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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
  • 줄리애나 배곳
  • 16,200원 (10%900)
  • 2025-03-14
  • : 1,690

단절과 연결, 파괴와 회복을 동시에 꿈꾸는 우리, 이대로 괜찮은가?

줄리애나 배곳 지음 ․ 유소영 옮김,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인플루엔셜) 티저북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라는 제목만 보고, ‘나를 위한 책이구나, 어떻게든 내가 만나게 될 책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제목을 어떻게 이렇게 지을 수 있을까, 감탄했다.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라는 문장을 자꾸 곱씹게 된다. 곱씹을수록 내 마음에, 아니 나의 우주에 내가 알고 있는 구멍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생긴 구멍이 메워지는 것 같다. 분명 이 책은 이번이 아니더라도 나와 만났을 것이다.


왜곡된 거울상으로 재현한 흐릿하고 낯선 미래의 이야기가 ‘곱씹을수록 진해지는 책 제목’을 달고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단절과 연결, 파괴와 회복을 동시에 꿈꾸는 오늘의 SF에 발 들일 준비는 책 제목을 보자마자 끝냈다. 다만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단정과 연결, 파괴와 회복’이라는 각각 반대의 세계에서 내가 어느 한 곳에라도 속하지 않은 채 붕- 떠 있지는 않을까, 그게 두렵다.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에 제대로 발을 들이기 전에 설렘과 두려움을 안고, 내딛는 첫걸음으로 만난 「포털」과 「역노화」는 꿈에서 흐릿하게 봤던 장면 같았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분명 인간이 겪어야 할 시공간을 미리 엿본 기분이랄까. 두 작품을 읽고 난 후, 뭔가에 쫓기다가 겨우 따돌린 후 숨어서 간신히 숨을 돌리면서 여전히 쿵쾅대는 심장 소리로 귀가 먹먹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울고 싶어졌다.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었다. 왜 울고 싶었는지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울고 나면 두 작품을 잘 소화했다는 느낌이 들 것 같다. 다행히 울지 않았지만, 마음에 물컹한 무언가가 걸려 있다. 걸린 것이 무엇인지, 힘을 줘서 빼내야 하는지 아니면 녹아서 사라지는 건지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내 심장이 두 작품에 반응했다는 것이다.


「포털」은 파괴와 회복 사이에 어딨는지 모르는 이들을 위한 희망을 노래하는 것 같다. 3년 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데릭의 포털을 보자. 데릭은 자기 아버지가 3년 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곳 인근에서 혼자 사냥하면서 한 줄로 나란히 나 있는 구멍들을 발견했고, 그 구멍에 손을 넣었다. 구멍에는 살아있는 아버지의 얼굴이 있었다. 분명 살아 있고, 따뜻했다. 구멍에 손을 넣어 아버지의 얼굴을 만진 데릭은 쓰러져서 심하게 울고, 동생이 안아줘야 했다. 데릭의 경우를 보면, 포털이 보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닌 것 같다. 포털을 통해 떠나보내지 못한 아버지를, 목 놓아 불러도 오지 않을 그리운 아버지를 향한 슬픔을 온전히 느끼고 표출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포털이 생기고, 보이는 이유가 ‘애도할 일이 많아진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애도할 일이 많아지면, 사람들은 짓눌린 채 힘든 일에 대처하는 심리적 기제가 무너지고 온갖 중독에 빠져들며, 엉망이 되고 폭력적이고 초췌해진다.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생기를 잃은 채 그저 숨이 붙어 있어서 사는 좀비가 된다. 「포털」에는 포털이 아주 많다.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포털을 봤을지 모른다. 포털에 다른 이름을 붙여 부르고, 전해졌을 수도 있다. 나도 포털을 봤을까? 포털은 개인적인 것으로,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이 들어 있는 공간 개념이다. 개인적이기에 세상에는 수많은 포털이 있고, 지금도 포털이 생기고 앞으로 셀 엄두조차 낼 수 없게 포털이 생길 것이다. 포털로 가득 찬 세상에서 모든 걸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포털을 발견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홀린 듯이 포털 앞에 설 것이다. 그리고 데릭처럼 손을 넣거나 다브로스키 아저씨처럼 흙을 파서 묻을 수도 있다. 포털 안에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 들어 있다면 망설임 없이 손을 넣을 수 있을까? 포털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면, 나의 포털에는 만져지지 않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손을 넣어도, 얼굴을 들이밀어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포털을 만들고 있다. 불안과 고민, 걱정에 쫓기며 잠드는 것이 힘들어서 책상 앞에 앉아 마음을 달래기 위해 책장을 천천히, 넘기는 행위가 의미 없이 자꾸 구멍이 생기고,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좋지 않은 느낌을 자주 느낀다. 포털을 통해 내가 가벼워질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포털을 만들 것이다. 애초에 포털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없다. 현실과 상상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포털」이 넷플릭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와 겹쳐서 찌릿했다. 곱씹을수록 자꾸 현실이 아닌 다른 차원의 세계로 눈길이 가는 내 모습을, 이미 다른 차원의 세계로 발걸음을 옮기는 나를 발견할 수 있는 ‘포털’을 찾은 것 같다.


