하면서도 미웠다. 단아처럼 나와 다르게 활발한 성격에 친구들과 두루 어울리는 친구가 부러웠던 적이 있고, 그 친구와 친해지면서 내가 그 친구의 가장 친한 친구이며 그 친구의 비밀은 나만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것이 친구에게 부담이 될 거라는 생각은 당시에 하지 못했다, 단아처럼. 그래서 친구를 생각하고 대하는 나의 방식이 그 친구에게 맞지 않았고, 그 친구는 여러 번 참다가 화산이 폭발하듯 펑-하고, 그동안 나에게 쌓인 불편한 점들이 용암처럼 흘러 내려 내 주변을 감싸더니 이내 나를 삼켜버렸다. 너무 뜨거운데 고통의 소리 한번 내지 못하고 끝이 어딘지 알 수 없는 구멍 속으로 떨어졌다. 부담스럽다는 말은 방금 들은 것처럼 분위기, 목소리 톤 등 모든 게 선명해질 뿐 절대 희미해지지 않는다. 가끔 생각나서 내 마음을 어지럽힌다. 단아도 나처럼 생각이 많은 것 같은데, 아영이가 한 부담스럽다는 말이 가끔 생각나 단아의 마음을 소란스럽게 할지도 모른다. 희미해지지는 않아도 변화를 줄 수는 있다고 믿고 싶다. 단아가 아영이와 화해를 하고,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에 첫발을 뗀 것처럼.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니까. 단아와 닮았지만, 다른 점이 있었다. 바로 ‘재현’의 존재다. 단아의 변화에 재현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재현이 처음부터 단아에게 좋은 선배(친구)는 아니었지만, 오해를 풀면서 재현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단아와 재현이의 관계, 아영과의 관계에서는 대화 부족이 문제였다. 대화가 부족하니까 서로 오해가 쌓이고, 나중에 오해가 쌓일 틈이 없으면 폭발한다. 그 예를 단아의 여러 관계를 통해서 잘 보여준다. 나와 가장 닮아서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가장 마음이 갔던 단아가 앞으로는 ‘네가 되고 싶은 나’가 아니라 ‘이대로도 멋진 나’로 변화하며, 단아 자신이 갖고 있는 고유성을 잃지 않으면서 특별함을 발견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 지금도 멋있지만! 더 멋있는 모습으로 단 한 번 뿐인 학창 시절을 눈부시게 보냈으면 좋겠다. 내 학창 시절은 눈부시다고 할 수 없어서 단아 학창 시절이 눈부시다면 대리 만족이 될 것 같달까(내 욕심이다). 그러면 내 안에 웅크리고 있는 아이가 활짝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단아의 행복을 진심으로 바란다.


범준은 안타까운 인물이었다. 범준의 상황은 드라마에서 자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상황이라서 범준이 처한 상황에 씁쓸함을 느꼈다. 범준이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데, 학생이니까 공부만 하라고 찔러대는 뾰족한 화살이 범준을 아프게 만들었다. 범준은 공부가 아닌 다른 것이 필요했다.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어 병상에 누워 있는 형이 일어날 거라고, 형이 다시 돌아오면 방을 써야 하니까 형 방을 범준에게 내주지 않고 거실을 계속 쓰라는 부모님이 아니라. 잠깐이라도 범준에게 공간을 만들어 주지 않는 부모의 모습에 범준만큼이나 실망했다. 형의 부재로 범준이가 감당해야 할 무게를 감히 상상할 수 없다. 그런 범준에게 도서관은 도서관이 되기 전부터 ‘특별한 공간’이었다. 근데 도서관으로 바뀌고 아이들이 찾아오면서 유일한 공간을 빼앗겼다. 그래서 책을 훼손하면서까지 자기만의 공간을 되찾으려고 했다. 공간을 갖는 건 매우 중요하지만, 범준의 방법은 옳지 않았다. 범준도 자신의 잘못을 분명 알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만큼 공간을 되찾는 게 우선이었을 것이다. 범준에게는 꿈이 있고 잘하는 것이 있지만 공간을 찾아 떠돌아야 했는데, 이젠 둔둔 도서관에서 누군가가 원하는 꿈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꿈을 구체적으로 펼쳐 나갔으면 좋겠다. 그곳에는 범준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같이 고민해 줄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으니까. 무엇보다 범준에게 언제든 품을 내어줄 공간이니까! 그렇게 범준이 처한 상황이 나아진다면 범준을 향한 안타까움을 적당히 시원한 바람에 실어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들마다 각자 책이 정해져 있어 그 책에 등장하는 인물을 소재로만 쓰지 않고, 아이들이 변화하는 모습을 부각하는 점이 가장 좋았다. 인물이 작가에 의해 수동적으로 쓰이기만 하는 것이 아닌 인물들이 스토리라는 넓은 배경 안에서 자유롭게 뛰어노는 게 무엇인지 배울 수 있어서 청소년을 위해 글을 쓰고자 하는 꿈을 오래전부터 갖고 있는 나에게 아주 의미 있었다. 범유진 작가님 책을 찾아 읽어봐야겠다. 범유진 작가님 세계 속에서 내가 놓치고 있던, 본 적 없던 것을 만날지도 모르니 말이다. 아이들에게 딱 들어맞는 책이라서, 범유진 작가님한테 ‘저는 어떤 책이 어울릴까요?’라고 묻고 싶었다. 나에게 어울리는 책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닿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먼 훗날 나의 바람이 이루어지고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통통, 뛴다.


『도서관 문이 열리면』 서 ‘내 안의 은솔과 수빈, 단아, 재현, 범준’을 만났다. 처음에는 한껏 움츠러들어 주변 눈치를 살피는 모습이 싫어 외면했는데, 아이들의 감정과 마음의 변화를 따라 걷다 보니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맞잡고, 초록빛을 한가득 머금은 나무들이 따스한 햇살의 손길을 받으며 손을 흔드는 길을 걷고 있었다. 두고두고 꺼내볼 청소년 소설을, 둔둔 도서관이라는 비밀 공간을 알게 되어 행복하다. 둔둔 도서관에서 느낀 여러 감정과 행복이 많은 독자에게 닿았으면 좋겠다, 꼭. 앞으로 범유진 작가님 작품 활동을 응원하며, 작품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릴 것이다! 둔둔 도서관에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책을 읽고 있으면 범유진 작가님 세계로 향하는 수많은 길이 나를 향해 손짓할 테니까!

 

★ 이 가제본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푸른숲주니어’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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