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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이브
  • 정해연
  • 11,700원 (10%650)
  • 2025-03-25
  • : 3,275

생명의 가치와 죄의 무게의 서늘한 질문, (끼이익-)

정해연, 『드라이브』(앤드)

 



시원하게 뚫린 길을 빠른 속도로 달리는 차 안에 있는 기분이었다. 금방 몰입했고, 빠른 속도로 문장이 눈과 머리에 들어왔다. 빠른 속도로 차가 내 앞을 순식간에 지나간 느낌이랄까. 솔직히 더 빨리 읽을 수 있었지만, 일부러 나눠서 읽었다. 자꾸 브레이크를 밟았다. 몰입이 너무 된 나머지 스스로 힘들기도 했고, 뭔가 두려웠다. 내가 노균탁, 김혜정이 되어 지옥 같은 상황에 떨어진 느낌은 정말 아찔하고 잔인하고, 숨 막혔다. 나눠 읽어도 순식간에 페이지는 넘어갔고, 금방 책장을 덮었다.


『드라이브』는 노균탁과 김혜정, 각각 가해자와 피해자의 시점으로 나뉘어져 있다. 책을 노균탁과 김혜정의 각 이야기를 반대로 두는 구성은 참신하고, 이 책에 대한 매력을 더 끌어냈다고 생각한다. 『드라이브』는 70대 노인 노균탁의 차량에 김혜정의 딸 10대 소녀 연희가 치여 죽게 되면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삶이 모두 파괴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파괴된 삶을 극명하게 보여준 각각의 시점은 독자로서 읽는 것만으로도 괴로웠다. 먼저 노균탁의 시점으로 시작했다. 70대 노인이 운전대를 잡는 건 문제라고 볼 수 없지만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위험 요소가 너무 많다(그러면 문제인가?). 노인 운전자로 인한 교통사고가 많이 일어나고, 그로 인한 피해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운전하는 것이 위험 요소가 되는 나이에 면허증을 반납하면 십만 원의 보상금을 주는 현행이 있다고 해도 그 보상금은 운전대를 직접 잡는 편리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기에 대부분 운전대 잡는 것을 선택한다. 직접 운전대를 잡지 않겠다고 면허증을 반납하면 좋으련만, 강요할 수 없는 현실도 안타깝다. 그리고 그로 인해 생각지 못한 피해를 보고 하루아침에 삶이 파괴되는 누군가를 떠올리면 잔인하기까지 하다. 노균탁은 자신의 차량에 치여 피를 토하며 쓰러진 소녀, 소녀가 죽고 나서 삶이 완전히 무너진다. 밥을 먹지도 잠을 자지도 못한다. 차량에 치여 피를 토하며 쓰러지던 소녀의 모습이 자꾸 생각나고, 자신이 앞날이 창창한 10대의 소녀를 죽였다는 사실에, 절대 용서받을 수 없다는 사실에 차라리 자신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노균탁은 이유가 어떻든 가해자가 되었고, 피해자와 유족들에게는 악마가 되었다. 무릎을 꿇고 평생을 사죄하며 살겠다고 해도 죽은 아이는 돌아오지 않기에 절대 용서 받을 수 없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 고의가 아니었지만, 사람이 죽었다. 노균탁은 사람을 죽인 살인자다. 노균탁 죄의 무게는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노균탁은 자신이 브레이크를 밟았다고 했지만, 사실은 엑셀을 밟았고 실수였다고 했다. 실수는 수습이 가능한 것을 의미한다. 노균탁은 실수가 아닌 죄를 지은 것이다. 하루아침에 가해자가 되어 딸 지영과 사위에게 무거운 짐을 얹었고,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다. 노균탁의 마지막 선택이 남은 가족을 위해, 그리고 자신 때문에 죽은 소녀와 소녀의 유족들에게 아주 작은 위로도 되지 않을 것이다. 노균탁이 혼자 생각해서 내린 결정으로 오히려 남은 이들을 더 괴롭게 만드는 일일 것이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 남는 사람들은 죽은 사람에 대해 후회, 원망 등 복합적인 감정의 소용돌이에 갇혀 휩쓸릴 테니까. 노균탁의 시점에서는 정말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괴로웠다. 사람을 죽였는데, 나 말고 모든 게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고 나로 인해 하루아침에 모든 게 무너졌고 다시는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심장을 갈기갈기 찢어 놓는 느낌이었다. 노균탁처럼 진심으로 반성하고 괴로워하는 가해자들은 몇이나 될까. 대부분 가해자들은 죄의 무게를 낮추기 위해 머리를 쓰고, 피해자 유족들의 아픔은 생각하지 않고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계산적으로 잔인하게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안 그래도 지옥 같은 시간 안에 갇혀 있는 이들에게 더 잔인하게 칼을 꽂는 일이다. 가해자 죄의 무게는 어떻게 봐야 할까, 죄의 무게를 어떻게 내려야 할까.


