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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근이세요?
  • 표명희
  • 13,500원 (10%750)
  • 2025-03-21
  • : 3,135

세상에 내 일이 아닌 일은 없다.

표명희, 『당근이세요?』(창비)(창비 청소년 문학 133)

 


『버샤』 이후, 2년 만에 표명희 작가님 작품을 읽게 되었다. ‘표명희’라는 작가 이름이 익숙했지만 왜 익숙한지 몰랐는데, 난민 이야기를 다룬 『버샤』 작가님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찜찜했던 부분이 해결됐다. 두 번째 만남이 표명희 작가의 첫 청소년 소설집이라서 더 의미 있다. 청소년 시기를 보내면서 친구나 가족보다 책과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책이 유일한 친구였고, 동시에 유일한 대나무숲 같은 거였다. 특히 청소년 소설은 조언, 충고 없이 언제나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편안한 품이었다. 그래서 나와 같이 시린 청소년 시기를 보내고 있을 이들에게 힘이 되는, 편안한 휴식처가 되어줄 수 있고 때로는 피난처가 되어줄 수 있는 청소년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고자 하는 꿈을 꿨고, 자연스럽게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가 읽고 배우고, 쓰며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모른 채 눈 깜짝할 사이에 졸업장을 받았다. 문창과 재학 시절 때는 ‘그때라서 쓸 수 있는 글이 있다.’라는 교수님들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졸업하고 난 후, 먹고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펜을 놓고 나니 그 말이 자주 생각났다. 작가가 되는 일이 생각보다 쉬울 줄 알았고, 내 이야기를 세상에 많이 내놓을 수 있을 거라고 자만했다. 펜을 놓지 않겠다는 다짐은 힘없이 바람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낙엽만도 못했다. 어떤 상황에 놓이든 펜을 놓지 않아야 하는데, 나는 쉽게 펜을 놓았고 다시 펜을 잡으려고 했지만, 여전히 펜을 잡지 못하고 있다. 펜을 잡는 방법을 아예 잊어버렸다.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본론으로 돌아와 표명희 작가의 첫 청소년 소설집은 저 아래 가라앉아 있던 처음 글을 쓰고자 했던 이유와 글을 쓰는 것을 통해 이루고 싶었던 첫 꿈을 끌어 올렸다. 일단 쓰는 것, 내가 해야 할 일은 핑계 대신 쓰는 것이다.


이 소설집에는 4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딸꾹질」, 「이상한 나라의 하루: 당근이세요?」, 「오월의 생일 케이크」, 「개를 보내다」. 「딸꾹질」은 2002년 월드컵, 빨간색, 붉은 악마, 「이상한 나라의 하루: 당근이세요?」는 당근 알바, 한부모 가정, 이주자 가족, 시설 생활, 「오월의 생일 케이크」는 가족, 군대, 5․18, 「개를 보내다」는 반려견, 만남과 이별로 키워드를 뽑을 수 있다. 4편 모두 조금만 귀 기울이고 고개를 돌리면 듣고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어쩌면 평범해서, 일상이라서 강한 울림이 있는지도 모른다. 금방 내 옆을 지나친 이들 중, 한부모 가정이거나 이주자 가정이거나 5․18과 같은 역사로 인한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니 목에 뭔가 턱-, 하고 걸렸다. 솔직히 내 일이 아니기에 관심은 물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소설에 등장하는 이야기 중에서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내 일이 아니더라도 이웃, 먼 친척 그리고 이름과 얼굴은 모르지만, 같은 하늘 아래 세상을 살아가는 이들의 일이다. 나와 전혀 관련 없지 않다는 것이다. 나의 무관심이 처음으로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언제든지 나에게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한 적 없으며, 우연히 듣게 되는 이야기에는 매번 안쓰러운 눈길을 던지거나 짧은 한숨을 내쉬기만 했다. 나의 지난날의 모습이 부끄럽고 찌질해보였다.


4편 중, 「오월의 케이크」와 「개를 보내다」가 기억에 남는다. 「오월의 케이크」는 다시는 반복돼서는 안 될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 5․18을 다루고 있다. 집안의 장남 큰아빠는 집의 모든 기대를 받고 그 기대에 부응하여 명문대까지 들어갔지만, 군대를 갔다 오고 나서 완전히 삶이 파괴되었다. 가족도 아니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그 일을 당사자인 큰아빠는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입 밖으로 꺼내기 전에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큰아빠를 고통스럽게 할 일이니까. 큰아빠는 그 일의 피해자로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절대 옅어지거나 사라지지 않을 트라우마를 가진 채 남은 생을 살아야 한다.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수류탄이 터지고, 피를 흘리고 울부짖는 소리가 가득했던 그 시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고통 속에서 버텨서라도 살아가야 하는 그 일의 피해자들과 유족들의 생활과 감정, 그리고 앞날을-잠깐이지만-생각하고, 분노하고 아파할 수 있었다. 교과서로만 봤던 일을 실제로 겪은 이들에게는 그 어떤 것으로도 지난날을 보상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잔인한 것 같다. 당연하다. 피해받은 쪽이 어째서 모든 걸 감당해야 할까. 지금도 방구석에서, 삶이 부서진 채 겨우 숨을 붙들어 살고 있는 이들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세상에서 살 수 없을 나는 이대로 계속 살아가도 되는 걸까? 생각이 많아진다.