「역노화」의 설정은 참신했다. 나이가 들어 죽는 건 자연의 섭리이기에 놀랄 것도 없고, 너무 익숙하게 슬픔에 젖는다. 무뚝뚝하고 무심하고, 자기밖에 몰랐던 아버지(게리 시먼스)가 소생술 대신 유전자 역전을 선택하면서 딸 (하데)은 그의 역노화 과정을 참관한다. 그와 딸의 시간이 완전히 반대로 흐르는 것이다. 참신한 발상인 만큼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현실에서 일어날 법한 일이니 말이다. 아버지의 역노화를 지켜보는 딸의 심정에 몰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딸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해야 했다. 역노화를 선택하는 것으로 심판을 받는 것일까? 하데(딸)는 눈물의 임종이 싫고, ‘싸구려 용서도, 마지막 순간 한마디로 해결되는 속죄도, 다 싫어!’(38쪽)라고 했다. 그녀의 말대로라면 유전자 역전의 선택이 최선이었을지도 모른다. 근데 누구를 위한 최선일까? 역노화를 직접 경험하며 아기의 모습으로 죽는 아버지, 아니면 아버지의 역노화 과정을 참관하는 딸? 하데는 아버지가 점점 젊어지고 어려지고, 유아가 되는 순간에 울음을 터뜨린다. 눈물을 그치지 못한다. 하데의 눈물은 무슨 의미일까? 하데는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지 않았나. 끝까지 용서를 구하지 않은 아버지에 대한 원망일까, 아니면 역노화를 참관하면서 자신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 존재했던 아버지의 모습에 대한 형용할 수 없는 무언의 감정 때문일까. 세상에 태어나 존재하는 것, 무슨 이유로든 존재가 사라지는 것.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건 괴로움과 슬픔, 고통 등 다양한 감정이 수반되지만, 동전 뒤집기처럼 쉽게 결론 낼 수 있는데 어째서 존재하는 쪽(남는 사람)이 더 괴로워야 하는 걸까. 아기가 된 아버지를 가슴에 단단히 끌어안고 뛰기 시작한 딸은 아버지를 용서했다(오래전에 용서했던 건 아닐까). 아버지와의 단절이 연결되었고, 아버지를 용서하는 것으로 파괴되었던 하데 자신의 일부를 회복했다. 이는 하데가 존재하기 때문에, 살아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단절과 연결, 파괴와 회복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으며, 간단하고 자주 일어난다. 하지만 연결과 회복은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한다. 조건을 맞춰도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많다. 두 작품을 보자. 단절과 연결 그리고, 파괴와 회복이 왜곡된 거울상으로 재현한 흐릿하고 낯선 우리의 이야기라는 걸 알 수 있다. 단절과 연결, 파괴와 회복을 동시에 꿈꾼다는 것이(동시에 꿈꾸는 게 이기적이다) 쉽지 않겠지만 가능할 거라는 걸 우리는 안다. 우리는 단절과 연결, 파괴와 회복에서 자유를 찾지 못한다. 그 안이 아니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단절과 연결, 파괴와 회복이 이루어지는 건 어렵지 않게 경험하거나 볼 수 있다. 단절되기 위해서 연결하고 연결하기 위해서 단절되고, 파괴하기 위해서 회복하고 회복하기 위해서 파괴한다고 생각해도 될까. 모두에게 좋은 쪽(연결과 회복)으로만 흐릿하고 낯선 우리의 이야기를 끌고 가면 안 될까. 이것 또한 그저 나의 바람일 뿐이다. 모두의 바람이라면 바람이 아닌 현실이 될 수 있다.


단절과 연결, 파괴와 회복이라는 키워드를 SF와 접목하여 흐릿하고 낯선 멀지 않은 우리 미래의 이야기를 참신하고, 깊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읽는 동안 정신이 몽롱했다. 두 작품을 잘 읽어냈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그저 읽는 동안 내가 했던 생각, 느꼈던 것들을 적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을지 궁금하다.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다』를 제목으로 둔 건 최고다. 제목을 곱씹다 보면 어느 순간 느낀다, 우주에 구멍을 내는 것은 슬픔만이 아니며 구멍을 메울 수 있는 것 또한 슬픔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 이 티저북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제작되었으며 비매품으로 ‘인플루엔셜’ 출판사에서 받았습니다:D

 

◎ 줄리애나 배곳 작가님이 궁금하다. 어떻게 이 작품을 쓰게 되었는지, 작가님의 우주에 구멍이 있다면 그 구멍을 내는 것이 무엇인지 며칠 밤새워 듣고 싶다. 솔직해서 따갑고 눈물이 터질 것 같은 이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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