노균탁 시점에서 쫓기듯 나와 한숨 돌리고 들어간 김혜정의 시점은 아수라장이었다.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딸과 아들은 등원하고 남편과 본인은 직장에 출근했다. 평소라면 급한 용건을 문자로 남겨둘 남편이 자꾸 전화를 걸어오고,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틀린 법이 없다는 듯이 혜정의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졌다. 남편이 알린 딸 연희의 죽음. 혜정은 남편 영준이 거짓말하는 것이라고, 가서 상황을 바로잡을 거라고 생각하며 영준과 연희가 있는 곳으로 향한다. 계속 부정했던 연희의 죽음은 차갑게 식어 핏기 없이 누워 있는 연희를 보고 현실이 된다. 혜정은 연희 앞에서 무너져 내린다. 그러면서도 계속 부정한다. 아니라고, 연희가 죽었을 리가 없다고. 하지만 연희는 이미 숨은 거뒀고, 잔인하지만 연희를 보낼 준비를 해야 했다. 영준은 혜정을 챙기면서 연희의 장례 준비를 했다. 혜정은 연희를 보내줘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장례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현실을 부정한다. 부정할수록 연희의 죽음은 확실해졌다. 영정 사진 속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연희를 한 번 더 안아 줄 걸, 한 번이라도 안고 싶은 혜정은 연희를 죽게 만든 가해자에 대한 분노로 마음이 들끓는다. 기절하고 나서 병원에서 깨어난 후, 곧바로 달려간 경찰서에서 연희를 죽게 만든 사람을 확인하고, 그를 잡아 흔들며 연희를 살려내라고 죽을 거면 당신이나 죽지, 왜 앞날이 창창한 내 딸을 죽였냐며 울부짖는 혜정의 모습은 정말 처절했다. 자식을 앞세운 부모의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 없지만, 마음이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욱신거렸다. 노균탁의 시점에서는 메말라가는 느낌이었다면, 김혜정의 시점은 몸에 있는 모든 수분을 빼냈는데도 계속 물이 나오고, 동시에 모든 걸 집어삼킬 불이 이글거리는 느낌이다. 혜정이 울부짖고 분노하고, 딸 연희의 흔적을 느끼는 모든 장면에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김혜정 시점의 모든 문장에서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분노보다 자꾸 목이 메어 다음 문장으로 넘어가기까지 오래 걸렸다. 너무 괴로웠다. 이 상황이 잔인하다고 생각했다. 하루아침에 파괴되버린 삶,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김혜정, 그녀는 앞으로 딸 연희가 없는 삶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일을 감추고 살아야 하는 삶을 어떻게 살아낼까. 받은 상처가 너무 아파서 결국 또 상처를 주고 만 삶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까.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을 모두 생각한 건 처음이다. 뉴스에서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 사고에는 늘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고, ‘생명의 가치와 죄의 무게에 대한 서늘한 질문’이 빠지지 않는다. 나는 대부분 상황을 파악하고, 피해자 입장이 되어 분노한다. 가해자의 입장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해자가 죄를 짓고 난 뒤 뱉는 말은 다 똑같다. 실수였다, 심신미약, 음주 상태 등등. 생명을 앗아가고 그들의 삶을 하루아침에 파괴한 사람들이 하는 말들은 하나같이 죄의 무게, 아니 형량을 줄이기 위한 핑계일 뿐이다. 설령 뱉은 말이 사실이었다고 해도 죄를 지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가해자가 진심으로 반성한다고 해도 전으로 돌릴 수 없기에 완벽한 반성도, 완벽한 용서도 없다. 고의든 자의든 죄를 지었다면, 그 죄로 인해 누군가의 세상이 무너졌다면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잔인한 사실을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게 된다(일말의 죄책감이 없고, 잘못을 모르는 가해자는 절대 모른다). 가해자와 피해자 당사자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삶도 흔들리고 무너진다. 죄를 짓는 건 이렇게 무서운 일이다. 살다 보면 생각지 못한 상황을 맞닥뜨린다. 죄를 짓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하지만 죄에 이유와 합리화가 적용되면 안 된다. 그렇게 된다면 세상은 정말 악으로 가득 찰 것이며, 생명의 가치와 죄의 무게에 대한 서늘한 질문은 아무 의미가 없어질 테니까.


