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있는 사랑을 먼 길을 돌아서 만났다.
나현정 그림책, 『오직 하나뿐인』 (길벗어린이)
『오직 하나뿐인』 그림책에 등장하는 ‘고치와 작은 풀’의 이야기는 내 이야기다. 그림과 짧은 문장들이 나의 발걸음을 오래 붙잡았다. 다음 책장으로 넘어가는 시간이 길었다. 한 장 한 장, 오랫동안 머물고 싶었다. 머물면서 고치가 느끼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온전히 내 것인 것처럼 느끼고 싶었다. 어쩌면 내 외로움과 쓸쓸함이, 고치의 혼자 있는 모습이 나인지도 모른다. 고치는 오늘이 어제이고, 오늘이 내일이라고 말했다. 그 말에 울컥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었길 바란다. 안 그래도 외롭고 쓸쓸한 마음이 더 외롭고 쓸쓸해지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다. 고치는 모두가 잠든 시간에 조심스럽게 웅크린 몸을 펴고 밖으로 나온다. 혼자 달빛 한줄기에 의지해 고요한 숲속을 걷는 고치의 마음은 어떨까. 모두가 잠든, 어제와 오늘 사이에 뜬눈으로 고요한 새벽을 걷는 내 마음과 다르지 않겠지. 그러고 보면 고치와 나와 같은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시선이 가는 창밖으로는 아직도 무슨 이유인지 잠들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불이 켜져 있는 창문들이 많다. 차라리 할 일을 끝내지 못해서 잠을 미룬 거면 좋겠다. 걱정과 고민, 불안 등 머릿속을 떠다니는 수많은 생각 때문에 잠을 못 이룬 채 밤을 떠도는 것보다.
웅크린 몸을 펴고 나온 밤의 숲속에서도 고치는 조심해야 했다. 부엉이, 오소리, 여우의 공격으로 자유로울 수 없으니 말이다. 숲속의 ‘소소한 즐거움’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지루하게만 걷던 고치는 아늑한 공간을 발견한다. 하지만 그 공간은 이미 주인이 있었다. 작은 풀. 고치와 작은 풀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작은 풀과 고치는 생각지 못한 만남을 가지며, 서로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분명 서로 각자의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갈수록 고치의 이야기가 작은 풀의 이야기이고 작은 풀의 이야기가 고치의 이야기였다. 자연스럽게 친구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서로가 느낀 외로움과 쓸쓸함이 서로의 텅-, 빈 공간을 메워줬으니 말이다.
작은 풀은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풀이다. 숲속만 봐도 널린 게 풀이다. 고치는 흔한 풀이지만, ‘작은 풀’은 자신에게 유일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자꾸 시선이 가고 ‘예쁘다’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꽃들은 그 순간에는 가장 예쁜 꽃이지만, 뒤돌면 금방 잊힌다. 예쁘다며 여러 장 찍은 사진도 들여다보지 않고, 사진첩 가장 아래로 기억 저 아래로 가라앉는다. 하지만 작은 풀은 쉽게 스치고 짓밟히고 잊히는 게 다반사이고 우리가 보려고 하면 언제나 볼 수 있지만, 그래서 더 특별하다. 작은 풀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흔히 예쁘다고 말하는 꽃들에서는 보이지 않는 ‘단단한 힘’을 느끼고 ‘알찬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마음을 끌어당기는 건 그럴싸한 이유가 아니다. 평범하고 사소하고 작은 것들이다. 고치와 작은 풀의 우정은 그 마음에서 출발했다. 서로가 느끼는 감정을 이해하고, 서로의 다친 마음을 안아주는 것으로 그동안 혼자 있으면서 생긴 공백을 순식간에 메운 것이다.
고치는 늘 같은 하루라며 자신의 이야기가 지루할 거라고 하지만 작은 풀은 고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상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을지 모른다. 고치의 이번 밤 산책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었는지도 모른다. 작은 풀은 고치의 쓸쓸함에 “하지만 넌 오늘 나를 만났잖아. 그러니까 어제와는 다른 날이지.”라고 말한다. 그렇다. 고치는 작은 풀과 만났으니 항상 똑같았던 하루와 다른 특별한 하루를 만나게 되었다. 작은 풀도 그렇다. 짓밟힐 것이 무서워 나무 안에 뿌리를 박고 나무에 난 구멍으로만 밖을 구경해야 했을 작은 풀. 작은 풀을 나무 밖으로 꺼내어 준 유일한 고치. 서로가 겪어온 시간은 차이가 있지만, 그 시간을 보내면서 느꼈을 외로움과 쓸쓸함은 닮았다. 닮은 감정 앞에서는 고치의 뾰족한 가시도 작은 풀의 흔함도 아무 의미가 없다. 그저 서로의 존재가 서로에게 위로와 공감이 되고, 서로의 시간에 서로가 존재하게 되면 ‘사랑’이 시작된다. 고치가 작은 풀과 다투고 난 후, 작은 풀이 있었던 나무 안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모든 별은 다르게 빛난다.’라는 풀의 말을 직접 보고 깨달으면서 어제와 다른 아침에 작은 풀을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작은 풀에게 이름을 지어주겠다는 약속을 지킨다. 작은 풀은 고치에게 ‘사랑’이었다. 그 누구도 불러주지 않았던, 이름이 없던 작은 풀은 이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고치에게 사랑을 주고받으며 어제와 다른 오늘을, 오늘과 다른 내일을 보낼 것이다. 고치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고치와 사랑은 외로움과 쓸쓸함뿐인 하루가 특별해지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혼자 외로웠고 쓸쓸했던 것만큼 이제는 웅크린 몸을 활짝-, 펴고 숲속의 크고 작은 즐거움을 온몸으로 느끼며 늘 웅크려져 있던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 가득 채우고, 또 서로에게 들려주길 바란다. 고치와 사랑의 이야기가 내게 위로가 되었다. 누군가가 만남으로 인해서 나의 오늘이 어제와 다르고, 나를 만남으로써 누군가의 오늘이 어제와 달라진다는 사실이 ‘함께’의 의미를 따뜻한 빛 한줄기로 감싼다. 고치와 작은 풀처럼 ‘지키고 싶은 사랑’이 나에게도 있다는 사실이 나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조금씩-, 덜어준다. 반드시 난 내 사랑을 지킬 것이다. 작가님이 지키고 싶은 내 사랑을 생각하며 이 책을 썼다고 했다. 나는 지키고 싶은 내 사랑을 마음에 다시 깊이 새기기 위해 이 책을 만났다.
◎ 이 그림책은 서평단 활동을 위해 ‘길벗어린이’에서 받았습니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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