「개를 보내다」는 진서와 반려견 진주의 이야기다. 진주는 아빠가 진서의 생일 선물로 데리고 온 유기견이다. 진서도 엄마도 진주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개를 키우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진서는 ‘똥은 누가 치우고?’라는 말로 진주와 처음 마주한다. 진서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그렇다, 개를 키우면 해야 할 일은 물론 개에 들어가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개를 키우고 있는 입장-4마리를 키우고 있다-에서 진서와 엄마가 진주를 달가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을 이해할 수밖에 없다. 물론 나는 내 선택으로 키우게 되었지만, 가족들과 부딪히는 일들이 너무 많았고 내 선택을 자주 후회했다. 개들은 금방 분위기를 알아차렸고, 나는 미안하면서도 바라보는 것만으로 숨이 막히는 개들을 등지는 날이 많았다. 나의 욕심과 무지함, 그리고 어리석은 선택으로 나와 가족, 그리고 나만 믿고 그저 내 품에 안겨 온 아이는 서로에게 가족이 아니라 ‘짐’이 되었다. 짐짝 취급하고 귀찮아하던 내 모습을 떠올릴 때면 아이들을 볼 자신이 없다. 아이들이 없던 시간은 오래전부터 희미해져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이 내 시간에 아주 짙게 남았다는 것이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아이들 때문에 힘들었지만, 아이들이 없는 시간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먼 시간의 이야기지만 아이들과 이별해야 할 때가 오면, 나는 후회와 미안함으로 몸에 모든 수분을 빼내듯 울 것이다. 우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일이 없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는 당연한 섭리를 부정하면서 신을 원망할 것이고 지난날의 내 선택을 후회하고 자책할 것이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건 당연한 섭리가 잔인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이 부정당하는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다. 새끼 강아지를 보기 위해 몰려 가는 친구들을 따라가지 못한 진서의 마음을 잘 알아서, 앞으로 내가 느껴야 할 감정들이어서 읽는 동안 마음이 불편했다. 마음이 아팠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언젠가 마주해야 할 그 순간이 되도록 아주 늦게 오길 바랄 뿐이다. 아이들이 있는 동안에는 아이들의 소중함을 자주 잊겠지만, 그 대가는 아이들이 강아지별로 떠나고 나서 내가 치러야 할 것이며 그 사실을 아는데도 곁에 있을 때는 매번 후회할 행동을 한다. 진주는 진서의 가족으로 지내면서 행복했을까? 진서는 진주 덕분에 학교 끝나고 집으로 가는 것이 좋다고 했다. 텅- 빈집이 아니라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진주가 있으니까. 진주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진서의 시간에 녹아들었다. 진주의 시간에는 진서가 가장 많이 존재할 것이다. 사람과 개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고 한다. 사람의 시간이 50이면, 개의 시간은 100이라나.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들과 있을 시간이 적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은 기다림 없이 흐르고, 아이들의 시간은 무섭게 흘러가는 중이다. 언제나 내 곁에 있어 줄 거라는 착각은 이제 거둬야 한다. 후회가 더 쌓이기 전에 빠르게 흐르는 아이들의 시간에, 나만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에게, 나와 함께 하는 것 말고는 바라는 게 없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위해 나의 시간을 기꺼이 아이들에게 줄 것이다. 너무 늦지 않았길 바라며.


청소년의 시선으로 쓰인 네 편의 이야기를 통해 웃음도 나고 마음에 물컹한 것이 불쑥-, 고개를 내밀기도 하며 ‘위로’를 받았다. 작가가 세밀하게 그린 한국 사회의 현재가 생생해서 이야기 속에 등장한 모든 인물이 다 내가 아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한국 사회의 현재를 누군가는 기록하고, 기록한 것이 읽히고 전해져야 하는데 표명희 작가님이 가볍지 않은 일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 소설집이 청소년에게, 어른에게 읽히고 전해져 한국 사회의 현재를 파악하고, 조금 더 나은 한국 사회를 위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변화를 끌어낼 수 있게 행동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네 편의 이야기에서 한국 사회의 지금을, 소란스럽고 모든 게 흩어진 한국 사회의 지금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상에 내 일이 아닌 일은 없으며, 오늘도 내 일일 수도 있는 일들이 세상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 이 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창비’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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