‘인간의 본성과 도덕적 딜레마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처음 한다. 나는 인간의 본성은 ‘악’이라고 생각한다. 악이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지만, 그 힘이 적정한 선을 넘으면 해를 끼친다는 게 내 입장이다. 선과 악은 오래전부터 싸워왔다. 본성과 도덕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본성을 통제하고, 도덕적인 선택을 통해 이루어져야만 우리가 살기 편하고 안전해진다. 본성과 도덕적 딜레마가 싸우다 보면 본성이 이길 때도 있고 도덕이 이길 때도 있지만, 그 우승의 깃발은 본인의 선택으로 갖게 된다.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는 뒤따른다. 그 후회의 무게는 차이가 분명하지만, 결국 선택을 하고 난 뒤에 따른 모든 것은 본인이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의 가치와 죄의 무게에 대해 망설임 없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세상을 만든 신도 바로 답하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는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그럼 생각한다. ‘신은 모든 걸 알고 있고 보고 계시면서 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계시는 걸까?’. 인간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 게 원칙이나 세상을 만들 때 걸었던 조건이라고 해도 보고만 있기에 너무 잔인하고 처참한 일들이 많지 않았던가. 앞으로도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보다 더한 일도 일어날 수 있고. 신은 우리가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고통만 준다고 했다. 우리를 너무 과대평가한 게 아닐까? 노균탁, 김혜정과 같은 사람들이 세상 곳곳에 있다. 그들의 삶을 『드라이브』를 통해 엿보는 동안 메말랐고, 불구덩이에 빠져 울부짖었다. 이겨낼 수 있을 만큼의 고통이 아니었다. 결국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지 않았나. 신이 바라는 엔딩은 무엇일까? 이미 알고 있는 엔딩이기에 보지도 않을까. 노균탁의 차량이 소녀를 치기 전에, 노균탁이 엑셀이 아닌 브레이크를 밟게 신이 개입했더라면 노균탁과 김혜정 두 사람의 삶은 평범하게-손주를 돌보고,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일을 하며-흘렀을 것이다. 노균탁곽 김혜정의 파괴된 삶을 모두 봐버린 이상,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누는 것이 의미 없어졌다. 그냥 신을 원망하고 싶어졌다. 신이 짠 판에 놀아난 인간이, 우리가 안쓰러울 뿐이다. 지금도 어디선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노균탁, 김혜정, 지영, 영준, 연희와 같은 사람들이 없길 바랄 뿐이다. 그저 모두 하품이 나올 만큼 평범한 시간 속에서 흘러갔으면 좋겠다. 엑셀 대신 브레이크를 자주 밟는 삶이 우리의 삶이길, 그렇게 모두 안전하고 평안한 하루하루를 쌓길.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넥서스’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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