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라도 보일 때’가 되면, 나는 (진정한) 어른이 된 걸까?
김창완 산문집, 『이제야 보이네』(김창완 첫 산문집 30주년 개정증보판)(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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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보이네.’라는 제목 앞에서 멈칫-, 했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쭈뼛거리는 모습이랄까. 마치 지금 내 나이에 보이는 게 있어야 한다고 혼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보이는 게 없다. 매년 사회적으로 정해진 기준에 따라 나이를 하나씩 먹으며, 어른인 척하는 것이지 어린아이일 뿐이니까. 아이가 어른인 척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어른으로 사는 삶이 재밌고 자유롭게 보였을 때가 좋았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이제야 보이는 게 아니라 깨달은 것이다. 이 깨달음은 고달픈 하루일수록 더 깊은 깨달음이 된다. 요즘 자주 이 책 제목을 읊조린다. 이제야 보이네, 하면 정말 뭐라도 보일 것 같아서 말이다.
김창완 선생님은 라디오 DJ와 싱어송라이터, 배우로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라디오나 노래를 찾아 들은 적은 없지만, 어쩌다 본 영화를 통해 배우로 만났다. 그때 맡은 역할과 스토리는 충격적이라 오래전에 봤어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한다. 강렬한 첫 만남은 선생님의 인자한 웃음과 조금 거리가 있었다. 그러고 나서 『이제야 보이네』 선생님의 첫 산문집 30주년 개정증보판으로 오랜만에 두 번째 만남을 가진 것이다. 이 만남이 간절했던 건 단 하나다. 제목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이제야 보이네, 라는 말에 나도 뭐라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이제야 보이네』는 김창완 선생님이 살아온 날을 솔직하게 적어 놓은 일기장이다. 누군가의 일기장을 보는 것은 떨림과 궁금증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내가 느낀 떨림은 그 사람의 비밀을 알아버리는 데 있고, 궁금증은 그 사람이 걸어온 시간이 어떻고 나의 시간과는 어떤 부분이 다르고 어떤 부분이 닮았는지에 있다. 라디오 DJ, 싱어송라이터, 배우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생님이 걸어온 시간은 나의 시간보다 훨씬 푹- 고와진 사골국의 깊은 맛을 냈다. 지금 내 나이를 보내면서, 더 어린 나이를 보내고 내가 곧 보낼 나이를 보내고, 아직은 멀지만 언젠가 내가 보내야 할 나이를 보냈고, 보내고 있는 선생님의 진솔한 이야기에 나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입혀졌다. 1부터 10까지 같은 게 하나도 없고 접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선생님인데 오래전부터 가까이 알고 지낸 것처럼 느껴졌다. 연예인은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밤하늘의 별과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선생님은 화려한 삶을 사는 연예인도 비연예인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해줬다.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건 알지만, 자주 쉽게 잊어버린다. 어떤 경우에는 보이는 것을 쉽게 믿어서, 또는 보이는 것을 의심부터 해서 소음이 발생한다. 『이제야 보이네』는 흙길을 따라 걸으며 평소에는 눈에 보이지 않던 풀과 꽃, 나뭇잎, 지저귀는 새, 열심히 부스러기를 옮기는 곤충들 등 안식을 가져다주는 자연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직사각형 모양으로 꼿꼿하게 서서 여유를 느낄 틈을 주지 않는 건물들의 코너를 돌면서 딱딱한 시멘트 사이로 기어코 생명을 틔운 민들레나 풀을 보며 잠깐이라도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면서 소음을 잠재운다. 선생님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김창완’이 아닌 ‘인간 김창완’으로 만나는 시간은 휴대폰 전원을 끄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내가 걷고 싶은 만큼 걸을 수 있는 특별한 산책길이다.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선생님이 걸어온 길에는 바래진 발자국 없이 모든 발자국이 선명했다. 그 중, 빛을 내는 발자국도 있었는데 그것은 내 마음을 울린 순간(에피소드)으로 종종 머릿속에 떠오를 물기를 품은 선생님과 나 사이의 비밀이라는 느낌이 들었다.(이 책을 읽은 독자들과 선생님의 비밀인 것이다.) 발자국에 내 발을 덧대어 걷는 동안 ‘지나온 모퉁이마다 삶이 건네는 이야기가 있다.’라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늘 과거에 발목 잡혀 현재를 열심히 살지 않는 나는 ‘지나온 모퉁이마다 아물지 않은 상처’만 있다고 생각했지, 삶이 이야기를 건넸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나 과거에 갇혀 살았고, 과거를 괴로움으로 정의했다. 살면서 상처와 슬픔이 생기지 않을 수 없지만, 행복과 기쁨 또한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해 보면 인생은 매일 나에게 이야기를 건넸지만, 나는 귀를 막고 내 말만 맞다고 인생을 쉽게, 함부로 이야기했다. 어리석고 철없는 나에게 삶은 언제나 변함없이 이야기를 건네고 있었다. 지금도 말이다. 앞으로도 삶은 모퉁이를 돌 때마다 내 삶을 ‘쓰고 달고, 설익고 잘 여문 열매들(하루)’로 양과 질적으로 가득 채울 수 있게 이야기를 건넬 것이 분명하다.
10대, 20대, 30대, 40대……, 나이대별로 ‘보이는 것’에 차이가 있다. 10대를 보내고, 20대 후반을 보내면서 똑같은 것 같지만 미세하게 달라진 나를 느낀다. 미세한 변화지만 큰 변화처럼 느껴질 때마다 낯설고 이상했는데, 앞으로는 ‘삶이 내게 이야기를 건네는구나, 지나온 모퉁이마다 삶이 건넨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이제 열렸구나.’라고 생각해야겠다. 그렇게 살다 보면 김창완 선생님처럼 ‘그때는 몰랐지만, 지나온 모퉁이마다 삶이 건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만큼 내가 단단해지고 삶을 내 방식대로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나의 바람★) 단단함과 여유로 균형 잡힌 내 삶을 위해, 지금 볼 수 있는 것을 놓치지 않고 볼 수 있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열린 마음과 긍정적인 태도로 보내는 연습을 시작해야겠다.(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 ‘이제부터 시작이네’라고 책 제목이 읽히는 건 왜일까. ‘무한히 확장된 김창완이라는 세계’를 통해 상처와 슬픔, 우울, 불안, 걱정 등으로 오랫동안 닫혀만 있던 나의 세계가 아주 천천히, 기지개를 켜는 소리가 들린다. 내 마음에도 봄이 찾아왔나 보다. 당신의 이야기를 꾸밈없이 들려준 김창완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다산북스’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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